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미국 투자자가 국제분쟁을 제기할 경우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로 갈 가능성이 높다. 한국과 미국이 모두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협약에 가입돼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지난달 10일 국내 언론으로는 최초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를 방문 취재했다.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는 미국 워싱턴 지(G)거리 1800번지에 자리한 세계은행 건물의 3층에 있었다. 겉모습은 여느 사무실과 다를 바 없다. 칸막이 있는 책상에 29개국 출신의 직원 42명이 일하고 있는데 재정담당자는 한국인이었다.
1966년 세계은행이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를 설립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가 현지 법원의 중립성을 신뢰할 수 없다며 ‘투자자를 위한 재판소’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투자자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느껴졌다.
중재인은 법관처럼 매일 출근하는 게 아니다. 중재 사건이 발생하면 개별적으로 선정되고 변론이 있으면 장소를 빌려 심리한다. 변론은 양 당사자가 동의해야만 공개한다. 중재인은 대부분 다국적 기업을 위해 일하는 국제투자법 전문가들이다.
중재인 후보자는 147개 협약국(최대 8명씩)과 세계은행 총재(최대 20명)가 등록한 총 521명이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8명씩 후보자가 등록돼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중재를 맡는 것은 아니다. 당사자가 직접 1명씩 중재인을 고르고 중재판정부의 의장은 합의해 선임된다. 양쪽이 합의를 못 하면 세계은행 총재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사무총장이 선정한다. 대략 75%는 합의로, 25%는 지명으로 정해진다. 중재판정은 다수결로 결정된다.
지금까지 중재인으로 선정된 사람은 미국인이 137명으로 가장 많고, 한국인은 한 명도 없다. 엘로이즈 오바디아 선임변호사는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는 한 당사자와 같은 국적의 중재인을 선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국 관련 사건(123건)이 많아서 미국인이 많이 중재인으로 선정됐다는 정부의 설명과는 차이가 난다. 실제로는 20~30명이 클럽을 형성해 반복 지명되기 때문이다. 오바디아 변호사는 “당사자들은 경험이 많은 중재인을 선호한다. 새로운 인물은 변호인으로 먼저 활동하거나 관련 논문을 써서 좋은 평판을 얻어야 기회가 생긴다”고 말했다. 우선 투자자의 눈에 띄어야 중재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중재 사건은 최근 급증하는 추세다. 현재도 143건이 계류중이다. 1966년 이후 접수된 사건이 360여건이며, 그 절반이 지난 8년 동안 들어왔다. 멕 키니어 사무총장은 “외국인 직접 투자와 투자협정이 늘어나고 국제중재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재 비용은 매우 비싸다. 사건은 평균 25~30개월 진행되는데, 이렇게 되면 50만~100만달러(약 5억6000만~11억2000만원)가 족히 든다. 중재인의 하루 수당이 3000달러(약 340만원)나 된다. 모든 비용은 당사자가 부담한다. 워싱턴/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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