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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성장만 좇다 ‘세월호 사태’ 빠진 한국 “독일경제를 보라”

등록 2014-05-29 20:03

슈미트 독일경제위원회 위원장
슈미트 독일경제위원회 위원장
슈미트 독일경제위원회 위원장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
성장·분배 조화이뤄 한국에 적합
사회적 합의로 노사협력도 가능

노조 부정하는 기업있다면 바보짓
통일, 경제부담 컸지만 분명 멋진일
독일 경제모델서 한국사회 길을 찾다

‘세월호 사태’를 한국의 새로운 출발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이번 사태를 통해 고질적 안전불감증, 뿌리깊은 민관유착, 이윤추구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후진적 경영관행 등이 지탄을 받지만, 한국사회의 기존 패러다임(발전모형)은 진작부터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한국은 짧은 기간에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뤘지만, 양극화 등 압축성장의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21세기 들어서는 저출산·고령화라는 난제까지 덧붙고 있다. 2012년 선거를 계기로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시대정신으로 떠올랐지만, 박근혜 정부의 공약 후퇴로 제 성과를 못거두고 있다. 이념·빈부·세대·지역·노사 간 갈등을 넘어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는 새 패러다임의 구축을 모색해야할 때다. 이에 <한겨레>는 ‘사회적 시장경제’에 기반한 독일모델의 활용을 권하는 크리스토프 슈미트 독일경제전문가위원회 위원장과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지난 12~13일 독일 중부지역 에센시에 있는 ‘아르더블유아이(RWI)에센 연구소’에서 만나 견해를 들어봤다.

“독일과 공통점이 많은 한국에게는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이루는 독일모델(사회적 시장경제)이 미국모델(자유시장경제)보다 더 어울리는 것같다.”

독일 경제전문가위원회의 크리스토프 슈미트(52) 위원장은 “독일도 과거 제3제국(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했던 1934~45년) 의 제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사회 진로를 놓고 논쟁이 심했는데 (독일모델의 근간인)‘사회적 시장경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며 이렇게 말했다.

슈미트 위원장은 독일모델을 “국민 전체가 먹을 수 있도록 경제 전체의 파이를 최대한 키우되, 이를 공정하게 분배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타협과 노사공동결정제 같은 노사협력체제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성장과 분배는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가는 것”이라며 “(노동시장 유연화를 포함한 독일의 개혁정책인) ‘아젠더 2010’을 두고 독일이 사회적 시장경제 정책을 포기했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지적했다.

-독일경제전문가위원회는 지난 3월 올해 독일경제의 수정전망치를 발표했다. 경제성장률은 지난해말 전망치보다 0.3%포인트 높은 1.9%로, 실업률은 6.8% 그대로 예상했다. 한국에서는 독일이 경제위기 속에서도 강한 경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위원장도 그렇게 생각하나?

“(웃으면서) 그렇다. 실업률 6.8%는 독일 기준 계산이다. 국제기준으로는 5.1%로 더 낮다. 독일경제가 성공적인 것은 무엇보다도 노동시장의 안정이다. 독일은 경제위기로 2009년에 성장률이 마이너스 5%로 떨어졌으나 빠르게 회복됐다. 취업자는 3900만명에서 4200만명으로 증가했고, 실업자는 500만명에서 300만명 선으로 줄었다.”

-한국이 당면한 문제를 풀어가는데, 독일모델이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독일과 한국은 공통점이 많은 것 같다. 독일은 1950~60년대 엄청난 경제성장을 했지만, 이후 2000년께까지 내리막길을 걸었다. 한국도 선진국을 추격하는 단계에서는 빠른 성장을 했지만, 최근에는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독일모델의 핵심인 ‘사회적 시장경제’체제는 국민 전체가 먹을 수 있도록 경제 전체의 파이를 최대한 키우되, 이를 공정하게 분배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자는 것이다. 이런 사회적 합의를 통해 노사협력체제를 구축했다.”

-독일이 1990년대 경제위기 속에서 단행한 ‘아젠더 2010’의 내용은?

“독일은 1990년 통일 이후 노동시장에서 큰 변화를 겪으면서 경제사회시스템이 흔들렸다. 급기야 2000년께에는 ‘유럽의 병자’로 불렸다. 이를 타파한 것이 2003년 (사민당의 슈뢰더 총리가 추진한) ‘어젠더 2010’이다. 개혁의 핵심은 은퇴시기를 67살로 늦춰 연금재정의 안정화를 꾀하고, 노동시장과 관련한 ‘하르츠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일 예로 이전까지는 실업을 하면 1년간 종전 임금의 64~68%에 해당하는 실업수당을 줬는데, 이를 기초생활보장 수준에 맞춰 10%포인트 정도 낮추었다. 이를 통해 장기 실업자에게 노동시장에 복귀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했다. 개혁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한국의 보수우파들은 이를 두고 독일이 사회적 시장경제를 포기하고, 성장중심의 시장경제 정책을 채택했다고 주장하는데?

“(단호한 표정으로) 터무니없다. ‘어젠더 2010’이 본격 시행된 시점은 2005년부터인데, 1980년과 2010년의 독일 지니계수(사회의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는 별 차이가 없다.”

-독일의 경우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좌우 연정이 빈번하고,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된다. 이같은 타협이 가능한 이유는?

“사회주의 정당이었던 사민당이 1959년 ‘바트 고데스베르크 강령’의 천명을 통해, ‘사회적 시장경제’를 채택하며 시장경제를 받아들였다. (기민당은 이에 앞서 이미 사회적 시장경제를 채택했다.) 결국 독일 정당들이 모두 사회적 시장경제에 합의한 것이다.”

-한국은 사회 각 분야의 이슈들을 놓고 갈등이 심하다. 복지를 얼마나 확대할지, 세금을 올릴 것인지 내릴 것인지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이다. 독일모델의 관점에서 보면 어떤 해법이 있을까?

“복지나 세금문제는 국민들이 사회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것인지에 달렸다. 미국은 불균형이 심한데도, 최근에서야 사회적 문제로 불거졌다. 반대로 독일은 미국보다 분배를 중시하고 사회적 불균형을 용인하지 않는다.”

-한국의 사회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9% 정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0% 초반대에 훨씬 못미친다. 하지만 기업들은 복지 확대에 따른 추가 부담에 반대하고, 오히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요구한다

“독일의 지디피 대비 사회복지 지출 비중은 오이시디 평균보다 높다, 독일 근로자들은 급여의 20% 정도를 사회보장세로 내는데, 이는 각종 사회복지 지출의 재원이 된다. 고용주도 근로자와 비슷한 규모의 사회보장세 부담을 진다. 독일 근로자와 기업이 높은 사회보장세를 부담하는 것은 분배를 위한 것이다. 하지만 기업으로서는 세 부담이 줄어들면 더 많은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다. 결국 둘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게 중요하다.”

-최근 한국에서 300여명의 희생자를 낳은 대형 여객선 침몰사건이 발생하면서,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을 반성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 독일도 패러다임 전환을 이룬 역사적 계기가 있었는지?

“과거 제3제국 패망 이후 가장 큰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뤄졌다. 당시 독일사회가 사회주의로 갈 것인지, 아니면 시장경제로 갈 것인지 논쟁이 심했다. 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가격조정 등 사회주의 색채가 강했다. 하지만 40년대 말과 50년대 초에 ‘사회적 시장경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한국의 노사관계는 대립적이다. 일부 대기업은 사실상 노조를 부인한다. 반면 독일은 노사 간 대화와 타협에 의한 노사상생이 잘 이뤄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도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를 도입하면 노사관계 개선에 효과가 있을까?

“과거에는 위에서 지시를 내리고 밑에서는 이를 따랐지만, 현재는 노사가 함께하는 참여가 중요하다. 노조를 부정하는 한국기업이 있다면 바보 같은 짓이다.”

-최근 한국 노사는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 통상임금 범위 재정립 등의 쟁점을 놓고 갈등이 크다.

“숫자 문제보다 노동시장 질서 확립이 더 중요하다, 노동시장 질서 확립은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유연성 강화를 뜻하는데, 여기에는 두가지가 있다. 먼저 단기적인 경제충격이 왔을 때 기업 내부의 노동 유연성 강화다, 2009년 금융위기 때 시장 수요 감소에도 불구하고 독일 기업은 고용을 줄이지 않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대응했다. 둘째는 장기적 경제충격이 왔을 때 기업 외부, 즉 사회적으로 노동 유연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경우 부동산 버블(거품)이 폭발한 뒤 건설 노동자들을 다른 분야에서 신속하게 흡수하는데 실패하면서 실업률이 치솟았다.”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012년 선거에서 공정한 거래질서 확립, 경제적 약자 보호, 재벌개혁을 담은 경제민주화와 복지 확대를 약속하며 승리했다. 하지만 정부 출범 직후 경제활성화를 내세워 공약을 저버렸다.

“독일 역사로 볼 때 성장과 분배는 상충하거나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고,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가는 것이다. 성장과 분배를 이분법적 본다니, 당황스럽다.”

-올해는 독일이 통일된지 25년째 된다. 통일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분단된 민족을 하나가 된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하지만 통일로 인해 큰 경제적 부담을 안았다. 지난 25년간 2조유로(한화 약3천조원) 가까이 동독지역에 들어갔다. 우리가 조금 더 천천히 통일을 진행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폈다. 한국의 성공적 통일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독일은 통일 후 동서독간 화해와 타협의 길을 추구했다. 과거 동독 비밀경찰인 슈타지를 감옥에 넣거나, 죄인을 찾아내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전문가위원회 위원장이라고 가정하고, 한국경제를 위해 제안을 한다면?

“세계 경제시스템을 살펴보면, 미국과 같은 자유시장경제도 있고, 독일과 같은 사회적 시장경제도 있다. 한국의 통일 노력, 노령화, 지식사회로 나가는 경제구조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하면 성장과 분배의 조화를 이루는 독일모델이 훨씬 더 긍정적일 것 같다.”

글·사진 에센(독일)/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슈미트 위원장은…

크리스토프 슈미트 독일경제전문가위원회 위원장은 통계와 노동시장을 전공한 경제학자다. 5명의 경제학자로 구성된 위원회는 1963년 독일정부와 의회의 경제정책 자문기구로 설립됐다. 위원회는 매년 11월 연례보고서를 낸다. 슈미트 위원장은 “성장, 실업률, 교육 등을 포괄해 독일경제를 진단하고,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한다”고 소개했다. 독일 정부는 이 보고서에 대해 의무적으로 공식입장을 밝혀야 한다. 위원회는 독일 언론으로부터 ‘다섯명의 현인들’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높은 권위를 자랑한다. 슈미트 위원장은 인터뷰 장소를 제공한 아르더블유아이(RWI)에센연구소의 대표를 맡고 있다. 한국 방문 의사를 묻자 “초청만 있으면 언제든 응하겠다”고 흔쾌히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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