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경제 경제일반

박정희식 개발 30년·신자유주의 20년 병폐 터져

등록 2014-05-14 21:08수정 2014-05-21 17:07

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5·8 만민공동회’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의 무책임함과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논리를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5·8 만민공동회’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의 무책임함과 오로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논리를 비판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사람이 중심이다] 공공성 무너진 나라
무엇이 ‘세월호 참사’를 낳았나
“이것이 국가인가?”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들이 가장 자주 입에 올린 말이다. 이 짧은 언명에는 우리가 목격한 재난이 시스템의 예외적 오작동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의 결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직관적 깨달음이 담겨 있다.

<위험사회>를 쓴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일찍부터 경고했다. “우리의 주된 관심을 ‘예외’로 돌려야 한다.” 이 경고는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사회체계가 고도로 분화되고 복잡해질수록 위험은 ‘예외가 아닌 상례’가 된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현대 위험사회의 일반적 속성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세월호 참사는 2014년 현재 한국 사회의 근본문제를 드러낸 ‘징후적 사건’이라는 데 지식인사회, 시민사회의 의견이 쏠리고 있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세월호 참사는 우발적인 사건이라기보다, 한국 사회의 수십년 역사와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는 “세월호 참사는 제도와 윤리의 이중 침몰을 보여준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라고 진단했다.

세월호를 낳은 우리 사회 현주소를 설명해줄 수 있는 열쇳말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이것이 나라냐” 물을까
이 재난이 시스템 예외적 오작동 아닌
자체결함서 비롯됐다 깨달았기 때문

지난 50여년간 압축성장 거치면서
‘경제성장 제일주의’가 최고목표로
이윤 최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에
민관유착이란 한국적 특수성 중첩
세월호 참사는 수십년 역사의 결과

1997년 외환위기 전후에 시작해 20년 가까이 진행된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 변동에 주목하는 이들은 효율성과 이윤을 최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의 시장원리 지상주의를 문제삼는다.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 교수가 지난달 26일 독일 일간지에 실은 기고문에서 “살인자는 선장이 아닌 신자유주의”라고 단언한 것이 대표적이다. ‘신자유주의 책임론’을 강조하는 논자들은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으로 노후선박 연령이 연장된 것, 선장을 비롯한 선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다는 점, 국가의 해양사고 구조업무가 부분적으로 민영화됐다는 점 등에 주목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는 “복지국가 시대를 수십년간 겪은 뒤 신자유주의 시대로 접어든 서구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개발독재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기본적 사회안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신자유주의가 급격하게 수용되면서 문제가 더 심각해졌다”며 이를 ‘악성 신자유주의’라고 불렀다.

현재 전지구적으로 확산돼 있는 신자유주의에 참사의 모든 원인을 돌리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띠지 않는 정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참사의 유일한 원인이 신자유주의라면)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다른 국가들 모두 세월호 참사 같은 사건을 겪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특히 관료·공무원들이 민간업체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며 각종 규제를 무력화시킨 ‘민관 유착’ 부분은 한국적 특수성이 나타난 대표적인 대목으로 꼽힌다. 신정완 성공회대 교수(사회과학부)는 “기업과 관료의 유착 부분은 순수한 신자유주의적인 특성도 아니고, 순수한 관료주의 모습도 아니다”고 말했다. 신광영 교수는 “관과 기업의 유착 문제는 한국 경제 성장의 독특한 특징, 발전주의적 요소가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박정희식 개발주의 30여년, 신자유주의 20여년이 중첩된 결과가 세월호 참사라는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는 이를 “부정부패와 줄·푸·세가 결합된 한국식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했다.

전혀 다른 두 체제지만, 이 50여년의 기간을 꿰뚫는 일관된 논리가 있다. 그것은 ‘경제성장 제일주의’ ‘압축성장’이 국가와 사회 전체의 최고 목표이자 가치였다는 점이다. 김호기 교수는 “압축적 발전의 초기부터 산업화된 국가를 따라잡기 위해 성장에 모든 것을 걸었고, 이런 성장지상주의가 정치적 민주주의, 사회적 안전을 소홀히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박형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신자유주의 이후 더 심화됐지만, 그 이전부터 고도성장과 기업이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국민들이 거기에 동원되는 문화가 쌓여왔다. 전 사회가 ‘고도성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의 침몰 이후 ‘구조 실패’ 부분에서 두드러진 것은 통치권자와 관료조직의 무능과 무책임이었다. 촌각을 다투는 구조 국면에서 나타난 관료들, 국가기관간의 판단 미루기와 책임 떠넘기기는 그동안 ‘엘리트 집단’으로 여겨졌던 관료집단의 허상을 드러냈다. 대통령 역시 정부조직을 제대로 장악하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해졌다. 박명림 교수는 “대통령이 사고현장에 내려가 지시를 내린 뒤에도 총력 구조작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국가 기강과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신광영 교수는 “국민에게 위협적이고 권위를 내세우던 권위주의 국가가 얼마나 무기력하고 무능한지가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머잖아 통치의 위기가 도래할 수밖에 없다”고 예견했다.

경제적 합리성이 유일 규범인 사회, 국가도 사회도, 나아가 개인들 누구도 서로를 돌보지 않는 각자도생, 자력구난 사회에서 삶은 재난이 되고 예외적 재난(비상사태)은 일상이 된다. 세계 수위를 다투는 자살률과 산재사망률, 노인빈곤율 같은 우리 사회의 지표들이 이를 증언한다. 그러니 시급한 것은 지속되는 비상사태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이다. 박형준 연구위원은 “전체 사회의 목표가 성장과 이윤이 아닌 국민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명림 교수는 “세월호 참사의 겉으로 드러난 현상적 원인에 머물지 말고, 근본문제를 틀어쥐고 사회구조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경제 많이 보는 기사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1.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2.

“그리 애썼던 식당 문 닫는 데 단 몇 분…” 폐업률 19년 만에 최고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3.

90살까지 실손보험 가입 가능해진다…110살까지 보장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4.

오세훈발 ‘토허제 해제’ 기대감…서울 아파트 또 오르나요? [집문집답]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5.

한화 김동선, ‘급식업 2위’ 아워홈 인수한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