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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한겨레 프리즘] 복지후퇴의 시대 / 박현

등록 2010-12-26 20:58수정 2010-12-27 08:19

박현 경제정책팀장
박현 경제정책팀장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은 산업혁명 초기 빈부격차가 극심했던 19세기 초반 영국 런던이 배경이다. 디킨스는 이 소설을 통해 정부의 빈민구제 지원을 최소화하라는 보수파의 견해를 비판하고자 했다. 보수파들은 빈민구제가 수혜자들의 독립성과 근면성을 파괴해 오히려 사회에 비생산적이므로 자유방임 상태로 놔두라고 주장했다. 특히 인구학자 토머스 맬서스는 <인구론>에서 “인구 증가 속도가 식량 증가 속도보다 훨씬 빨라 이를 방치하면 파국이 오는 만큼 인구억제 정책을 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빈민구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출산을 유도하므로 지원액을 줄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맬서스의 예언은 나중에 잘못된 것으로 판명났지만, 당시 이런 주장이 먹혀들어 영국 의회는 1834년 구빈법을 개정해 지원액을 삭감했다. 이런 분위기에 격분한 디킨스는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를 통해 맬서스를 풍자했다. “게으름뱅이들을 즐겁게 해줄 만큼 넉넉하지 않다”거나 “가난한 사람들이 차라리 죽겠다면 남아도는 인구를 줄일 수도 있을 테니 그게 나을 것”이라는 스크루지의 말은 단적인 예다.

분배 정책을 둘러싼 논란은 200년도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19세기 초 이 논쟁에 불이 붙은 것은 영국 정부의 빈민구제 지원액이 국내총생산(GDP)의 1%를 넘어설 정도로 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는 부자한테서 세금을 거둬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었기 때문에 보수파들의 반발이 거셌다. 지원액은 2.5%까지 늘었다가 법 개정 여파로 1% 이하로 추락했다.

이런 부침에도 복지지출 증가의 흐름은 도도히 이어졌다. 서구의 복지지출는 19세기 말부터 재개됐다. 실업, 연금, 의료, 주거 등으로 범위도 확장됐다. 경제사가인 피터 린더트 미국 캘리포니아대(데이비스) 교수에 따르면, 서구의 공공복지지출은 1880년부터 2차 대전 사이에 점진적으로, 그리고 1950~1980년에 비약적으로 늘었다. 1980년 이후 보수파의 반격이 시작돼 복지국가 위기 논쟁이 붙으면서 증가에 제동이 걸렸지만 지출이 줄지는 않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보면, 21개 회원국의 공공복지지출 비중(국내총생산 대비)은 1960년 평균 10%를 넘어섰고, 1980년에 20%대를 뚫었다. 동유럽 등 신규 가입국을 제외하면 지금도 20% 수준이다.

우리나라의 공공복지지출 수준은 어디쯤일까. 오이시디 통계로 1990년에 2.8%였고 2000년 4.8%, 2007년 7.5%다. 회원국 평균과 비교하면 1950년대 중반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런 추세가 이어졌다면 몇 년 내 ‘10%’라는 상징적인 숫자를 돌파해 복지국가의 태동을 거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는 경제성장 속도에 견줘 복지지출 증가 속도를 낮게 유지하는 내용으로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을 짜 2014년까지 오히려 그 비중이 뒷걸음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복지 후퇴’는 집권세력 핵심부의 잘못된 현실인식과 편향된 가치관 탓이 크다. 최근 대통령은 우리가 “복지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 했고, 기획재정부 수장은 ‘복지는 즐기는 것’이라 했다.

린더트 교수는 복지국가의 태동 동력을 세 가지로 꼽는다. 소득 증가와 고령화, 그리고 약자들의 정치적 목소리 확대가 그것이다. 이는 19세기 말 이후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의 공통된 현상이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빠진 게 하나 있다. 약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대변되지 못한다는 점이다.이런 현실에서는 복지국가 진입은 더뎌질 수밖에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우울한 크리스마스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박현 경제정책팀장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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