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군에서 태어난 송기호 변호사는 서울대 무역학과를 나와 군대 제대를 하고 농촌으로 내려가 농촌운동을 하며 직접 ‘농업노동자’의 삶을 살아보기도 했다. 뒤늦게 사법시험에 도전해 변호사가 된 뒤 농업통상 분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법률사무소를 차려 대표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한-EU FTA 오역 밝혀낸 송기호 변호사
지난 15일(금요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수륜법률사무소 그의 사무실 책상 위에 놓인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은 겉표지부터 너덜거렸다. 분야별로 빨강색 라벨이 붙어 있었고, 곳곳엔 형광색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빈 공간마다 빼곡히 적힌 각종 메모도 눈에 띄었다. 송기호(48) 변호사는 지난 2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 한글본에 중대한 번역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제기한 사람이다. 처음엔 고집스레 버티던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도 뒤늦게 1200여쪽의 협정문을 전면 개검독해 추가 오류 200개 이상을 찾아낼 수밖에 없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국회에 제출했던 비준동의안은 두 번이나 철회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13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법안심사소위 공청회에 참석했을 때 정부 대표는 그에게 공식적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인터뷰 장소인 사무실에 20분쯤 늦게 나타났다. 고개 숙여 사과하며 고향에서 올라오신 팔순 어머니를 버스터미널에서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차가 많이 막혔다고 했다. 어머니는 나랏일을 비판하는 아들이 걱정스러워 며칠 전에 서울로 올라오셨다고 한다. 주말도 없이 밤낮 일에만 매달리는 아들을 지켜보고는 한숨 짓고 내려가셨지만.
넥타이를 매지 않은 하얀 와이셔츠 차림의 송 변호사와 마주 앉자마자 때마침 한-유럽연합 비준동의안이 법안심사소위에서 부결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나라당 소장파인 홍정욱 의원이 “물리력을 동원한 일방처리에 반대한다”며 기권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송 변호사는 “헌법이 살아있다는 것을 보인 매우 의미있는 행동”이라며 “한국 통상에 새로운 획을 그을 결정을 내린 홍 의원에게 시민의 한 사람으로 감사한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인터뷰/박순빈 논설위원 sbpark@hani.co.kr
-왜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하면 안 되는가?
“한-유럽연합 비준동의안을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것이 지난 6일이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에 법안심사소위가 만들어져 의원들이 구체적인 내용을 심의하기 시작했다. 만일 심의 과정에서 드러난 많은 문제점을 내버려둔 채 비준동의안을 강행처리한다면 국회 스스로 조약 심사권의 가치를 저버리는 것이다.”
-국회 심의 절차에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에프티에이 협정문은 한국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 통상법, 특히 영미법 체계의 산물이다. 정확한 해설을 특별히 듣지 않으면 협정문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외교통상통일위만으로는 역부족이라 국회에 자유무역협정 특별위원회가 상설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국회법을 보면 상설특별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돼 있다.” 오역은 부처협의 뒷전인 채 교섭에 목맨 탓
EU와 FTA 통과땐 상생·유통법 유지못해
국회에 상설특위 설치, 조약심사 강화 필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으로 직접 영향을 받을 대표적인 분야를 꼽아보면? “우선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옴으로써 지역의 중소형 점포가 경영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경우 대기업 진입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한 유통법, 상생법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대외관계에서는 국제법이 먼저 적용되고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이 신법(신법 우선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유럽과 재협상을 해야 한다.” 국회는 지난해 11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개정안을 차례로 통과시켰다. 유통법(8조)은 동네 재래시장을 ‘전통 상업보존구역’으로 정해 그 경계로부터 500m 안에 대규모 점포가 들어서는 것을 제한한다. 상생법은 중소기업 경영안정을 위해 사업조정을 신청(32조)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두번째는 학교급식이다. 협정문을 보면, 유럽은 학교급식에서 유럽산만 쓸 수 있도록 돼 있는데, 한국은 한국산을 우대할 수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는 한국산 농산물만 쓰도록 예외를 뒀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하는 보편적 복지인 급식조차 우리 농산물을 쓰지 못하게 된다. 우리도 유럽처럼 급식에서 우리 농산물을 쓰도록 다시 협상해야 한다. 그리고 농업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때 우리 농업은 평균 관세율 50%를 인정받았다. 근데 이게 허물어진다. 기간이 길고, 일부 예외를 두더라도 큰 흐름은 농업 강국에 대해 관세 50%를 철폐한다는 거다.” 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한국 농업의 부가가치는 20조원대에서 성장을 멎었다. 2009년 호당 농업소득은 969만원으로, 1995년보다 되레 낮은 수준이다. 지난 16년간 세계무역기구 체제가 요구한 농업분야 관세율 감축은 24%에 그쳤는데도 말이다. -번역 오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월 말 번역 오류를 처음에 어떻게 발견하게 됐나?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중소기업 지원 활동에 참여한 게 계기가 됐다. 한-유럽연합 협정에서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한국산으로 인정받는지 문의가 많았다. 처음에 협정문 한글본을 찾아봤는데 해당 산업계의 현실이나 관행과 달리 낮은 수치였다. 그때 처음으로 영문본도 그렇게 돼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게 첫출발이었다. 이후에 정부가 불일치 문제를 인정하고 유럽연합 쪽과 수정해 나간 건 그나마 다행스럽다.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의 법률생활을 외교관이 영어로 짓밟을 수 없다는 명백한 현실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정부는 번역 오류는 착오나 실수이며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자유무역협정 본질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통상정책의 구조적 문제가 집약적으로 드러났다. 정부조직법상 통상교섭본부는 교섭만 하는 곳이다.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중앙부처들이 대외적 교섭창구를 통상교섭본부에 위임하는 구조이다. 중요한 통상정책은 산업 부처가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번역상 문제, 불일치가 생긴 것은 대외적으로 입 노릇 하는 쪽과 대내적으로 중요한 통상산업을 결정하는 쪽 사이에 실질적인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없었다는 의미다. 산업 담당 부처와 국회, 이해관계자인 기업인·농민·어민과의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 -과거 통상협상을 평가한다면? “1960년 우리나라가 가트(GATT·관세무역일반협정)에 가입하고 1980년 후반 우루과이라운드까지는 가트 체제를 최대한 이용했다. 미국, 유럽연합에서는 냉전체제에 한국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에 한국이 가트를 통해 수출 중심으로 나가는 것을 용인했다. 그러나 1980년 후반 질적으로 다른 변화가 생긴다. 경제개발 시대에 형성해온 국내규범을, 국제규범이라는 이름으로 해체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2008년 미국의 국제금융위기가 터질 때까지 20년간 미국과 유럽연합의 규범이 한국에 일방적으로 이식됐다. 이 과정은 국제통상법의 이름으로 이뤄졌다.” -통상법에 대한 관심이 변호사 활동에는 지장이 없나? “늘 고민스럽고,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다. 통상법에 대한 관여가 간접적인 형태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한다. 또 혼자 잠깐 하고 말 일이 아니라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오는 5월에 국제금융통상위원회라는 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려고 한다. ”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왜 통상법에 관심을 가졌나? “아주 잠깐 농촌생활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너무 힘들더라. 사법연수원에 가서는 남들처럼 빛도 나고 우아하고 글로벌한 그런 일을 해보고 싶었다.” -농업법과의 인연은? “지극히 평범한 로펌 변호사였는데, 어느 날 전국 마늘생산자 농민들이 찾아왔다. 2002년 중국산 수입 마늘이 급증해 농가가 망하게 생겼는데 정부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처) 피해조사조차 거부한다는 거였다. 대한민국에 통상법 절차가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정부가 세이프가드 피해조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피해조사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우리의 재량이지,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세이프가드 피해조사는 사법심사의 대상이며 요건이 되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통상법 역사상 피해조사 문제에 대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그 사건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 종래 관여했던 농업과, 거기서 벗어나보려고 관심을 갖던 통상법이 마늘사건으로 만난 것이다. 그리고 인생을 그렇게 잡기로 했다.” -우아한 변호사로 살려고 통상법을 했다가 ‘마늘사건’을 계기로 잠재된 디엔에이(DNA)가 다시 살아난 것인가? “바로 농업통상법이라는 주제를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농업통상법이야말로 80년대 후반부터 금융위기까지 20년간 가장 집중적으로 국제규범이 한국에 이식됐던 분야이다. 그걸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다. 농업통상을 했기 때문에 정부가 말하는 국제규범이 실제로 저 시골의 평범한 농민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한국인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목격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첫번째 낸 책 〈WTO 시대의 농업통상법〉을 내가 죽거든 관에 넣어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이 책이 내가 마늘사건을 계기로 정한 삶의 방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 개방에 반대하는 ‘보호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이미 하루에 약 3조원을 수출입하는 개방국가다. 나는 일관되게 법률시장의 더 철저한 개방을 주장했다. 개방과 보호는 반대말이 아니다. 개방은 어떠한 가치를 더 중요하게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다. 예를 들면 중국 상하이에 가면 20년 전부터 중국 기업들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과 일본, 미국의 로펌에서 법률서비스를 받고 있다. 중국이 법률시장을 개방했기 때문이다. 국제화 시대에 일반 기업과 시민이 국제적 법률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는 것, 그게 중국의 법률시장 개방이다. 골목상권과 학교급식을 위협하는 한-유럽연합,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유럽과 미국에 자동차를 더 팔 수 있다는 이유를 든다. 나는 그렇게 해서 우리가 보호하고 추구하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2002년 중국산 마늘파동 소송 뒤 인생전환
‘농업통상법’ 다룬 첫 책, 관에 넣고 싶을정도
개방으로 우리가 보호할 가치 잃어선 안돼 -통상법에서 대안은 무엇인가? “대한민국 사회를 이루는 기본 가치를 담은 한국의 법률이 먼저이고, 그 뒤에 통상이 있어야 한다. 통상이 우리 대법전을 누더기로 만들고, 서로 모순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국제통상규범을 주도할 여력이 없는 한국은 다자주의로 가야 한다. 양자주의, 자유무역협정은 안 된다. 이는 1994년 겨울에 국회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이 국회의원들에게 세계무역기구를 통과시켜달라고 하면서 한 말이기도 하다. 세계무역기구가 진정한 다자주의 개방체제가 되도록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나 남미 등과 적극 협력하는 것이 한국 경제에 필요한 통상이다.” -바람직한 통상질서, 주권이 담기는 통상조약을 체결하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헌법은 국회에 조약심사권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일반 법률과는 달리 조약은 국회가 조문을 바꿀 수 없다. 이 때문에 필연전으로 협상 과정에 국회가 관여해야 한다는 헌법적 해석이 가능하고, 이를 위해 조약체결법이나 통상절차법을 제정할 근거가 생긴다. 특히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에서는 유통법·상생법과 학교급식 분야에서 재협상해야 한다.” 정리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 송기호는
서울대 출신 농업노동자서 통상법 전문가로
서울대 무역학과 81학번인 송기호 변호사는 대학과 군 복무를 마치자마자 곧장 농촌으로 내려갔다. ‘데모하면 농약 먹고 죽겠다’는 아버지의 서슬에 시위에 주도적으로 나서지는 못하고, 서울에서는 삶과 생명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명문대 출신 아들의 농촌행에 절망할 아버지를 생각하면 차마 고향인 고흥으로 갈 수는 없었다. 그는 한국와이엠시에이(YMCA)전국연맹 농촌부 지역간사로 해남·나주·영암·순창·승주 등 객지를 떠돌았다. 1989년부터는 영암군 도포면 봉호리에 정착해 ‘농업노동자’로 생산 현장에 발을 내디뎠지만 끝내 좌절감을 맛보았다. 일감은 많았지만 논밭을 장만할 처지는 못 됐고, 건강마저 해쳐 결국 농촌을 떠나게 된다.
취직 공부를 하며 일자리를 찾았지만 농사짓다 나이만 먹은 신입사원을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러다가 1년 만에 국민은행에 들어갔다. 부모님한테 인정받은 첫 직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은행 일에서 그다지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 결혼까지 한 처지에서 사법시험 준비에 나선 건 그 때문이었다.
그는 농촌을 다시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사법연수원 수료 뒤 로펌 변호사로 처음 맡은 사건의 의뢰인도 대기업이었다. 상대는 대기업에서 해고된 노동자였다. 열심히 일했고 대기업이 승소했다. 그러나 그를 가장 간절히 부르는 사람들은 결국 땅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로펌을 사직하고는 오스트레일리아로 가서 농업과 환경법을 공부했다. 귀국 뒤 뜻 맞는 몇몇 변호사들과 수륜법률사무소를 꾸려 자유롭게 농업통상 문제를 다룰 수 있는 터전을 마련했다. 2008년 미국 쇠고기 협상 때는 미국의 동물성 사료 금지 조처를 담은 미 식품의약청(FDA)의 보도자료를 정부가 정반대로 번역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맛있는 식품법 혁명>(김영사 펴냄) 등 5권의 책을 냈다. 정은주 기자
송 변호사가 번역 오류를 잡는데 사용한 한-유럽연합 에프티에이 협정문 책자. 표지가 너덜거리고 각종 메모로 가득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에프티에이 협정문은 한국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 통상법, 특히 영미법 체계의 산물이다. 정확한 해설을 특별히 듣지 않으면 협정문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외교통상통일위만으로는 역부족이라 국회에 자유무역협정 특별위원회가 상설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국회법을 보면 상설특별위원회를 둘 수 있도록 돼 있다.” 오역은 부처협의 뒷전인 채 교섭에 목맨 탓
EU와 FTA 통과땐 상생·유통법 유지못해
국회에 상설특위 설치, 조약심사 강화 필요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으로 직접 영향을 받을 대표적인 분야를 꼽아보면? “우선 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옴으로써 지역의 중소형 점포가 경영에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경우 대기업 진입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한 유통법, 상생법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대외관계에서는 국제법이 먼저 적용되고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이 신법(신법 우선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유럽과 재협상을 해야 한다.” 국회는 지난해 11월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 개정안을 차례로 통과시켰다. 유통법(8조)은 동네 재래시장을 ‘전통 상업보존구역’으로 정해 그 경계로부터 500m 안에 대규모 점포가 들어서는 것을 제한한다. 상생법은 중소기업 경영안정을 위해 사업조정을 신청(32조)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그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두번째는 학교급식이다. 협정문을 보면, 유럽은 학교급식에서 유럽산만 쓸 수 있도록 돼 있는데, 한국은 한국산을 우대할 수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에서는 한국산 농산물만 쓰도록 예외를 뒀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하는 보편적 복지인 급식조차 우리 농산물을 쓰지 못하게 된다. 우리도 유럽처럼 급식에서 우리 농산물을 쓰도록 다시 협상해야 한다. 그리고 농업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할 때 우리 농업은 평균 관세율 50%를 인정받았다. 근데 이게 허물어진다. 기간이 길고, 일부 예외를 두더라도 큰 흐름은 농업 강국에 대해 관세 50%를 철폐한다는 거다.” 세계무역기구 가입 이후 한국 농업의 부가가치는 20조원대에서 성장을 멎었다. 2009년 호당 농업소득은 969만원으로, 1995년보다 되레 낮은 수준이다. 지난 16년간 세계무역기구 체제가 요구한 농업분야 관세율 감축은 24%에 그쳤는데도 말이다. -번역 오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2월 말 번역 오류를 처음에 어떻게 발견하게 됐나? “서울지방변호사회의 중소기업 지원 활동에 참여한 게 계기가 됐다. 한-유럽연합 협정에서 어떤 요건을 갖춰야 한국산으로 인정받는지 문의가 많았다. 처음에 협정문 한글본을 찾아봤는데 해당 산업계의 현실이나 관행과 달리 낮은 수치였다. 그때 처음으로 영문본도 그렇게 돼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그게 첫출발이었다. 이후에 정부가 불일치 문제를 인정하고 유럽연합 쪽과 수정해 나간 건 그나마 다행스럽다.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의 법률생활을 외교관이 영어로 짓밟을 수 없다는 명백한 현실을 깨닫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 -정부는 번역 오류는 착오나 실수이며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자유무역협정 본질과는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동의하지 않는다. 통상정책의 구조적 문제가 집약적으로 드러났다. 정부조직법상 통상교섭본부는 교섭만 하는 곳이다. 산업 정책을 담당하는 중앙부처들이 대외적 교섭창구를 통상교섭본부에 위임하는 구조이다. 중요한 통상정책은 산업 부처가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번역상 문제, 불일치가 생긴 것은 대외적으로 입 노릇 하는 쪽과 대내적으로 중요한 통상산업을 결정하는 쪽 사이에 실질적인 내부 커뮤니케이션이 없었다는 의미다. 산업 담당 부처와 국회, 이해관계자인 기업인·농민·어민과의 충분한 협의가 없었다.” -과거 통상협상을 평가한다면? “1960년 우리나라가 가트(GATT·관세무역일반협정)에 가입하고 1980년 후반 우루과이라운드까지는 가트 체제를 최대한 이용했다. 미국, 유럽연합에서는 냉전체제에 한국의 역할이 필요했기 때문에 한국이 가트를 통해 수출 중심으로 나가는 것을 용인했다. 그러나 1980년 후반 질적으로 다른 변화가 생긴다. 경제개발 시대에 형성해온 국내규범을, 국제규범이라는 이름으로 해체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2008년 미국의 국제금융위기가 터질 때까지 20년간 미국과 유럽연합의 규범이 한국에 일방적으로 이식됐다. 이 과정은 국제통상법의 이름으로 이뤄졌다.” -통상법에 대한 관심이 변호사 활동에는 지장이 없나? “늘 고민스럽고, 지혜가 필요한 부분이다. 통상법에 대한 관여가 간접적인 형태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한다. 또 혼자 잠깐 하고 말 일이 아니라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오는 5월에 국제금융통상위원회라는 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려고 한다. ”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왜 통상법에 관심을 가졌나? “아주 잠깐 농촌생활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너무 힘들더라. 사법연수원에 가서는 남들처럼 빛도 나고 우아하고 글로벌한 그런 일을 해보고 싶었다.” -농업법과의 인연은? “지극히 평범한 로펌 변호사였는데, 어느 날 전국 마늘생산자 농민들이 찾아왔다. 2002년 중국산 수입 마늘이 급증해 농가가 망하게 생겼는데 정부가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처) 피해조사조차 거부한다는 거였다. 대한민국에 통상법 절차가 들어온 이래 처음으로 정부가 세이프가드 피해조사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피해조사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우리의 재량이지,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세이프가드 피해조사는 사법심사의 대상이며 요건이 되면 반드시 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통상법 역사상 피해조사 문제에 대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그 사건이 큰 의미로 다가왔다. 종래 관여했던 농업과, 거기서 벗어나보려고 관심을 갖던 통상법이 마늘사건으로 만난 것이다. 그리고 인생을 그렇게 잡기로 했다.” -우아한 변호사로 살려고 통상법을 했다가 ‘마늘사건’을 계기로 잠재된 디엔에이(DNA)가 다시 살아난 것인가? “바로 농업통상법이라는 주제를 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농업통상법이야말로 80년대 후반부터 금융위기까지 20년간 가장 집중적으로 국제규범이 한국에 이식됐던 분야이다. 그걸 처음부터 알았던 것은 아니다. 농업통상을 했기 때문에 정부가 말하는 국제규범이 실제로 저 시골의 평범한 농민에게 어떻게 다가가는지, 한국인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 목격할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첫번째 낸 책 〈WTO 시대의 농업통상법〉을 내가 죽거든 관에 넣어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했다. 이 책이 내가 마늘사건을 계기로 정한 삶의 방향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 개방에 반대하는 ‘보호주의자’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은 이미 하루에 약 3조원을 수출입하는 개방국가다. 나는 일관되게 법률시장의 더 철저한 개방을 주장했다. 개방과 보호는 반대말이 아니다. 개방은 어떠한 가치를 더 중요하게 보호할 것인가의 문제다. 예를 들면 중국 상하이에 가면 20년 전부터 중국 기업들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과 일본, 미국의 로펌에서 법률서비스를 받고 있다. 중국이 법률시장을 개방했기 때문이다. 국제화 시대에 일반 기업과 시민이 국제적 법률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호하는 것, 그게 중국의 법률시장 개방이다. 골목상권과 학교급식을 위협하는 한-유럽연합,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유럽과 미국에 자동차를 더 팔 수 있다는 이유를 든다. 나는 그렇게 해서 우리가 보호하고 추구하려는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 2002년 중국산 마늘파동 소송 뒤 인생전환
‘농업통상법’ 다룬 첫 책, 관에 넣고 싶을정도
개방으로 우리가 보호할 가치 잃어선 안돼 -통상법에서 대안은 무엇인가? “대한민국 사회를 이루는 기본 가치를 담은 한국의 법률이 먼저이고, 그 뒤에 통상이 있어야 한다. 통상이 우리 대법전을 누더기로 만들고, 서로 모순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국제통상규범을 주도할 여력이 없는 한국은 다자주의로 가야 한다. 양자주의, 자유무역협정은 안 된다. 이는 1994년 겨울에 국회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이 국회의원들에게 세계무역기구를 통과시켜달라고 하면서 한 말이기도 하다. 세계무역기구가 진정한 다자주의 개방체제가 되도록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나 남미 등과 적극 협력하는 것이 한국 경제에 필요한 통상이다.” -바람직한 통상질서, 주권이 담기는 통상조약을 체결하려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헌법은 국회에 조약심사권을 주고 있다. 그런데 일반 법률과는 달리 조약은 국회가 조문을 바꿀 수 없다. 이 때문에 필연전으로 협상 과정에 국회가 관여해야 한다는 헌법적 해석이 가능하고, 이를 위해 조약체결법이나 통상절차법을 제정할 근거가 생긴다. 특히 한-유럽연합 자유무역협정에서는 유통법·상생법과 학교급식 분야에서 재협상해야 한다.” 정리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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