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파생상품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회사가 법정관리에 처하는 아픔을 겪은 조붕구(48) 금융소비자협회 공동대표는 “은행이 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과 직원들까지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
한겨레가 만난 사람
금융소비자협회 조붕구 공동대표
금융소비자협회 조붕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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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피해 공동대책위 부위원장
지난해부터 본격 금융소비자운동 -키코 사태에서 무얼 배웠나? “키코는 금융탐욕의 집적판이다. 기업과 유동성 공급기관은 공존·상생해야 한다. 그런데 유동성 공급기관이 수익을 무리하게 내려고 하면 기업을 잡아먹게 돼 있다. 게다가 장내 파생상품도 아니고 장외 파생상품을 만들어서 기업을 위험에 빠뜨렸다. 기업체가 쓰러지면 부실이 그대로 금융기관으로 가고, 금융기관이 부실화하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줘야 한다. 이익을 보는 건 금융회사뿐이다. 키코 기업들은 ‘우리가 키코 당하기를 잘했다’고 얘기한다. 덕분에 대한민국의 현실을 알게 됐다고.” -어떻게 금융소비자 운동을 시작할 생각을 하게 됐나? “정부가 조정자 책임을 방기한 상황에서 금융소비자 스스로 자위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10년간 시간순으로 보면, 2003년 카드 대란, 2007년 펀드 불완전 판매, 2008년 키코 사태, 2010년 저축은행 사태 등 주기적으로 금융자본에 의한 약탈 사고가 터지고 있다. 국민 모두가 피해자다. 최근 불거진 금융권의 시디금리 담합 의혹만 해도 그렇다. 개인, 기업, 정부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피해자다. ‘금융의 약탈자본화’가 이렇게 심각한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더라. (착한 재무 주치의를 표방하는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의 소개로 금융소비자권리찾기연석회의에 갔는데 거기서 많이 배웠다. ‘이런 일들은 청와대 비서관들이 해야 하는 건데’ 싶은 일들을 그분들이 하더라. 청와대는 뇌물이나 받고 있는데. 감동받았다. 이거 우리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업이 은행과 싸우는 건 돈키호테 같은 무모한 짓 아닌가? “기업을 하려면 시끄러운 데 안 가는 게 맞다. 타깃이 되면 세무조사 들어오고, 주변에서도 다 안 좋게 본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야 하나. 내가 제3자도 아닌 피해 당사자인데. 피해 당사자가 가만히 있으면 누가 해결해주나. 불의에 대한 분노 같은 게 있다. 정의감 없이 기업이 돈만 좇는다면, 남을 쥐어짜내기만 한다면 이건 아니지 않나.” “키코 은행책임 인정 10%도 안돼
전세계서 유독 한국만 가입자 패소
금융 마피아·모피아 때문 아니겠나” -시대적 화두와도 연관성이 있다. 요즘 화두는 공정, 정의다. “나는 정의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 사람들 만나보면 굉장히 정의감이 강하다. 그 사람들 만나면서 나도 그렇게 잘못 산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의롭게 살면) 리스크가 있다.”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1980년대는 역설적으로 그를 정의감이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무역회사 외환담당과 중장비제조업체 영업담당을 거쳐 서른세살의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한 그는 처음에 무역업으로 성공했다. 벌어들인 돈으로 아파트와 땅을 샀다. 그런데 “그렇게 가다가는 임대업자로 전락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정의롭지 않았다. 시화공단에 공장을 만들었고, 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했다. 경쟁사에 견줘 6년 정도 제조기술이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달의 무역인상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충북 음성에 더 큰 공장을 지으려던 순간, 키코 사태를 맞았다. -키코 공대위 부위원장으로서 이미 타깃이 된 거 아닌가? “내부적으로도 홍역을 치렀다. 부실이 생겼으면 오너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바이어 만나러 다니고, 돈 빌려 오려고 그래야 직원들이 안정된다. 근데 오너가 메가폰 들고 거리로 나다니고, 언론 만나고 그러니까 원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금융당국을 하도 비판하니까, 금융위원회의 한 과장은 전화로 “반드시 응분의 조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라. 그래서 내가 금융위 건물 밑에 가서 전화했다. 내려오라고, 어떤 조처를 취할 거냐고 따졌다. 나는 주눅 들지 않았다. 나라고 계산 안 한 거 아니다. 영업망이 해외에 있으니까 내가 큰소리칠 수 있는 거다. 해외 영업망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 날아갔을 것이다. 지금 국내 대리점은 전부 문 닫았다.” “정부가 조정자 책임 방기했기에
금융소비자 스스로 조직 만든것
청와대는 뇌물이나 받고 있고…” -금융소비자협회는 시민단체인가? “시민단체 맞다. 다만 기업이 돈을 내서 만들었다는 점이 일반 시민단체와 다르다. 회원은 2천명가량 된다. 회원이 주로 금융 피해자들인데 이분들한테 돈 걷는 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회비는 받지 않고 있다. 키코 피해 기업만이 아니라 에듀머니,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금융정책연구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와는 서민금융보호네트워크를 함께하고 있다.”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나? “은행과 카드의 수수료 문제를 이슈화해 정부의 인하 방침을 이끌어냈다. 제일저축은행 명의도용 문제를 제기해서 피해보상을 받아냈고, 저축은행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별로 신경쓰지 않던 분야를 주류 운동으로 바꿔놓은 게 성과다. 우리는 금융위원회와 동급으로 대통령 직속의 금융소비자위원회 독립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금융감독과 소비자보호 기능을 분리하자는 얘기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피해를 보지 않았던 오스트레일리아가 이런 쌍동형 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이와 관련한 금융개혁 관련 법안을 야당과 함께 준비중이다. 오는 22일 국회에서 공청회가 열린다.” 금융회사들의 시디금리 짬짜미 의혹으로 터져나왔던 사람들의 분노는 폭염의 시작과 함께 어느새 녹아버린 느낌이다. 고졸이라는 이유로 금리를 올려받다가 탄로난 시중은행에 대한 팔매질 역시, ‘다이내믹 코리아’의 숱한 이슈들에 묻혀버렸다. 이 나라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사안임에도 사회적 관심이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금융이라는 영역의 난해함 탓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숫자와 수학 공식까지 동원되는 금융파생상품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금융소비자협회 같은 단체의 구실이 더 중요해지는 까닭이다. -최근에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시디금리 담합 의혹 조사를 시작하는 등 금융 관련 이슈가 계속되고 있다. “시디금리 담합 사건은 ‘탐욕 금융’의 수탈 대상이 금융회사를 제외한 모든 개인 및 단체, 기업, 학교, 정부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키코 피해 업체들은 당해봐서 안다. 통제되지 않는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이 저지르는 금융범죄가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깨진 지 오래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조사도 해보지 않고 담합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공정거래위원회 뒤에 숨어 있지 말고 전면에 나서서 조사를 해야 한다. 원래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을 공정위가 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몇몇 금융범죄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망각하고 사는 집단이다. 철저한 쇄신과 반성을 촉구한다.” “CD금리 담합 의혹 전면 조사를
금융의 탐욕 제재할 시스템 절실
금융소비자위원회 독립설치해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아직은 공정위 조사를 기다려야 할 때라고 본다. 의혹 단계이기 때문에 피해 규모를 산정하기 어렵다. 시디금리 담합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행정명령을 통해서 피해보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안 된다면 우리는 국민 원고인단을 꾸려 투쟁의 전면에 나설 것이다. 공정위가 의혹을 덮는다면 국회로 간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금융을 통제하고, 제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금융소비자위원회를 설치하고, 금융소비자들이 은행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금융독재를 타도하겠다고 호언한 적이 있다. 순화해서 말하면 금융민주화 정도가 될 텐데, 정말 가능할까? “충분히 가능하다. 국민이 없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듯이, 소비자들이 탐욕스러운 자본에 등을 돌리면 자본주의도 불가능하다.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탐욕과 탈법은 제재해야 한다.” -앞으로 계획은? “키코 공대위를 설득해서 금융소비자협회 지원을 더 강화하려고 한다. 공대위에는 주거래은행을 바꿀 정도로 파워 있는 회사가 많다. 살아 있는 기업들이 더 가열차게 싸워야 다른 죽어 있는 기업들도 살아날 수 있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탐욕금융’의 주머니에서 보상금이 나와야 한다.” 조 대표의 개인적인 목표는 코막중공업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지속가능한 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술개발 인력을 위기 이전 수준으로 복원하는 게 당장의 과제다. 그가 다시 당당한 수출역군으로 우뚝 서는 날, 키코 투쟁 과정에서 항의의 뜻으로 정부에 반납했던 수출의 탑도 그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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