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완화 추진 권익위·해수부
경제효과 산출근거 ‘서로 떠밀기’
연구보고서 당시 정부에 제출 전
해운조합 보고 사실 드러나기도
경제효과 산출근거 ‘서로 떠밀기’
연구보고서 당시 정부에 제출 전
해운조합 보고 사실 드러나기도
“경제적 효과를 200억원으로 산출한 근거가 뭡니까?”(<한겨레> 기자)
“저희도 숫자만 압니다. 국민권익위원회나 법제처에 한번 확인해보세요. 우리가 갖고 있는 자료는 없습니다.”(해양수산부 대변인실)
정부는 지난 2008년 여객선의 선령(배의 나이)을 25년에서 10년 더 연장했다. 규제를 ‘대못’에 빗대며, 규제 완화에서 성장동력을 찾으려 했던 이명박 정부 정책의 산물이었다. 200억원의 경제적 효과는 선령 연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논리였다. 하지만 그 수치가 어떻게 나왔는지 정부의 어느 누구도 지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노후한 세월호를 고쳐 다시 띄울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선령 규제완화 발표는 2008년 8월5일 이뤄졌다. 권익위는 당시 “획일적인 기준을 합리화한다”는 명분 아래, 여객선의 선령 제한제도도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로 인한 기업의 비용 절감 효과가 연간 200억원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권익위는 별도의 설명자료에서 “매년 200억원 이상의 경제적 비용 절감효과”의 산출 주체를 국토해양부라고 명시했다.
그에 앞서 당시 국토해양부는 한국해양수산연수원에 ‘연안 여객선 선령 제한제도 개선방안 연구’를 맡겼다. 연구는 그해 5월29일 착수됐다. 보고서는 선박 소유자가 선령제한 제도로 약 200억원의 기업손실이 초래된다면서, 그 근거로 권익위 보도자료를 인용했다. 용역 수행자가 의뢰자인 정부 자료를 인용해 경제적 효과를 추정한 것이다. 하지만 권익위는 그 수치를 뒷받침할만한 어떤 자료도 남아있지 않다면서, 해양수산부에 알아보라고 했다.
당시 주무 부서였던 국토해양부의 연안해운과는 지금 해양수산부 아래 있다. 해수부는 200억원 경제적 효과의 출처를 묻는 <한겨레>의 질의에, “근거가 어디서 나왔는지 우리도 모른다”면서 다시 국민권익위와 법제처에 확인하라고 떠넘겼다. 법제처는 정부의 입법 활동을 지원·조정할 뿐이어서, 근거 자료가 남아 있을 리 만무하다. 결국 어느 정부 조직도 200억원이란 수치의 출처·근거를 모른다는 얘기다.
2008년 용역 보고서를 검토한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의 전형진 부연구위원은 “연안여객선의 선형이 25년으로 제한되어 있어 내항 여객선사에게 어려운 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어려움이 경영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보고서 평가결과서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국책연구원의 한 연구자는 “그때 시대 분위기는 규제 완화였다. 정부가 연구용역을 맡길 때 이미 규제를 풀겠다는 생각을 갖고 했을 것이고, 해수부의 영향 아래 있는 연수원의 연구자가 이를 거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문제는 나랏돈을 들여서 만든 이 보고서가, 커다란 이해가 걸린 선주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한국해운조합에 먼저 흘러들어갔다는 사실이다. 용역 보고서의 정부 제출일은 2008년 9월4일이었지만, 보고서는 어떤 경로를 거쳐 1주일 전인 8월29일 “관련 업무에 참고하라”는 안내와 함께 해운조합 누리집에 게시됐다. 정부는 연구용역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이듬해 1월13일 선령을 25년에서 30년으로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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