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수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입막음용으로 지급된 5천만원 돈다발 사진.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관봉’ 형태로 포장돼 있다. 오마이뉴스 제공.
명절때 기업 비서실·자금부 요구
청와대와 거래 지점서 유통 많아
청와대와 거래 지점서 유통 많아
강남 PB센터 1년에 한두 번꼴…개인 인출 극히 드물어
“청와대 요구땐 목적 안물어”…자금 추적 피하려 이용도 장진수 전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의 입막음용으로 건네진 ‘관봉권’(사진)은 보통사람이 평생 한번 구경하기도 힘든 돈이다. ‘관봉’(官封)은 관청에서 서류에 도장을 찍어 밀봉하던 데서 유래한 용어다. 조폐공사는 한국은행에 신권을 보낼 때 액수와 화폐 상태에 이상이 없음을 보증하는 의미로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싼다. 이를 관봉이라 한다. 한국은행은 관봉권을 그대로 시중은행에 내보낸다. 관봉권에 대해서는 한은과 시중은행 모두 화폐 액수를 확인하지 않는다. 한은 관계자는 “예전에는 관봉을 신권과 동일한 의미로 썼지만 일제 잔재로 여겨 이제는 쓰지 않고 그냥 제조화폐나 신권으로 부른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공개된 5만원권 5000만원 뭉치는 흔히 보는 ‘각티슈’ 크기에 불과하다. 한은과 조폐공사는 5000만원을 한묶음의 비닐포장으로 묶고, 이 묶음 10개(5억원)를 다시 비닐로 포장해 시중은행에 공급한다. 한은 발권국 관계자는 “매년 은행별 점포 수 등을 고려해 신권 지급 한도를 배정해주면 은행들이 시기와 양을 결정해 받아 간다”며 “관봉 번호를 따로 관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봉인도 뜯지 않은 신권 돈다발인 ‘5000만원 관봉권’은 어떤 경로로 유통되는 걸까? 은행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관봉권이 지점에서 개인에게 인출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고액 재산가들을 상대하는 서울 강남권의 일부 프라이빗뱅킹(PB) 센터에서 1년에 한두번 볼 수 있는 정도다. 관봉권 인출 사례가 아예 없는 지점이 훨씬 많다. 한 시중은행 직원은 “강남의 피비 가운데 브이아이피(VIP) 고객이 미리 전화를 걸어 거액 현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준비해둔 관봉권을 전해준다”며 “거액 자산가들은 신분 노출을 꺼려 백화점 물품 구매 등을 현금으로만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제로 관봉권이 자주 공급되는 사례는 기업 비서실이나 자금부가 명절 때 임원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5000만~1억원의 신권을 요구하는 경우다. 청와대와 거래하는 은행 지점도 관봉권이 유통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거래 지점에 근무했던 한 은행원은 “청와대는 공금은 물론 직원들 개인돈까지 모두 신권으로 인출해 준다”며 “늘 신권을 준비해두며, 5000만원 단위는 관봉권으로 나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청와대라는 위상도 있지만 거래처가 분명하고 공적인 용도에 쓰일 것으로 보기 때문에 2000만원 이상 자금도 출처나 인출 목적 등을 묻지 않고 돈을 건네준다”며 “(돈세탁 방지 기구인) 금융정보분석원(FIU)도 이를 이유로 특별히 문제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장 주무관이 돈을 건네받은 지난해 4월 청와대 지점에 근무했던 농협 관계자는 “명절 때는 (관봉권 형태의) 신권 뭉치가 나가는 경우가 있지만 평소에는 잘 없다”고 말했다. 자금추적 전문가들은 관봉권이 돈의 출처를 감추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보통 시중은행에서 거래되는 화폐는 띠지에 담당자의 도장을 찍는데 이를 토대로 돈의 출처를 추적할 수 있다”며 “처음부터 관봉권을 요구했다면 자금추적을 막으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겠느냐”고 추정했다.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사진 장진수 전 주무관 제공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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