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현대엘리베이터가 26일 유상증자 관련 판결 기사(<한겨레> 26일치 20면 “쉰들러의 몽니” vs “경영문제 입증” 기사)에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밝혀왔다. ‘법원이 회사 경영상에 아무런 문제점이 없다고 판결했는데, 기사는 이를 왜곡했다’는 게 이유였다. 기사는 이 회사의 파생상품계약이 ‘현정은 회장의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재판부가 인정했다’고 썼다.
판결문을 다시 살펴봤다. 현대엘리베이터의 2대주주인 스위스 승강기업체 쉰들러는 “2013년 4월에 있었던 유상증자는 지배주주인 현정은 회장의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것으로 부당하다”며 소송을 냈다. 유상증자가 회사를 위한 게 아니라 현 회장의 그룹 경영권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무효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원고(쉰들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를 단정하기 어렵다. 또 그런 사정만으로 신주발행(유상증자)을 무효로 볼 수는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현대 쪽은 이를 근거로 기사가 왜곡됐다고 주장하는 듯했다. 과연 그럴까.
판결문에는 현대엘리베이터가 파생상품계약을 맺은 이유와 그에 따른 손실이 명확하게 나와 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06년 11월 넥스젠캐피탈 등과 현대상선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계약을 맺었다. 넥스젠캐피탈 등이 현대상선 주식을 보유하는 대가로 주식 매입대금을 일부 지원하고, 만기에 현대상선 주가가 떨어지면 그 손실을 보전해주는 내용이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재판부가 이 계약의 목적을 기술한 부분이다. “이러한 파생상품계약 체결을 통해 현대상선을 자회사로 유지하기 위한 의결권을 확보하여 현대상선과 현대그룹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고, 이는 결국 현대그룹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각주를 통해 ‘파생상품계약의 위법성 등은 쉰들러가 낸 손배소송(주주대표소송)에서 다퉈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파생상품계약이 곧 시작될 주주대표소송에서 쟁점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정은 회장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파생상품계약은 현 회장의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지주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회사 차원에선 현대상선을 자회사로 유지하는 것은 물론, 현대그룹 전체에 대한 경영권을 확보할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회사는 지난해 72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음에도 파생상품계약에 따른 손실로 부채비율이 상승했고 신용등급이 하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주가하락에 따른 주주들의 피해까지 고려하면 현 회장은 더욱 할 말이 없어 보인다. 한때 19만원대까지 올라갔던 현대엘리베이터 주가는 현재 3만원대로 떨어졌다. 지분이 1.2%에 불과한 현 회장에겐 대수롭지 않을지 모르지만, 월급을 쪼개어 유상증자에 참여한 우리사주조합(8.5%) 가입 직원들과 소액주주들(18.19%)은 속이 타들어간다. 경영진은 2011년부터 세 차례에 걸친 유상증자를 통해 주주들한테서 5000억원을 거둬들였다. 그럼에도 “회사채 상환자금 등 운영자금이 더 필요하다”며 추가로 1800억원대의 유상증자를 진행하고 있다. 오너(대주주)의 지배권 유지에 ‘올인’하는 동안 그 피해는 주주와 직원들이 고스란히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현대엘리베이터 경영진은 외부의 쓴소리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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