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합의’ 나오기까지
환율 직접공략 피하고 ‘경상수지 목표제’ 제안
신흥국 IMF지분율 높여줘 중국쪽 합의 유도
“미국 급한 불끄고, 중국 미래권력 확보” 평가
환율 직접공략 피하고 ‘경상수지 목표제’ 제안
신흥국 IMF지분율 높여줘 중국쪽 합의 유도
“미국 급한 불끄고, 중국 미래권력 확보” 평가
지난 23일 경주 코뮈니케(공동선언문)가 발표된 직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준비위에선 안도의 한숨소리가 흘러나왔다. 확전이냐 종전이냐의 기로에 섰던 ‘환율전쟁’의 급한 불을 끄기까지는 한달여에 걸친 물밑협상이 계속돼왔고 합의 전날까지도 예측이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 회의에 관여한 정부 관계자는 “(협상 과정이) 드라마틱했다”고 말했다.
이번 합의는 중국이 환율 문제를 양보하고 미국과 유럽이 국제통화기금(IMF)의 쿼터(지분)를 신흥국에 내준 이른바 ‘빅딜’로 해석될 수도 있다. 실제로 미국이 환율 갈등을 풀어가는 고리로 택한 ‘경상수지 목표제’와 국제통화기금의 지분율 조정 문제에 대해선 재무장관 회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끊임없이 막후 절충이 계속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 쟁점이었던 경상수지 목표제는 사전에 우리 정부가 미국에 먼저 제안한 내용이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3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이 제안하고 미국이 수용해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9월 초 환율 문제가 부각되자, 이명박 대통령은 서둘러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환율에 서울 정상회의가 묻히면 어떻게 하느냐, 대책을 세우라”는 지시였다.
이에 정부는 우회적으로 환율 문제에 접근하기 위한 방안으로 경상수지 목표제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나 적자 규모를 4% 이내로 줄이자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중국이 쉽게 움직일 리 없기 때문에 환율로 직접 공략하는 대신 큰 틀에서 대외 불균형을 줄이는 방안을 제시하고 중국이 자발적으로 선택하도록 하자는 의도였다.
사공일 G20 준비위원장이 래리 서머스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을 찾아갔고 중국과도 접촉을 시작했다. 미국과 중국 모두 ‘노’라고는 안 했지만 즉답도 하지 않았다. 준비위 관계자는 “재정부 장관이 주요국 순방에 나섰지만 확답이 쉽게 나오진 않았다”고 전했다. 결국 티머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경주 회의 직전에 각국에 보낸 서한에서 ‘4%’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넣지 않는 수준에서 합의를 유도했다. 이 서한에는 특정국을 지칭하지 않은 채 “원자재 수출국은 예외일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아 오스트레일리아와 캐나다 등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도 엿보였다.
이번 코뮈니케에는 6월 토론토 정상회의에서 언급된 ‘시장 지향적’(market oriented) 환율제도보다 진일보한 ‘시장 결정적’(market determined) 환율제도로의 이행도 포함됐다. 자칫 선언적 수준에 머무를 우려가 나오고 있지만, 환율 결정 과정에서 시장의 역할이 좀더 강조됐다는 점에서 중국이 한발 물러서고 미국이 실리를 챙긴 대목이다.
주요 7개국(G7) 등 선진국 그룹에서 회의 중에 여러 차례 접촉을 한 것은 국제통화기금 지분율 조정에서 난항을 겪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을 비롯해 과다대표권을 보유하고 있는 선진국들이 과소대표국과 신흥개도국으로 이전하기로 한 지분율을 5%에서 6%로 1%포인트 늘려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로 중국의 지분율 순위는 6위에서 3위로 올라가게 됐다. 환율 문제에서 일단 ‘선언적’ 양보를 한 중국은 기금의 지분율 문제에서 ‘명시적’ 선물을 챙겼다.
거부권을 유지하는 선에서 쿼터 일부를 양보한 미국으로서도 크게 손해 볼 일은 아니었다. 원래 미국은 과다대표된 유럽 국가의 지분율이 신흥개도국으로 이전되길 바라는 쪽이었다.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연구위원은 “미국은 현실의 급한 불을 끄는 데 급급해 있고 중국은 미래의 경제권력을 확보하는 데 더 치중한 합의로 읽혀진다”고 평가했다.
우리 정부는 이번 합의로 이른바 ‘G20 무용론’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됐다. 지난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해 “여러분이 합의를 이루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갈) 비행기를 가동하지 않겠다”고 뼈 있는 농담을 던지는가 하면, 여러 차례 ‘부탁’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절박감을 드러낸 바 있다.
경주/황보연 기자 whyn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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