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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금융민주화 운동’은 왜 없는가

등록 2012-08-03 18:39수정 2012-08-03 21:01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금리 담합’ 은 뇌관 지닌 대형사건
당신의 돈을 위한 주권 싹 키울때
정치권을 중심으로 경제민주화 논쟁이 한창이다. 시장질서에서 기업 지배구조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범위도 아주 넓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금산분리 강화, 징벌적 배상제 등 거론되는 해법도 다양하다. 하지만 어느덧 지루한 느낌마저 드는 경제민주화 논쟁이란 것도, 실상 그 얼개를 따지고 보면 무척 단순하다. 결국엔 가장 바람직한 ‘규칙’(rule)과 ‘행위자’(player)의 조합을 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설령 해법과 관련한 합의점을 찾기는 어려울지언정, ‘무엇이 문제인가’를 따지는 일은 비교적 쉽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일부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짬짜미(담합) 의혹 조사에 나선 일은, 그 파장을 쉽사리 가늠하기 힘든 대형 사건이다. 마침 국제금융의 본고장인 영국 런던에서 세계 금융기관들이 얽힌 리보금리 조작 사태가 터진 직후라 팽팽한 긴장감마저 더해준다. 경우에 따라선 2007~8년을 달군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파동의 맥을 잇는 대형 금융스캔들로 비화할 폭발성도 지녔다. 다만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금융영역과 관련해선 아예 ‘문제 드러내기’조차 쉽지 않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문제’가 없다면 당연히 ‘해법’도 없기 마련이다.

굳이 이름 붙이자면, ‘금융민주화’쯤이 될 법한 과제가 첫발을 떼기조차 유독 어려운 까닭은 무엇일까? 단순하게 말해 제조업이란 돈(자본)과 사람(노동)을 합쳐 물건을 만든 뒤 이를 내다팔아 수익을 올리는 일이다. 여기선 물건을 만드는 사람, 사용하는 사람 등 이해관계자가 비교적 명확하다. 물건을 만드는 장소, 달리 말해 충돌과 갈등의 ‘공간’ 역시 뚜렷하다. 전통적인 의미의 공장이 그 예가 될 게다. 이에 반해 금융이란 돈을 다루는 일이다. 사실 이해관계자는 더 광범위하다고도 할 수 있다. 대출을 받거나 예금을 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드문 편이다. 그럼에도 대출 창구나 현금인출기 앞 등 충돌·갈등 지점과 성격은 극히 개별적이고 분산적이다. 민주화 따위의 거대담론이 들어설 여지가 적은 이유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금융영역을 떼어놓고선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 금융영역에서부터 근본적 변화의 돌파구를 열어젖히지 못한다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는 건 물론이다. 돈 냄새 풀풀 나는 금융에 민주화의 입김을 불어넣는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대략 다섯가지 얼개를 그려볼 수 있다.

우선 ‘금융시장’을 민주화해야 한다. 금융시장은 속성상 대형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한 소수 참가자들이 절대적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익은 온전히 금융기관 주머니로 들어가면서 그에 따른 위험은 사회 전체가 함께 부담하는 셈이다. 시장 참가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성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정보 공개의 투명성 등을 높이는 일은 꼭 필요하다. ‘금융회사 운영’의 민주화도 빼놓을 수 없다. 경제민주화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인 지배구조 개선 작업은 금융회사에도 엄격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다음은 ‘금융정책’ 민주화다. 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금융소외 해소와 금융관료에 대한 통제 등도 모두 여기에 포함된다. 특히 중요한 건 금융소비자 주권찾기다. 금융소비자 교육뿐 아니라, 이제라도 다양한 형태의 금융감시 운동의 싹을 키워야 한다. 예컨대 금융기관의 사회적 책임을 예리하게 감시하고, 나라 밖에서 인권과 환경 등을 해치는 사업영역에 진출하는 것을 막는 국제적 연대 운동에도 힘을 보태야 할 때다. 마지막 과제는 ‘국제 금융질서’ 자체를 민주화하는 일이다.

최우성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A href="mailto:morgen@hani.co.kr">morgen@hani.co.kr</A>
최우성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morgen@hani.co.kr
금융이란 결코 현대 자본주의의 한 ‘변종’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진화한 종’에 가깝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금융주도(finance-led) 자본주의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심지어 제조업 분야의 글로벌 대기업에서조차 제조와 판매 등 전통적 의미의 영업활동보다는 환차손익, 위험관리 등 재무적·금융적 활동의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는 추세다.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시야를 금융민주화 쪽으로 넓혀나가야 할 때다.

최우성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morg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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