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표식품에 마련된 요리교실 ‘지미원’의 조리대 앞에 선 박진선 사장. 명색이 식품회사 사장인데, 자신 있게 선보일 수 있는 요리가 무엇인지 물었다. 박 사장은 정작 칼을 가지고 재료를 다듬는 데만 온갖 신경을 쓰다 시간을 다 보내버리기 일쑤라, 요리는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남의 이목에 신경쓰기보다는 “잘할 수 있는 것을 잘하는 데 몰두하자”는 박 사장의 지론에 들어맞는 대답이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장수 브랜드 ‘샘표’식품 박진선 사장
듬직한 몸집에서 역시나 묵직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셈법으로 예순을 넘긴 나이에도 천진함을 잃지 않은 얼굴 표정과는 묘한 부조화의 매력마저 뿜어냈다. 얘기를 나누는 도중 그는 유독 ‘베이스’(기본)란 단어를 여러차례 사용했다. 재미있는 건, 그가 내뱉는 베이스라는 단어의 울림이 엄숙함이나 고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이다. ‘기본을 아는 파격’, ‘안정감 있는 자유로움’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해방 이듬해 서울 충무로 언덕 근처에 터를 둔 한 양조장이 생겨났다. 현존하는 최장수 브랜드로 꼽히는 ‘샘표’가 세상에 선을 보인 순간이다. 양조장을 일군 이는 샘표식품 창업자 박규회. 그의 할아버지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경기고-서울대(전자공학)를 나온 ‘머리 좋은 부잣집 장손’은 박사 과정을 밟으러 간 미국 유학에서 그만 엉뚱한 사고(!)를 치고 만다. ‘정의’나 ‘가치’ 같은 개념에 심취해 전공을 전자공학에서 철학으로 바꿔버린 것. 그렇게 ‘철학박사’ 타이틀을 거머쥐긴 했지만, 운명일까? 그는 결국 할아버지의 체취가 남아 있는 ‘간장 장수’의 길로 접어들고 말았다.
설을 앞둔 마지막 금요일인 28일 늦은 오후. 서울 충무로 일대 거리는 분주히 오가는 차량으로 북새통이었다. 지금 이 순간 제일 궁금한 건 뭐니 뭐니 해도 오늘 설 선물세트 판매 실적이라며 환하게 웃는 ‘철학박사 최고경영자(CEO)’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을 충무로 본사에서 만났다.
간장만 바꿔도 음식의 맛 확 달라져
조선시대 맛흐름 따르는 제품 만들것
정부 ‘한식 세계화’ 문화 마인드 없어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이란 광고문구가 유명하다. 처음부터 제품 홍보하는 것 같아 어색하지만, 마침 곧 설이고 하니 편하게 간장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그럼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제품 설명부터 하겠다.(웃음) 우리가 새로 준비하는 게 바로 옛 조선시대 맛의 흐름을 따르는 간장이다. 우리가 흔히 조선간장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냄새가 진하고 색깔은 맑다. 우리는 냄새는 덜 나게 하고, 일반 요리에도 쉽게 쓸 수 있는 쪽으로 개발중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옛날 궁중에서 사용하던 것을 이어가는 것인데, 대량생산 기술을 갖추는 거다.” -샘표 하면 당연히 간장을 떠올릴 정도로 지금도 이미 시장점유율이 튼튼한데,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가 뭔가?
“주변을 보자. 국간장도 있고, 진간장, 양조간장이라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걸 잘 들여다보면 죄다 산업화 시대 산물이다. 돈은 별로 없고 당장 생산량을 증진시키기 위해 대량생산 기술이 들어와 진간장이다 양조간장이다 하는 것들이 나왔다. 원료나 재료, 발효 방법 등이 모두 옛날 전통적인 맥을 잇는 게 아니라, 산업화 시대에 맞춰진 거다.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옛날 것이 더욱 고급이고, 문화적으로도 본류를 찾아간다는 게 중요하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가 먹는 간장조차 왜곡됐다는 말인데. 간장의 역할이 그리 중요한가? “산업화 시대 논리는 같은 품질의 제품을 빠른 시간 내에 대량생산해 내는 거다. 간장이나 된장은 맛을 내는 베이스다. 간장 하나만 바꿔도 음식 맛이 확 달라진다. 중국집 갈 때 우리 간장 들고 가서 먹어봐라. 그동안엔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그런 미세한 차이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거지. 산업화 시대엔 생산성만 높이는 쪽으로 가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 문화와 의식 전반도 영향을 받은 거다.” 박 사장은 이 대목에서 지난해 9월 열린 ‘2010 고메’ 행사 얘기 한토막을 들려줬다. 세계 미슐랭 스타 셰프들을 초청해 한식 재료를 사용한 요리를 선보인 행사다. 샘표식품에선 간장을 출품했는데, 굳이 영어식 ‘소이소스’(soy sauce) 대신 ‘간장’(Ganjang)이라고 썼단다. 우리 고유의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결국 요즘 유행하는 한식 세계화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한식 세계화의 베이스(기본)도 결국 간장 아니겠나. 하지만 특별히 한식에만 한정 지을 생각은 없다. 한식에 끼워팔 생각은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 음식에, 심지어 서양 음식에 쓰더라도 새로운 맛을 낼 수 있는 베이스 제품을 선보인다는 게 중요한 거지. 물론 한식 세계화가 잘 되면 당연히 우리 장도 잘 팔리겠지.” -요즘 정부에서 한식 세계화 하겠다고 난리인데, 어떻게 평가하나? “쉽지 않을 거다. 국외로 나가 성공할 만한 식당들이 한국 안에 없다는 게 문제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야, 이거 해보자!’ 해서 될 게 아니다. 정부가 생각하듯이 몇 년 안에 ‘세계 5대 음식’ 어쩌고 하는 건 어렵다고 본다. 더 큰 문제는 음식은 일종의 종합콘텐츠 산업인데, 그런 마인드가 별로 없는 듯하다. 음식이야말로 문화 아니냐.” -요즘 티브이를 보면 요리 관련 드라마가 부쩍 늘었다. “좋은 일이죠.” 철학도 경영도 ‘베이스’는 가치 문제
사회 생산량 일정수준 넘었으니 나눠야
현정부 여전히 옛날 시스템에 붙들려 -문제는 대부분 근사하게 생긴 남자 배우가 한식보다는 서양 요리를 멋지게 만들어내고 그런 식인데…. “그건 안 좋은 일이네요.”(웃음) 박 사장과의 인터뷰는 편안한 접견실이 아니라 각종 주방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지미원’에서 이뤄졌다. 2001년 문을 연 이곳은 건물 내 한 층에 마련된 별도 공간으로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요리강습을 하는 곳이다. 요즘은 ‘중년 남자의 요리배우기 학교’란 이미지로 유명세를 타는 곳이기도 하다. 한쪽 벽엔 ‘바람직한 식문화를 창조해가는 열린공간’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바람직한 식문화란 어떤 것인가? “더없이 맛있어야 하고, 질 좋고 건강에도 좋은 것, 결국 이런 것을 찾아나가는 게 아니겠나. 재미있는 게, 직원들하고 샘표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면 핵심은 문화라는 데 쉽게 생각이 이르지만, 정작 문화가 뭐냐고 물으면 아무 말도 못해. 그래서 뒤집어서 그럼 문화가 왜 중요하냐고 물어도 마찬가지야. 그저 문화가 중요하다고 배웠고, 막연하게 우리 문화를 보존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더라.” 문화에 대해 차분차분 이야기하는 박 사장의 모습은 마치 철학 강의실로 장소를 옮겨온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박 사장은 박사 학위를 마친 뒤 약 2년간 미국 대학 강단에서 철학 강의를 하기도 했다. -전공을 갑자기 바꾼 배경이 궁금하다. “에이, 전공을 그리 갑자기 바꾸는 사람이 어딨나. 막상 때려치울 때는 빠르게 결정했지만 순간적인 판단은 아니다. 사실 처음부터 전자공학과를 갈 마음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저 당시엔 전자공학이 최고였고 게다가 수학도 좋아하고 하다 보니 그리된 거지. 대학 다니는 내내 너무 재미가 없어서 앞으로 뭘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더라. 막연하게나마 철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나름대로 가치 체계를 만들었다 부수고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다.” 잠시 대학 시절 밴드활동 얘기로 샜다. 박 사장은 대학 시절 고등학교 친구 3명이랑 4인조 밴드 활동을 했단다. 박 사장이 맡은 악기? 역시나 베이스(!) 기타. 한번은 옛 시민회관에서 문화방송 주최로 열린 무슨 대회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올랐단다. 당시엔 무대 설비를 둘로 나눠 앞팀이 반쪽 무대에서 연주하는 동안 다음 팀은 다른 반쪽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가 연주가 끝나면 무대를 앞으로 돌려 다음 팀이 자연스레 연주를 하는 식이었다. “열심히 준비를 마치고 막상 우리 차례가 되었는데 어떤 선을 잘못 건드렸는지 도통 악기 소리가 안 나더라. 넷이서 멀뚱멀뚱 서 있다가 그만 내려왔다.” -그러다가 전공 변경 결행에 이른 직접적 계기는? “미국에서 대학 다닐 때다. 스탠퍼드대학에 <스탠퍼드 데일리>라고 학교에서 내는 일간신문이 있었다. 굉장히 리버럴한 신문이지. 그런데 당시 물리학과 대학원생 하나가 고정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완전 리버테리언(자유방임주의자)이었거든. 근데 이 친구 얘기가 확 깨는 거야. 70년대 초중반 박정희 시대의 우리나라에선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더라.” -장차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애초 미국 갈 때부터 안 돌아온다고 하고 떠났다. 간장 장수나 할 사람이 아니라는, 묘한 심리도 있었고.” -결국 가업을 잇게 됐는데. “호기있게 폼나는 전공으로 바꾸긴 했는데 가만 보니 딱히 할 일도 없더라.(웃음) 70~80년대 미국은 현재 한국이랑 많이 비슷했다. 미국 사회 돌아가는 걸 보고 있으니 한국 사회도 저렇게 되겠구나 싶더라.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맡고 계시던 우리 회사도 새로운 것을 적용한다거나 하는 시도를 못할 것으로 봤다. 저러다가는 영영 간장만 만드는 공장으로 전락하는 게 아닐까 싶어 모험을 하기로 했다. 할아버지가 일구신 회사이니 잘됐으면 하는 마음도 강했고.” -어쨌거나 머릿속 생각만 잔뜩 복잡해져서 돌아온 거네. “절대 아님! 생각은 되레 간단해져서 왔다. 철학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엄청 생각할 것도 많고 한데, 어느 정도 지나고 보니까, 나 혼자서 나름대로 만들어가는 세계가 있더라. 나만의 가치관이나 체계가 만들어져 있으니 다른 사람한테도 왜 이렇게 해야 되는지 좀더 쉽게 설명할 수 있었고, 내가 맞다는 생각도 강했다.” -지난해 느닷없이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정의’ 열풍은 어떻게 보는지? “철학과 1학년 들어가면 다 배우는 뻔한 것들이지.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해보는 기회를 갖는다는 건 좋다. 그동안 사람들이 왜 그런 쪽으로 생각을 안하는지 잘 이해를 못했다.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니 답이 나오더라. 바로 생각하기 힘들어서다.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생각을 많이 해봐야 확실하게 알게 되는데, 대부분 어렵고 귀찮아하지.” -사장님은 생각하는 게 쉬운가? “그럼 아주 쉽지.” -오늘 인터뷰 카피 제목은 “생각하는 게 가장 쉬웠어요”로 나가면 되겠구먼. “…”(웃음) -철학에서 말하는 정의랑 기업을 경영하면서 느끼는 정의랑은 서로 충돌하지 않나? “결국 베이스가 되는 건 가치 문제지. 우리 회사가 행복경영 같은 걸 강조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고.” -행복경영, 참 좋은 말이다. 한데, 좀 삐딱한 시각에서 보자면 좋은 비전, 좋은 가치라는 것도 결국 경영권 안정이라는 전제조건을 무시하고선 얘기할 수 없는 거 아니냐. 당신처럼 오너 경영 체제에서나 가능할 법한데. “주주 입김이 센 곳에선 당연히 어렵지. 그래서 난 주주자본주의 싫어해. 대부분의 주주들은 돈 버는 데만 관심 있지 회사 잘되는 데는 별 관심 없는 사람들 아니냐?” -뒤집으면, 기업이 좋은 비전을 가지려면 오너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딱히 그런 말은 아니고. 그런 점에서 내가 처한 환경이 유리한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을 뿐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부가 들어선 지 3년 지났는데, 실제로 기업하기 많이 편해졌나? “…(웃음)” -그다지 안 편해진 모양이네? “뭘 하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도대체 비전이 뭔지. 비전이 있다고 한다면 고작 70년대 세상을 다시 살고 있는 거 같고. 그래 가지고는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기 힘들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그런 걸 느끼나? 예를 들어 요즘 정부는 물가 잡는다고 난리인데. “완전 코미디지. 요즘 정부 하는 행태는 물가 상승 요인을 시스템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물가를 ‘때려잡는다’는 거지.” -역시나 ‘철학’이 없다는 얘기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전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생각을 도통 안하고 사는 거 같다. 옛날에야 물리적인 것들, 말하자면 생산 캐파가 모자라다 보니 그걸 늘리는 게 급선무였다. 모든 시스템이 거기에 맞춰져 있었지. 그런데 지금 세상은 완전히 달라. 물리적 양을 늘리는 단계는 이미 지났지 않은가? 그러면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도 거기에 맞게 달라져야 하는데, 지금 정부에선 옛날에 했던 것 그대로만 한다.” 돌고 돌아 박 사장이 마지막으로 꺼낸 단어는 우연히도,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복지였다. “그러니 만날 복지가 어떻느니 하는 걸 가지고 아직껏 싸움질이나 하지. 물리적인 생산 캐파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섰으니 나눠 먹으면 될 것을. 남 주는 것은 죽어도 보지 못하고 옛날 시스템을 붙들고만 있으니….” 인터뷰/최우성 산업팀장 morgen@hani.co.kr , 정리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조선시대 맛흐름 따르는 제품 만들것
정부 ‘한식 세계화’ 문화 마인드 없어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간장’이란 광고문구가 유명하다. 처음부터 제품 홍보하는 것 같아 어색하지만, 마침 곧 설이고 하니 편하게 간장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그럼 나도 단도직입적으로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제품 설명부터 하겠다.(웃음) 우리가 새로 준비하는 게 바로 옛 조선시대 맛의 흐름을 따르는 간장이다. 우리가 흔히 조선간장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냄새가 진하고 색깔은 맑다. 우리는 냄새는 덜 나게 하고, 일반 요리에도 쉽게 쓸 수 있는 쪽으로 개발중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옛날 궁중에서 사용하던 것을 이어가는 것인데, 대량생산 기술을 갖추는 거다.” -샘표 하면 당연히 간장을 떠올릴 정도로 지금도 이미 시장점유율이 튼튼한데,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이유가 뭔가?
“주변을 보자. 국간장도 있고, 진간장, 양조간장이라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걸 잘 들여다보면 죄다 산업화 시대 산물이다. 돈은 별로 없고 당장 생산량을 증진시키기 위해 대량생산 기술이 들어와 진간장이다 양조간장이다 하는 것들이 나왔다. 원료나 재료, 발효 방법 등이 모두 옛날 전통적인 맥을 잇는 게 아니라, 산업화 시대에 맞춰진 거다. 여기서 빨리 벗어나야 한다. 옛날 것이 더욱 고급이고, 문화적으로도 본류를 찾아간다는 게 중요하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가 먹는 간장조차 왜곡됐다는 말인데. 간장의 역할이 그리 중요한가? “산업화 시대 논리는 같은 품질의 제품을 빠른 시간 내에 대량생산해 내는 거다. 간장이나 된장은 맛을 내는 베이스다. 간장 하나만 바꿔도 음식 맛이 확 달라진다. 중국집 갈 때 우리 간장 들고 가서 먹어봐라. 그동안엔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그런 미세한 차이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 못하고 살았는데, 이제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거지. 산업화 시대엔 생산성만 높이는 쪽으로 가다 보니, 자연스레 우리 문화와 의식 전반도 영향을 받은 거다.” 박 사장은 이 대목에서 지난해 9월 열린 ‘2010 고메’ 행사 얘기 한토막을 들려줬다. 세계 미슐랭 스타 셰프들을 초청해 한식 재료를 사용한 요리를 선보인 행사다. 샘표식품에선 간장을 출품했는데, 굳이 영어식 ‘소이소스’(soy sauce) 대신 ‘간장’(Ganjang)이라고 썼단다. 우리 고유의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결국 요즘 유행하는 한식 세계화와도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한식 세계화의 베이스(기본)도 결국 간장 아니겠나. 하지만 특별히 한식에만 한정 지을 생각은 없다. 한식에 끼워팔 생각은 아니다. 일본이나 중국 음식에, 심지어 서양 음식에 쓰더라도 새로운 맛을 낼 수 있는 베이스 제품을 선보인다는 게 중요한 거지. 물론 한식 세계화가 잘 되면 당연히 우리 장도 잘 팔리겠지.” -요즘 정부에서 한식 세계화 하겠다고 난리인데, 어떻게 평가하나? “쉽지 않을 거다. 국외로 나가 성공할 만한 식당들이 한국 안에 없다는 게 문제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야, 이거 해보자!’ 해서 될 게 아니다. 정부가 생각하듯이 몇 년 안에 ‘세계 5대 음식’ 어쩌고 하는 건 어렵다고 본다. 더 큰 문제는 음식은 일종의 종합콘텐츠 산업인데, 그런 마인드가 별로 없는 듯하다. 음식이야말로 문화 아니냐.” -요즘 티브이를 보면 요리 관련 드라마가 부쩍 늘었다. “좋은 일이죠.” 철학도 경영도 ‘베이스’는 가치 문제
사회 생산량 일정수준 넘었으니 나눠야
현정부 여전히 옛날 시스템에 붙들려 -문제는 대부분 근사하게 생긴 남자 배우가 한식보다는 서양 요리를 멋지게 만들어내고 그런 식인데…. “그건 안 좋은 일이네요.”(웃음) 박 사장과의 인터뷰는 편안한 접견실이 아니라 각종 주방시설이 완벽하게 갖춰진 ‘지미원’에서 이뤄졌다. 2001년 문을 연 이곳은 건물 내 한 층에 마련된 별도 공간으로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요리강습을 하는 곳이다. 요즘은 ‘중년 남자의 요리배우기 학교’란 이미지로 유명세를 타는 곳이기도 하다. 한쪽 벽엔 ‘바람직한 식문화를 창조해가는 열린공간’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바람직한 식문화란 어떤 것인가? “더없이 맛있어야 하고, 질 좋고 건강에도 좋은 것, 결국 이런 것을 찾아나가는 게 아니겠나. 재미있는 게, 직원들하고 샘표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가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면 핵심은 문화라는 데 쉽게 생각이 이르지만, 정작 문화가 뭐냐고 물으면 아무 말도 못해. 그래서 뒤집어서 그럼 문화가 왜 중요하냐고 물어도 마찬가지야. 그저 문화가 중요하다고 배웠고, 막연하게 우리 문화를 보존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더라.” 문화에 대해 차분차분 이야기하는 박 사장의 모습은 마치 철학 강의실로 장소를 옮겨온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박 사장은 박사 학위를 마친 뒤 약 2년간 미국 대학 강단에서 철학 강의를 하기도 했다. -전공을 갑자기 바꾼 배경이 궁금하다. “에이, 전공을 그리 갑자기 바꾸는 사람이 어딨나. 막상 때려치울 때는 빠르게 결정했지만 순간적인 판단은 아니다. 사실 처음부터 전자공학과를 갈 마음이 그리 강하지 않았다. 그저 당시엔 전자공학이 최고였고 게다가 수학도 좋아하고 하다 보니 그리된 거지. 대학 다니는 내내 너무 재미가 없어서 앞으로 뭘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더라. 막연하게나마 철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돌아보면 나름대로 가치 체계를 만들었다 부수고 그런 쪽에 관심이 많았다.” 잠시 대학 시절 밴드활동 얘기로 샜다. 박 사장은 대학 시절 고등학교 친구 3명이랑 4인조 밴드 활동을 했단다. 박 사장이 맡은 악기? 역시나 베이스(!) 기타. 한번은 옛 시민회관에서 문화방송 주최로 열린 무슨 대회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올랐단다. 당시엔 무대 설비를 둘로 나눠 앞팀이 반쪽 무대에서 연주하는 동안 다음 팀은 다른 반쪽에서 준비를 하고 있다가 연주가 끝나면 무대를 앞으로 돌려 다음 팀이 자연스레 연주를 하는 식이었다. “열심히 준비를 마치고 막상 우리 차례가 되었는데 어떤 선을 잘못 건드렸는지 도통 악기 소리가 안 나더라. 넷이서 멀뚱멀뚱 서 있다가 그만 내려왔다.” -그러다가 전공 변경 결행에 이른 직접적 계기는? “미국에서 대학 다닐 때다. 스탠퍼드대학에 <스탠퍼드 데일리>라고 학교에서 내는 일간신문이 있었다. 굉장히 리버럴한 신문이지. 그런데 당시 물리학과 대학원생 하나가 고정 칼럼을 쓰고 있었는데, 완전 리버테리언(자유방임주의자)이었거든. 근데 이 친구 얘기가 확 깨는 거야. 70년대 초중반 박정희 시대의 우리나라에선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를 쏟아내는데, ‘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더라.” -장차 가업을 잇겠다는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애초 미국 갈 때부터 안 돌아온다고 하고 떠났다. 간장 장수나 할 사람이 아니라는, 묘한 심리도 있었고.” -결국 가업을 잇게 됐는데. “호기있게 폼나는 전공으로 바꾸긴 했는데 가만 보니 딱히 할 일도 없더라.(웃음) 70~80년대 미국은 현재 한국이랑 많이 비슷했다. 미국 사회 돌아가는 걸 보고 있으니 한국 사회도 저렇게 되겠구나 싶더라.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맡고 계시던 우리 회사도 새로운 것을 적용한다거나 하는 시도를 못할 것으로 봤다. 저러다가는 영영 간장만 만드는 공장으로 전락하는 게 아닐까 싶어 모험을 하기로 했다. 할아버지가 일구신 회사이니 잘됐으면 하는 마음도 강했고.” -어쨌거나 머릿속 생각만 잔뜩 복잡해져서 돌아온 거네. “절대 아님! 생각은 되레 간단해져서 왔다. 철학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엄청 생각할 것도 많고 한데, 어느 정도 지나고 보니까, 나 혼자서 나름대로 만들어가는 세계가 있더라. 나만의 가치관이나 체계가 만들어져 있으니 다른 사람한테도 왜 이렇게 해야 되는지 좀더 쉽게 설명할 수 있었고, 내가 맞다는 생각도 강했다.” -지난해 느닷없이 우리나라에 불어닥친 ‘정의’ 열풍은 어떻게 보는지? “철학과 1학년 들어가면 다 배우는 뻔한 것들이지. 그래도 그런 생각을 해보는 기회를 갖는다는 건 좋다. 그동안 사람들이 왜 그런 쪽으로 생각을 안하는지 잘 이해를 못했다.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보니 답이 나오더라. 바로 생각하기 힘들어서다. 아무것도 아니더라도 생각을 많이 해봐야 확실하게 알게 되는데, 대부분 어렵고 귀찮아하지.” -사장님은 생각하는 게 쉬운가? “그럼 아주 쉽지.” -오늘 인터뷰 카피 제목은 “생각하는 게 가장 쉬웠어요”로 나가면 되겠구먼. “…”(웃음) -철학에서 말하는 정의랑 기업을 경영하면서 느끼는 정의랑은 서로 충돌하지 않나? “결국 베이스가 되는 건 가치 문제지. 우리 회사가 행복경영 같은 걸 강조하는 것도 그런 연유에서고.” -행복경영, 참 좋은 말이다. 한데, 좀 삐딱한 시각에서 보자면 좋은 비전, 좋은 가치라는 것도 결국 경영권 안정이라는 전제조건을 무시하고선 얘기할 수 없는 거 아니냐. 당신처럼 오너 경영 체제에서나 가능할 법한데. “주주 입김이 센 곳에선 당연히 어렵지. 그래서 난 주주자본주의 싫어해. 대부분의 주주들은 돈 버는 데만 관심 있지 회사 잘되는 데는 별 관심 없는 사람들 아니냐?” -뒤집으면, 기업이 좋은 비전을 가지려면 오너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연결된다. “딱히 그런 말은 아니고. 그런 점에서 내가 처한 환경이 유리한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려 했을 뿐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정부가 들어선 지 3년 지났는데, 실제로 기업하기 많이 편해졌나? “…(웃음)” -그다지 안 편해진 모양이네? “뭘 하려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도대체 비전이 뭔지. 비전이 있다고 한다면 고작 70년대 세상을 다시 살고 있는 거 같고. 그래 가지고는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가기 힘들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서 그런 걸 느끼나? 예를 들어 요즘 정부는 물가 잡는다고 난리인데. “완전 코미디지. 요즘 정부 하는 행태는 물가 상승 요인을 시스템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물가를 ‘때려잡는다’는 거지.” -역시나 ‘철학’이 없다는 얘기네.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전체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생각을 도통 안하고 사는 거 같다. 옛날에야 물리적인 것들, 말하자면 생산 캐파가 모자라다 보니 그걸 늘리는 게 급선무였다. 모든 시스템이 거기에 맞춰져 있었지. 그런데 지금 세상은 완전히 달라. 물리적 양을 늘리는 단계는 이미 지났지 않은가? 그러면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도 거기에 맞게 달라져야 하는데, 지금 정부에선 옛날에 했던 것 그대로만 한다.” 돌고 돌아 박 사장이 마지막으로 꺼낸 단어는 우연히도,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복지였다. “그러니 만날 복지가 어떻느니 하는 걸 가지고 아직껏 싸움질이나 하지. 물리적인 생산 캐파가 일정한 수준을 넘어섰으니 나눠 먹으면 될 것을. 남 주는 것은 죽어도 보지 못하고 옛날 시스템을 붙들고만 있으니….” 인터뷰/최우성 산업팀장 morgen@hani.co.kr , 정리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 |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