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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안철수 <생각> 읽어보니 충분히 공부…김종인 위원장 결국 토사구팽될 것”

등록 2012-09-09 19:31수정 2012-09-10 15:58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지난 5일 서울 성북구 학교 연구실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가 지난 5일 서울 성북구 학교 연구실에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경제 민주화 전도사’ 김상조 교수
“장하준은 재벌개혁 ‘당근’ 제시…난 법치주의 ‘채찍’ 강조”

‘경제 민주화 전도사’ 김상조 교수

“한국 사회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는 선을 이미 넘어섰다. 경제민주화 약속이 모두 실현되지는 않겠지만 없던 일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김상조(50) 한성대 교수는 지난 5일 서울 삼선동 한성대 연구실에서 <한겨레>와 한 귀국 첫 인터뷰에서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가 일보 전진한 것”이라고 긍정 평가하면서도 “ (경제민주화가) 어디까지 어느 속도로 갈 것인지는 아직 불확실하다”고 신중함을 보였다. 경제민주화운동을 펴온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의 소장을 맡고 있는 김 교수는 ‘재벌개혁 전도사’, ‘재벌 저격수’로 불려왔다. 김 교수는 지난 1년간 미국에서 안식년 연수를 하고, 8월10일 귀국했다. 김 교수는 “지금은 경제민주화가 시대정신이지만, 1년 전만 해도, 그런 얘기를 하면 반대진영에서 과격분자, 좌빨이라고 손가락질을 했다”면서 시차적응이 쉽지 않음을 토로했다. 김 교수는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의 전부가 아니라 출발점”이라며 “재벌개혁의 목표는 우리 사회의 가장 강력한 기득권 세력인 재벌이 우리 사회의 전체 이익에 역행하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고, 재벌이 사회 전체의 협력의 틀로 들어오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재벌한테 당근을 강조하는 장하준 교수와 채찍을 강조하는 나는 일종의 분업과 협업의 관계”라며 “앞으로 10년간은 내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지난 4·11 총선 때 야권의 비례대표 의원 영입 제안을 거절한 일화를 털어놓으며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인터뷰/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미국에서 어떻게 지냈나?

“가기 전에 두가지 과제를 정했다. 하나는 그동안 미뤄온 한국 경제에 대한 일반 대중용 책인 ‘종횡무진 한국경제’를 쓰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재벌에 관한 종합적 규율체계를 담는) ‘기업집단법’ 연구보고서를 완성하는 것이다. 두가지 모두 끝냈다.”

-귀국하자마자 방송 출연과 토론회 참석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내는 것 같은데, 시차극복은 됐나?

“한국의 일년은 긴 세월이다. 미국에 있으면서 인터넷을 통해서 소식을 접했는데, 한국 사회가 많이 변한 것 같다. 문화적인 시차적응을 해야 한다.”

-경제민주화가 대선의 핵심 이슈가 됐다. 오랫동안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을 주창해온 사람으로서 감회는?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가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으로 부각됐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갈지 우려되기도 하지만, 한국 사회가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선을 이미 넘어섰다.”

-귀국 직후 김승연 한화 회장의 재판이 있었다. 재벌총수가 실형선고를 받고 구속되는 것을 본 느낌은?

“옛날이면 당연히 집행유예로 풀려나왔을 텐데, 사법부도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 대법원의 새로운 양형기준에 따르면 김 회장의 범죄 내용이나 태도, 과거 전과를 감안하면 당연히 징역 11년을 선고했어야 하는데, 최소한인 4년을 때렸다. 세상이 바뀐 것과 여전히 바뀌지 않은 것을 모두 보여준 사건이다.”

-요즘 민주당보다 새누리당이 오히려 경제민주화 논의를 주도하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데.

“2007년 박근혜 후보가 말한 ‘줄푸세’(세금 줄이고, 규제 풀고, 법치를 세운다) 공약과 지금 경제민주화 공약은 180도 다르다. 문제는 얘기하는 사람이 똑같다는 것이다.”

장교수, 재벌 경영권 인정해주면
투자확대·증세 수용할거라 주장
나는 궁극적 대타협 지향하지만
공정경쟁 위한 경제력집중 해소 목표

-새누리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더라도 언제든 태도를 바꿀 수 있다는 얘기인가?

“대선 뒤에 어떤 방향으로 갈지 오리무중이다. 박 후보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화두로 꺼냈으니까 완전히 없던 일로 하지는 않을 테지만, 경제민주화에 관해 명확히 얘기한 적이 없다. 당내에서도 이견이 나오고 있다. 한쪽이 강한 소리를 내지만, 다른 쪽이 끊임없이 반대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민주당 안에 재벌 장학생들이 50~60명은 될 거라고 지적하던데.

“실제 경제민주화 법안의 심의과정에 들어가면 야당 의원들이 모두 한목소리를 낼지 장담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도 재벌개혁을 공약했지만 경제가 어렵다는 핑계로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았나?

“내년 상반기 경제가 굉장히 어려울 것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고 가기는 쉽지 않다. 경제민주화의 내용이나 속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다며 브레이크를 거는 목소리가 커질 것이다. 새 대통령이 관료들의 정보 왜곡과 재벌의 사보타주를 극복할 준비와 의지를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최근 사회의 규칙을 준수하면 보상을 하고, 어기면 엄히 제재하는 것을 경제민주화의 ‘방법론적 최소원칙’으로 제시했는데.

“시장거래의 문제에 관해서 신상필벌의 원칙을 실행하자는 것이다. 이 원칙만 제대로 굴러가면 경제민주화 문제의 상당 부분이 해결된다.”

재벌은 지배층이자 개혁 걸림돌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 출발점
1주1표 소액주주운동의 목표는
주주이익 아니라 경제 민주화

-최소원칙을 달리 표현하면 법치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장하준 교수는 법치주의는 부르주아적 과제라고 말한다. 한국 사회의 개혁을 위해서는 법치주의(경제학적으로는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와, 경제주체 간에 실질적으로 공정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힘의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구조개혁(경제력 집중 해소)이라는 두 과제가 모두 중요한데.

“우리 사회의 개혁과제는 중층적이고 모순적이다. 서구 사회에서는 18세기에 해결했던 게 있고 19세기, 20세기에 해결했던 문제가 있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한꺼번에 주어지고 있다. 법치주의는 서구의 관점에서는 보수주의 과제이지만 한국에서는 대중의 요구에 의해 이뤄내야 하기 때문에 진보의 과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시장이 아무리 공정해도 해결할 수 없는 게 있다. 일례로 하도급 거래의 본질은 애초에 협상력의 격차가 있는 자들끼리의 계약이다. 힘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공동으로 협상력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재벌개혁의 원칙으로 ‘현실로 존재하는 것은 인정하되, 권한과 책임의 일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하준식의 재벌 타협론과 무엇이 다른지?

“개혁을 하려면 당근과 채찍 두가지가 다 필요한데, 장 교수는 당근을 강조한다. 외국 자본의 경영권 위협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경영권 인정이라는 당근을 주면 재벌 총수들이 대타협 제안에 들어올 것이고, 투자 확대와 증세 부담도 기꺼이 받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채찍의 엄중함을 너무 과소평가하고, 당근도 너무 크다. 적어도 중단기적으로는 채찍에 강조점을 둬야 한다. 한 사람이 양손에 당근과 채찍을 모두 들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당근을 앞세우고 어떤 이는 채찍을 앞세우는 분업과 협업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나와 장 교수는 보완관계라고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재벌과의 대타협을 지향하는 것인가?

“대타협이 목표다. 그 목표에 도달하려면 여러 조건이 필요한데, 그것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타협에 안 들어오면 재벌이 부담해야 할 비용이 이렇게 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앞으로 10년간은 그 역할을 할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재벌개혁은 경제민주화가 아니라고 얘기한다.

“소액주주운동은 주주이익을 위한 게 아니라 경제민주화의 수단이라고 누누이 얘기했다. 또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모든 것이라고 말한 적도 없다. 재벌개혁은 출발점일 뿐이다. 이것을 이해했다면 지금처럼 재벌개혁을 비판하지는 않을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경제민주화는 ‘1주1표’가 아니라 ‘1인1표’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시장 논리에 의해서 1주1표의 원리로 움직이는 게 효과적인 영역이 있고, 그 원리가 침범해서는 안 될 도덕의 영역, 공동체의 영역이 있다. 자본주의체제 전체를 1인1표의 원리로 규율하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박근혜 2007년 ‘줄푸세’ 공약과
2012년 ‘경제민주화’ 180도 달라
‘안철수의 생각’ 보니 공부 꽤 했다 생각
문재인쪽 ‘과거의 실패’ 극복 필요

-재벌 개혁이 없는 경제민주화가 가능하겠느냐?

“불가능하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의 출발점이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세력이 거기 있고 개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재벌을 개혁해서 주주자본주의로 만드는 것. 또는 재벌을 해체해서 외국 자본으로 넘기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새누리당에서 장하준 박사 영입설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갈 리 없지만 못 갈 이유도 없다. (장 박사는 지난 4월 <한겨레21>과의 인터뷰 때 ‘특정 대선 후보를 직접 돕거나 정치에 참여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에서 김 교수에게 영입 제안이 온다면?

“시민단체 일을 하는 입장에서 내 의견을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다 얘기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뜻을 함께할 수는 없다.”

-새누리당 쪽에서는 김 교수가 조금 오른쪽으로 온 것 같다는 얘기를 하던데.

“최근이 아니고 몇년 된 얘기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 억제 방안으로서 출자총액제한제가 최선이 아니라는 주장을 하거나, 2009년부터 일반지주회사의 금융자회사 지배를 허용하되 중간금융지주회사 설립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내놨을 때 그런 얘기가 나왔다. 특히 론스타 문제의 본질이 외국 먹튀자본이 아니라 금융감독당국의 책임 문제라고 말할 때 가장 많았다. 나는 연구실에 앉아 있는 학자도 아니지만 길거리의 혁명가도 아니다. 시민운동의 틀 속에 있는 사람이다.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을 기반해서 합리적 개선방안을 찾고자 한다.”

-김 교수가 1년 전 연수를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했다.

“정치의 계절에는 경제 개혁운동에 전념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가 핵심 이슈가 됐다. 하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정치의 폭풍 속에 휩쓸려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시점에서 발언했으면 조금 더 합리적인 방향으로 갔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지금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 경제민주화 갈피 못잡는 건
자영업·비정규직 해법 제시 못한탓
경제민주화가 대선국면 ‘쇼’ 아니라면
여야, 국회에서 개혁법 통과시켜야

-정치권에서 실제 영입제안이 있었다던데.

“(주저하면서) 두 야당에서 비례대표 의원 제안이 있었다. 하지만 사양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 것 같다.”

-무슨 이유를 댔나?

“나는 이미 광의의 정치를 하고 있다. 나에게 어울리는,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치를 하고 싶다고 했다. 국회 내에서는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안철수의 생각’은 읽어봤나?

“읽어봤다. 정치인의 잣대로 평가하면 그 정도 정리했으면 충분히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데, 그렇다면 대선 이후로 미룰 게 아니라 이번 정기국회에서 경제민주화 입법을 최대한 합의처리해야 진정성이 있는 것 아닌가?

“경제민주화가 대선 국면의 쇼가 아니고 진정성이 있다면 정기국회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한다. 실제로 중요한 의미를 담은 법률부터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출총제 부활, 순환출자 규제, 일감 몰아주기 규제, 금산분리 강화, 징벌적 손해배상제·집단소송제 도입 등 많은 입법안이 제출됐는데.

“출총제나 순환출자가 우선과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시장법을 개정해서 상장회사 이사들의 보수를 개별로 공개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과 경제범죄 처벌 강화도 시급하다.”

-새누리당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이번에 누가 집권하더라도 사회적 양극화 때문에 경제민주화 약속을 저버리지 못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문재인 후보 쪽에서는 과거 노무현 정부 때의 개혁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노 대통령은 재벌과 관료들의 함정에 빠져서 개혁에 실패했다. 하지만 문 후보가 설사 그런 교훈을 얻었더라도 참모들도 그것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박근혜 후보 쪽은 재벌에 빚진 게 없어 자유롭다고 한다. 하지만 빚이 없는 사람은 은행에서 더 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다. 더구나 박 후보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분들이 단기적인 경제 어려움을 빌미로 재벌과 타협이나 개혁정책의 후퇴를 종용할 가능성이 많다. 결국 경제민주화나 복지국가 같은 시대정신은 리더와 그를 둘러싼 참모조직, 즉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세력에 의해 담보될 때만 현실화되는데, 박 후보를 둘러싼 세력은 시대정신을 체화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김 위원장은 결국 토사구팽 당할 가능성이 크다.”

-친재벌정책으로 양극화를 심화시킨 MB정부는 역설적으로 경제민주화나 재벌개혁을 시대정신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중소기업, 중소자영업자들은 현 체제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4년반 전 대선에서 이명박 정부에 표를 던져, 제 발등을 찍었다는 지적을 듣는다.

“지금 경제민주화가 갈피를 잘 못 잡는 이유는 재벌이나 금융개혁보다 더 중요한 하도급, 자영업자,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국민들이 경제민주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나의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개혁에 동력을 불어넣으려면 국민의 삶과 관계있는 문제에 대해서 정치인, 학자, 시민단체가 신뢰할 만한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마음에 두고 있는 대선후보는 있나?

“민주당 경선이나 안철수 원장과의 야권 후보 단일화에서 누가 이기느냐는 관심 밖이다. 하지만 단일화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를 이겼으면 좋겠다.”

정리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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