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노동자대투쟁때 “남미화” 공격
96년 ‘산업 공동화론’으로 국민 압박
노동운동 틀어막고 재벌개혁 발목
96년 ‘산업 공동화론’으로 국민 압박
노동운동 틀어막고 재벌개혁 발목
경제 위기론의 실체
재계와 보수언론이 외치는 ‘경제위기론’은 제목만 바꾼 오래된 유행가다. 경제민주화·재벌개혁 바람이 거센 요즘뿐 아니라 1980년대 말 이후 주기적으로 유포돼왔다.
1987년 민주화 열기가 온 나라를 휩쓸 때 수많은 노동조합이 결성됐다. 그러자 재계에선 우리 사회가 ‘남미와 일본’의 갈림길에 서 있다고 보수·경제언론을 내세워 호소했다. 노조를 만들고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이 우리나라를 ‘남미’처럼 만들 주범이라는 주장이었다. 때마침 1989년 들어 수출부진이 심화되자 1990년께 본격적으로 ‘한국 경제 총체적 난국’론이 확산됐다. “한국 경제의 중대한 전환점에서 노사분규 때문에 중공업 등 중심산업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식이었다.
‘고비용 저효율론’이 나오던 1996년은 김영삼 정부 후반부였다. 고임금과 고금리 등이 고비용을 낳고 이는 경제 저효율로 이어지므로 기업 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면 고비용의 가장 큰 요인인 임금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여기에 소액주주 권한 강화와 감사제도 강화를 뼈대로 한 김영삼 정부의 신재벌정책을 좌절시켜야 할 목표도 위기론의 배후에 있었다. 이 당시 위기론은 결국 1996년 말 ‘노동법 날치기 파동’으로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 고비용 저효율론을 지원해주는 역할은 ‘산업공동화론’이 맡았다. 고비용 때문에 국내에서 기업활동을 하기 어려우므로 생산기지를 국외로 옮길 수밖에 없고 국내산업은 텅 비어버릴 것이라는 일종의 ‘협박’이었다. 1997년엔 ‘넛크래커론’이 등장한다. 당시 미국의 컨설팅업체 ‘부즈 앨런 앤드 해밀턴’이 ‘한국보고서’에서 “한국은 비용의 중국과 효율의 일본의 협공을 받아 마치 호두까기 기계인 ‘넛크래커’ 속에 끼인 호두처럼 됐다”고 주장했다. 넛크래커론은 지금까지도 다양하게 변주돼 활용되고 있다.
외환위기 직전 잇달아 나온 이 위기론 3종 세트는 정권교체기에 개혁 가능성을 막기 위해 유포된 측면이 크다. 그러다 외환위기를 겪은 뒤인 1999년 재계는 다시 ‘경기부양론’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외환위기 이후 경기를 살리지 않으면 성장률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이런 요구는 결국 카드소비 진작과 부동산경기 부양으로 이어졌고 이후 카드사태, 부동산거품이라는 후유증을 낳았다.
2004년에도 ‘경제위기론’이 대대적으로 유포됐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정책이 공정거래법 개정 등을 필두로 시작되던 참이었다. 재계는 정부·여당의 섣부른 개혁정책이 경제의 발목을 잡고 기업의 의욕을 꺾는다고 주장하면서 위기극복을 위해서는 재벌개혁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여기에 한술 더 떠, 규제완화, 노동시장 유연화도 위기 타개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2007년 초에는 ‘샌드위치론’이 회자됐다. 이건희 삼성 회장이 한국 경제가 일본과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있어 어렵다고 말했던 것이다. 정확히 10년 전의 ‘넛크래커론’이 이름만 바꾸고 재벌 회장의 입을 거쳐 변신한 셈이었다. 당시는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을 통한 편법 증여 관련 법정 변론이 재개되는 시점이었고, 노무현 정부 마지막해였다.
촛불시위가 떠들썩하던 2008년 잠시 등장했던 ‘촛불경제위기론’ 이후로 오랜만에 지난달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에서 ‘경제사막화론’을 제기하고 나섰다. 기업 투자 활성화 없이는 한국 경제가 사막화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과거 위기론의 재방송이다. 이명박 정부 내내 위기론이 없다가 정권교체기에 위기론이 등장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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