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전망] 글로벌 불균형 해법
미-중 동상이몽…유럽·신흥국 반발 커 난항 예상
기축통화체제 재편 둘러싼 국제 논쟁 확대될 듯
미-중 동상이몽…유럽·신흥국 반발 커 난항 예상
기축통화체제 재편 둘러싼 국제 논쟁 확대될 듯
‘국격 제고’라는 명목으로 정부가 총력전을 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이제 막을 내렸다. 환율전쟁이 격화되던 와중이라 논의 초점도 환율 문제에 맞춰졌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세계 거인들이 직접 환율 문제를 놓고 맞짱을 뜨는데다, 신흥시장에서도 시장개입이니 자본통제니 하면서 국제 외환시장이 혼전을 거듭하던 무렵이었다. 가뜩이나 원화 절상 압력에 시달리던 우리에게는 환율 문제가 ‘뜨거운 감자’일 수밖에 없음을 의식해 한동안 환율갈등을 애써 외면하던 정부도 결국 G20의 성공 개최를 위해 한발 물러서야 했다. 대신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던 글로벌 금융안전망 논의는 여론의 시야에서 대부분 사라졌다.
다행인 것은 기껏해야 ‘제로섬’(zero-sum)에 불과할 환율 문제에만 쏠리지 않고 그 배경에 놓인 글로벌 불균형 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된 점이다. 이번에는 불발로 끝났지만, 경상수지 목표제와 같은 참신한(?) 아이디어가 선보이는 등 불균형 해법이 좀더 구체화된 것도 긍정적이다. 본래 불균형 문제는 G20의 주요 의제 중 하나다. 따라서 촉각을 다투던 환율 문제를 G20의 공조 틀 안으로 끌어들여,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과 맞닿아 있는 불균형 문제로 연결시킨 것은 상당한 성과로 평가된다. 미국의 들러리를 선 것은 아닌지 아쉬움은 남지만, 서울 선언이라는 이름으로 논의가 한 차원 진전된 것은 분명하다.
글로벌 불균형은 국제사회의 오랜 숙제다. 교과서적인 정의로는 “상품·서비스 및 자본의 이동이 특정 국가(또는 지역)에 편중되면서 대규모 경제권의 대외포지션 불균형이 크게 확대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흔히 미국의 막대한 무역적자로 대변되는 경상수지 불균형을 일컫는다. 가깝게는 1980년대부터 불균형의 전사를 찾을 수 있다. 당시의 국제 협력이 85년 G5의 플라자 합의다. 그러나 이후에도 불균형은 꾸준히 확대되어 왔다. 절대 규모는 물론이고 이해 당사자도 대폭 늘어났다. 그 결과 최근의 불균형은 ‘글로벌 현상’으로 불릴 정도로 커졌고, 금융위기에서 드러났듯이 그로 인한 시스템 위험은 더는 감당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불균형의 성격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위기 이전에만 해도 불균형은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 개별 국가 차원의 문제로 인식되고, 기껏해야 달러 급락 위험 정도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이제는 다수 국가들의 거시정책 운용방식이나 국제통화체제 등과 관련된 시스템적인 문제이며, 불균형을 야기한 거시정책 방식과 국제 자본흐름이 금융위기와 직간접적 관련이 크다는 인식이 번지고 있다. 더구나 최근 불균형이 새로운 방식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우선 유로 위기 과정에서 역내 불균형이 쟁점화되는 한편, 유럽 위주로 불균형이 확대될 가능성이 부각된다. 또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 등 선진국의 과잉 유동성 때문에 신흥국으로 자금유입이 급증하면서 또다른 불균형을 낳고 있다.
새로운 플라자 합의나 불균형 해법이 쉽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특히 과거처럼 G20이 강력한 구속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위기의 긴박성 탓에 G7에다 신흥 경제대국을 합쳐 얼기설기 틀은 짰지만, 글로벌 재조정을 진두지휘할 ‘사령부’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아무래도 핵심은 미국과 중국, G2의 협력 향방이다. 그러나 둘의 동상이몽도 커 보인다. 애초 유럽이 바랐던 G12 구상을 G20으로 확대하고 전략경제대화 등 중국과 협력을 강조하는 모습을 볼 때, 미국은 중국을 하위 파트너로 삼아 세계 통치성을 재건하려는 움직임이다. 하지만 중국은 미국의 구애를 내심 즐기면서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미국의 전통적 파트너인 유럽도 반발이 크다. 아마도 중국은 양자 사이에서 줄타기를 선호할 공산이 크다.
신흥시장에서도 원성이 높다. 자국 내 소화처를 찾지 못한 미국 등 선진국의 부동자금이 몰리면서 거품(버블)이나 인플레 위험이 커지고 있는 탓이다. 보호주의 첨병으로 간주되던 자본통제의 부활은 이런 연유다. G20이 이른바 ‘거시건전성’ 조처의 연장선에서 자본통제를 용인하고, 급격한 자본유출입이나 환율 변동성에 대한 선진국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책 조율이나 공조로 가시화된 것은 없다. 나아가 이 문제는 달러의 기축통화 역할과도 관련된다. 사실 그간 신흥아시아 각국이 일종의 ‘자기보험’으로서 외환보유액을 쌓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미국 등 일각에서는 불균형의 책임을 흑자국 아시아의 외환보유액 탓으로 돌리기도 하지만, 적자국 미국이 기축통화를 무제한 발행할 수 있다는 점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다. 실은 국제통화체제의 불평등이 더 문제일 수 있다.
서울 정상회의의 진전에도 불구하고, 불균형의 해법을 찾는 과정은 앞으로 갈 길이 멀다. 도중에 국제통화체제 재편 논쟁 등을 둘러싸고 국제 환율의 변동성은 더욱 확대될 공산이 크며, 또 이미 여러 차례 겪었던 우리 환율의 취약성은 언제라도 다시 시험받을 수 있다.
장보형/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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