‘환율전쟁’ 결과 불투명…국내로 불똥 튈수도
[열려라 경제] 미, 중 위안화 절상 요구 진단&전망
미, 수출기업 활로 절실…중, 가계대출탓 화답 못해
엉뚱하게 엔-달러 환율 하락…한국도 압력 받을듯
미, 수출기업 활로 절실…중, 가계대출탓 화답 못해
엉뚱하게 엔-달러 환율 하락…한국도 압력 받을듯
2008년 세계경제가 금융위기에 빠져들 당시만 하더라도 경기가 제대로 회복되기까지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그 당시의 걱정이 지나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을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수출은 크게 증가하고 있고, 기업 이익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고, 주식시장은 다시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 다가서고 있으며, 우리 경제의 체력 회복을 반영하듯 환율도 떨어지고 있다. 중국도 수출을 중시하던 태도를 바꿔 소비를 장려하면서 경제의 내실을 다지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으며,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 계획이 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른바 ‘환율전쟁’을 보고 있으면, 우리가 보는 미래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은 중국으로부터 2960억달러를 수입했지만, 중국으로 수출한 것은 고작 690억달러에 불과했다. 중국과의 교역에서 무려 2300억달러 가까운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내수 시장이 얼어붙은 미국으로서는 어떻게든 수출을 늘려 자기네 기업들의 활로를 열어주고 싶을 것이다.
중국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금융위기 발생 이전까지 중국의 성장을 이끌던 것은 수출이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아시아 이웃 국가들로부터 원재료와 부품을 수입해 완제품을 만들어 이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시장에 수출하는 것이 중국의 성장 방식이었다. 그러나 금융위기 발생 이후 미국과 유럽으로 향하는 수출이 크게 줄어들자 중국 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제시한 방법이 바로 내수 확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수단 없이 뜻만 있다고 내수를 확대할 수는 없다. 실제로 중국이 활용한 방법은 대출을 확대하는 것이었다. 2009년 1월 이후 2010년 8월까지 중국 은행들의 대출 잔액은 51%나 증가했다. 금액으로는 30조위안에서 46조위안으로 늘어나 증가폭이 16조위안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 34조위안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금액이다. 이 돈들이 건설 공사 현장으로 흘러가고, 가계의 부동산 구입 자금으로도 활용되었으며, 소비 자금으로도 쓰였음은 물론이다.
대출 확대를 통한 중국의 경기부양 정책은 일단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직은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다. 만약 대미 수출이 현재와 같은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내수 확대 정책을 계속 추진할 수밖에 없지만, 풀린 돈들이 부동산 가격을 자극할 뿐 아니라 가계부채가 자꾸 늘어나는 부작용이 커지게 된다. 2000년대 초 수출 감소로 경기가 후퇴하자 이를 만회하기 위해 신용카드 사용을 부추기는 등 부채 확대로 소비 진작 정책에 나섰다 가계부채 부실로 심각한 내수 침체를 겪었던 우리나라의 사례를 중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중국도 현재의 난국을 풀 방법은 수출밖에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 요구하는 위안화 절상을 중국이 결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사례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미국은 일본과의 교역에서 큰 폭의 무역적자가 발생하고 있어, 일본을 설득해 엔화를 크게 절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일본은 수출 부진으로 경기가 침체될 것이 두려워 금리를 낮춰 내수 경기를 부양하는 바람에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이 부동산의 거품이 터지면서 지금까지도 고생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덜컥 응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경기 침체를 겪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 역시 중국이 미국에 맞서 환율전쟁에 나서고 있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탄을 맞고 있는 것은 일본이다. 최근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15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절상되고 있다. 미국의 환율전쟁이 중국을 겨냥한 것이지만 엉뚱하게 일본에서 엔-달러 환율이 떨어지고 정작 중국에서는 위안-달러 환율 하락이 더디기만 하다.
이러한 환율전쟁은 그 누구도 승자가 되기 어렵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내수 부진에도 천문학적인 대중국 무역적자를 겪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수출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며, 대출 확대를 통한 경기 부양이라는,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당장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중국으로서도 시장을 미국에 내줄 수 있는 위안화 대폭 절상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각국이 환율전쟁에 나서고 있다는 현실 자체가 세계경제의 회복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중국이 부채를 늘리는 동안에는 대중국 수출이 크게 증가하는 등 우리 경제는 활황을 맞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처럼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큰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도 미-중간 환율전쟁의 유탄을 맞고 있는데, 우리라고 별일 없이 지나가길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엔-달러 환율 하락에 맞춰 원-달러 환율도 자꾸 하락 압력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그나마 수출로 꾸려가던 우리 경기도 앞날이 험난할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음에도 우리에게는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점이다.
전민규/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
전민규/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