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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키코·저축은·금리담합…금융약탈 이 지경인데 아무도 신경 안써”

등록 2012-08-12 19:31수정 2012-08-12 21:16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회사가 법정관리에 처하는 아픔을 겪은 조붕구(48) 금융소비자협회 공동대표는 “은행이 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과 직원들까지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신소영 기자 <A href="mailto:viator@hani.co.k">viator@hani.co.k</A>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에 가입했다가 회사가 법정관리에 처하는 아픔을 겪은 조붕구(48) 금융소비자협회 공동대표는 “은행이 당사자만이 아니라 가족과 직원들까지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
한겨레가 만난 사람
금융소비자협회 조붕구 공동대표

금융소비자협회 조붕구 공동대표

“나를 키운 건 8할이 아스팔트”이던 운동권 학생에서 수출역군으로 변신했던 조붕구(48) ㈜코막중공업 대표이사는 은행 때문에 다시 한번 인생의 중대한 변곡점을 맞았다. 은행의 권유로 키코(KIKO)라는 이름의 통화옵션상품에 가입했다가 큰 손실을 본 뒤 회사가 법정관리에 처하자, 금융자본을 상대로 다윗의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키코피해기업 공동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인 그는 좀더 큰 틀의 금융소비자 운동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지난해 3월 금융소비자협회를 창립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회사 살릴 생각은 안 하고 엉뚱한 짓 한다”는 주변의 냉소도 그를 막지 못했다. 금융의 약탈자본화 현상이 심각하다는 걸 국민들에게 알리고 이를 제어하기 위한 운동이 시급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때마침 미국에서 ‘월가 점거(오큐파이 월스트리트) 운동’이 시작됐고, 금융소비자협회는 ‘오큐파이 여의도 운동’으로 화답했다. 점거 운동의 계기가 된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키코 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했다. 그 후로도 영국의 리보금리 조작 사건과 한국의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짬짜미(담합) 의혹 등 금융자본의 도덕적 해이 현상은 국경을 넘어 나타나고 있다. 현직 기업인으로서 금융소비자 운동을 병행하고 있는 조 대표를 만나 금융 민주화의 전략과 가능성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지난 7일 조 대표를 만나러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그는 전화기를 붙들고 해외 거래처와 결제 조건 협상에 열중하고 있었다.

인터뷰/이재성 사건데스크 겸 온라인데스크 san@hani.co.kr

-회사는 어떤가?

“법정관리 상태다. 처음엔 워크아웃(은행이 주도하는 기업개선 프로그램)에 들어갔는데 정말 뼈까지 다 발라내려고 하더라. 돈 벌어서 이자도 못 내니까 안되겠다 싶었다. 자산도 다 매각하라고 강요하고. 법정관리는 안 그렇다. 법정관리는 채권자들도 같이 손해보는 구조다.”

건설 중장비를 제조해 수출하는 그의 회사는 5년 전까지만 해도 부채비율 50%의 건실한 중소기업이었다. 키코 손실 이후 갚아야 할 부채가 20억원에서 560억원으로 폭증했고, 이자율은 5%에서 19%로 뛰었다. 조 대표와 같은 처지의 수출기업들은 은행들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으나 잇따라 패소했다. 조 대표는 “내가 비즈니스맨인지 투사인지 헷갈릴 정도로 열심히 싸웠으나 돈으로 법을 산 은행들에 지고 말았다”고 했다. 피해 기업들은 은행들이 환율 상승에 따른 위험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불완전판매였다고 주장했지만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2년 8월 현재 키코 피해로 말미암아 폐업처분되거나 법정관리·워크아웃 중인 회사는 50여곳에 이른다. 대부분 매출이 수천억원에 이르는 중견기업들이고, 매출 1조원이 넘는 기업도 여럿이다.

-키코 소송은 어떻게 돼가나?

“대법원에 13건이 올라가 있고, 고등법원에 계류중인 소송이 100여건이다. 지방법원에도 수십건이 있다. 아직 대법원 판결은 나지 않았는데, 2심 판결만으로 보면 우리가 졌다. 은행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경우는 10%도 안 된다. 전세계에서 유독 우리나라만 가입자가 졌다. 파생상품에 가입했던 일본의 한 대학은 승소해서 손실분을 100% 보상받았다. 인도 기업들의 경우 키코와 똑같은 상품인데 손실의 90%를 보상받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우리나라 키코 상품에 대해 문의했더니 당연히 검찰이 기소해야 할 사안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왜 패소했다고 생각하나?

“금융 마피아, 모피아(기획재정부 및 금융위원회 전·현직 관료)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소비자 보호의 책임을 방기했다. 은행들은 김앤장 같은 로펌들을 내세웠다. 판사들도 (키코에 대해) 잘 모르니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인 거다. 경제 전문가가 아닌데 이 복잡한 문제를 어떻게 알겠나.”

키코는 녹인녹아웃(Knock-In Knock-Out)의 약자로 기업과 은행이 환율 상하단을 정해놓고 그 범위 안에서 지정 환율로 거래하는 외환파생상품을 말한다. 지난 2007년, 은행들은 앞으로 환율이 계속 내려갈 거라며 수출기업들한테 키코상품에 가입해서 손실을 줄이라고 부추겼다. 그런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환율이 크게 오르면서 기업들은 되레 더 큰 손실을 입었다. 특히 환율이 내려갈 때 기업들이 보는 이익은 한계(배리어)가 있는 반면, 환율이 올라갈 때의 손실은 무한대인데, 은행이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게 피해 기업들의 주장이었다. 또 이들은 당시 은행들이 외화예금 실적이 우수한 우량수출기업 리스트를 작성해 공세적으로 키코 판매 영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수출 역군’이던 중소기업 대표이자
키코 피해 공동대책위 부위원장
지난해부터 본격 금융소비자운동

-키코 사태에서 무얼 배웠나?

“키코는 금융탐욕의 집적판이다. 기업과 유동성 공급기관은 공존·상생해야 한다. 그런데 유동성 공급기관이 수익을 무리하게 내려고 하면 기업을 잡아먹게 돼 있다. 게다가 장내 파생상품도 아니고 장외 파생상품을 만들어서 기업을 위험에 빠뜨렸다. 기업체가 쓰러지면 부실이 그대로 금융기관으로 가고, 금융기관이 부실화하면 결국 국민 세금으로 메워줘야 한다. 이익을 보는 건 금융회사뿐이다. 키코 기업들은 ‘우리가 키코 당하기를 잘했다’고 얘기한다. 덕분에 대한민국의 현실을 알게 됐다고.”

-어떻게 금융소비자 운동을 시작할 생각을 하게 됐나?

“정부가 조정자 책임을 방기한 상황에서 금융소비자 스스로 자위조직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근 10년간 시간순으로 보면, 2003년 카드 대란, 2007년 펀드 불완전 판매, 2008년 키코 사태, 2010년 저축은행 사태 등 주기적으로 금융자본에 의한 약탈 사고가 터지고 있다. 국민 모두가 피해자다. 최근 불거진 금융권의 시디금리 담합 의혹만 해도 그렇다. 개인, 기업, 정부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피해자다. ‘금융의 약탈자본화’가 이렇게 심각한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더라. (착한 재무 주치의를 표방하는 사회적 기업) 에듀머니의 소개로 금융소비자권리찾기연석회의에 갔는데 거기서 많이 배웠다. ‘이런 일들은 청와대 비서관들이 해야 하는 건데’ 싶은 일들을 그분들이 하더라. 청와대는 뇌물이나 받고 있는데. 감동받았다. 이거 우리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업이 은행과 싸우는 건 돈키호테 같은 무모한 짓 아닌가?

“기업을 하려면 시끄러운 데 안 가는 게 맞다. 타깃이 되면 세무조사 들어오고, 주변에서도 다 안 좋게 본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어야 하나. 내가 제3자도 아닌 피해 당사자인데. 피해 당사자가 가만히 있으면 누가 해결해주나. 불의에 대한 분노 같은 게 있다. 정의감 없이 기업이 돈만 좇는다면, 남을 쥐어짜내기만 한다면 이건 아니지 않나.”

“키코 은행책임 인정 10%도 안돼
전세계서 유독 한국만 가입자 패소
금융 마피아·모피아 때문 아니겠나”

-시대적 화두와도 연관성이 있다. 요즘 화두는 공정, 정의다.

“나는 정의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외국 사람들 만나보면 굉장히 정의감이 강하다. 그 사람들 만나면서 나도 그렇게 잘못 산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정의롭게 살면) 리스크가 있다.”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던 1980년대는 역설적으로 그를 정의감이 강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무역회사 외환담당과 중장비제조업체 영업담당을 거쳐 서른세살의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한 그는 처음에 무역업으로 성공했다. 벌어들인 돈으로 아파트와 땅을 샀다. 그런데 “그렇게 가다가는 임대업자로 전락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정의롭지 않았다. 시화공단에 공장을 만들었고, 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했다. 경쟁사에 견줘 6년 정도 제조기술이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달의 무역인상과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그리고 충북 음성에 더 큰 공장을 지으려던 순간, 키코 사태를 맞았다.

-키코 공대위 부위원장으로서 이미 타깃이 된 거 아닌가?

“내부적으로도 홍역을 치렀다. 부실이 생겼으면 오너가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바이어 만나러 다니고, 돈 빌려 오려고 그래야 직원들이 안정된다. 근데 오너가 메가폰 들고 거리로 나다니고, 언론 만나고 그러니까 원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금융당국을 하도 비판하니까, 금융위원회의 한 과장은 전화로 “반드시 응분의 조처를 취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라. 그래서 내가 금융위 건물 밑에 가서 전화했다. 내려오라고, 어떤 조처를 취할 거냐고 따졌다. 나는 주눅 들지 않았다. 나라고 계산 안 한 거 아니다. 영업망이 해외에 있으니까 내가 큰소리칠 수 있는 거다. 해외 영업망이 없었다면 나는 진작 날아갔을 것이다. 지금 국내 대리점은 전부 문 닫았다.”

“정부가 조정자 책임 방기했기에
금융소비자 스스로 조직 만든것
청와대는 뇌물이나 받고 있고…”

-금융소비자협회는 시민단체인가?

“시민단체 맞다. 다만 기업이 돈을 내서 만들었다는 점이 일반 시민단체와 다르다. 회원은 2천명가량 된다. 회원이 주로 금융 피해자들인데 이분들한테 돈 걷는 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회비는 받지 않고 있다. 키코 피해 기업만이 아니라 에듀머니,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금융정책연구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투기자본감시센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와는 서민금융보호네트워크를 함께하고 있다.”

-그동안 어떤 활동을 했나?

“은행과 카드의 수수료 문제를 이슈화해 정부의 인하 방침을 이끌어냈다. 제일저축은행 명의도용 문제를 제기해서 피해보상을 받아냈고, 저축은행 전반에 대한 검찰 수사를 이끌어냈다.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별로 신경쓰지 않던 분야를 주류 운동으로 바꿔놓은 게 성과다. 우리는 금융위원회와 동급으로 대통령 직속의 금융소비자위원회 독립 설치를 요구하고 있다. 금융감독과 소비자보호 기능을 분리하자는 얘기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피해를 보지 않았던 오스트레일리아가 이런 쌍동형 관리체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이와 관련한 금융개혁 관련 법안을 야당과 함께 준비중이다. 오는 22일 국회에서 공청회가 열린다.”

금융회사들의 시디금리 짬짜미 의혹으로 터져나왔던 사람들의 분노는 폭염의 시작과 함께 어느새 녹아버린 느낌이다. 고졸이라는 이유로 금리를 올려받다가 탄로난 시중은행에 대한 팔매질 역시, ‘다이내믹 코리아’의 숱한 이슈들에 묻혀버렸다. 이 나라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사안임에도 사회적 관심이 지속되지 못하는 이유는 금융이라는 영역의 난해함 탓일지도 모른다. 복잡한 숫자와 수학 공식까지 동원되는 금융파생상품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금융소비자협회 같은 단체의 구실이 더 중요해지는 까닭이다.

-최근에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시디금리 담합 의혹 조사를 시작하는 등 금융 관련 이슈가 계속되고 있다.

“시디금리 담합 사건은 ‘탐욕 금융’의 수탈 대상이 금융회사를 제외한 모든 개인 및 단체, 기업, 학교, 정부 등을 총망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키코 피해 업체들은 당해봐서 안다. 통제되지 않는 탐욕스러운 금융자본이 저지르는 금융범죄가 관행처럼 굳어져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깨진 지 오래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조사도 해보지 않고 담합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공정거래위원회 뒤에 숨어 있지 말고 전면에 나서서 조사를 해야 한다. 원래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을 공정위가 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몇몇 금융범죄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우리나라 금융당국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망각하고 사는 집단이다. 철저한 쇄신과 반성을 촉구한다.”

“CD금리 담합 의혹 전면 조사를
금융의 탐욕 제재할 시스템 절실
금융소비자위원회 독립설치해야”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아직은 공정위 조사를 기다려야 할 때라고 본다. 의혹 단계이기 때문에 피해 규모를 산정하기 어렵다. 시디금리 담합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행정명령을 통해서 피해보상이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안 된다면 우리는 국민 원고인단을 꾸려 투쟁의 전면에 나설 것이다. 공정위가 의혹을 덮는다면 국회로 간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금융을 통제하고, 제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금융소비자위원회를 설치하고, 금융소비자들이 은행 경영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금융독재를 타도하겠다고 호언한 적이 있다. 순화해서 말하면 금융민주화 정도가 될 텐데, 정말 가능할까?

“충분히 가능하다. 국민이 없는 국가가 존재하지 않듯이, 소비자들이 탐욕스러운 자본에 등을 돌리면 자본주의도 불가능하다. 자본주의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탐욕과 탈법은 제재해야 한다.”

-앞으로 계획은?

“키코 공대위를 설득해서 금융소비자협회 지원을 더 강화하려고 한다. 공대위에는 주거래은행을 바꿀 정도로 파워 있는 회사가 많다. 살아 있는 기업들이 더 가열차게 싸워야 다른 죽어 있는 기업들도 살아날 수 있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탐욕금융’의 주머니에서 보상금이 나와야 한다.”

조 대표의 개인적인 목표는 코막중공업을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지속가능한 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술개발 인력을 위기 이전 수준으로 복원하는 게 당장의 과제다. 그가 다시 당당한 수출역군으로 우뚝 서는 날, 키코 투쟁 과정에서 항의의 뜻으로 정부에 반납했던 수출의 탑도 그의 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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