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오전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을 방문해 모자를 고르고 있다. 대통령은 지방선거 이후 경제부총리 경질을 포함한 대폭 개각을 예고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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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9일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현장간담회를 하고 내수소비 진작 방안을 내놓았다. 며칠 전에는 창조경제 민관협의회에 참석해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려내자고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무겁게 가라앉은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경제부총리가 땀나게 뛰고 있지만, 경질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그의 말에 얼마나 약발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통령은 이미 지방선거 이후 대폭적인 개각을 예고했다.
경제팀 경질의 논거는 무엇보다 일신론이다. 세월호 참사로 사실상 경제 관련 국정과제가 모두 휩쓸려간 상황에서 새로운 전기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무능론이다. 현 경제팀이 지난 1년간 보여준 성과가 없다는 얘기다. 세종시에 있는 한 경제부처 간부조차 “경제팀이 지난 1년간 되는 일도 없고, 안 되는 일도 없었다”는 자조적 평가를 했다.
열쇠는 과연 경제팀을 바꾸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냐다. 시장 반응은 밝지 않다. 벌써 “바꿔본들 달라질 게 있느냐”는 곤혹스런 얘기가 오간다. 이런 논란의 근원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 자신이다. 1년여 전 현 부총리를 두고 경제수장에게 요구되는 리더십·능력·소신·책임과는 거리가 있는 ‘4무 후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음에도 임명을 강행했다.
더 심각한 것은 대통령의 경제를 바라보는 인식의 한계와 오류로 인한 정책 실패와 일관성 상실이다. 대통령은 자신의 대표공약인 경제민주화를 경제활성화를 내세워 걷어찼다. 국정과제로 내세운 창조경제는 처음부터 알맹이 부재 논란에 시달렸고, 실제 지금껏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다. 새로 꺼내든 규제완화는 헛된 구호로 국민의 눈귀만 어지럽힌 전형적 사례다. 규제에는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가 섞여 있음에도, 마치 규제완화만 하면 경제가 살아나는 것처럼 ‘대국민 쇼’를 했다. 안전규제의 미비와 완화가 세월호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히면서 맹목적 규제완화의 위험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왼손으로는 고용률 70%를 강조하면서, 오른손으로는 공기업 개혁을 내세워 일자리 축소를 부채질한 것은 전형적인 ‘제 얼굴에 침 뱉기’다. 황창규 신임 케이티(KT) 회장이 임직원의 4분의 1에 가까운 8천여명의 일자리를 줄인 것도 청와대의 용인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대통령은 장관 얼굴을 바꿔치우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처방을 찾아야 한다. 단기성과에 집착할 게 아니라 지속발전의 토대가 되는 기본과 원칙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이 더 시급하다.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의 기본과 원칙이 붕괴됐다는 탄식이 많지만, 솔직히 우리에게 과연 기본과 원칙이 존재했는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헌법 119조 1항은 자유시장경제, 2항은 분배 등 경제민주화를 담고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1항만 강조하고, 어떤 사람은 2항만 강조한다. 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 등 노사 쟁점도 마찬가지다. 개혁진보진영은 노동자의 삶의 질 향상, 일자리 안정, 고령화를 내걸고 찬성의 목소리를 높인다. 반면 경영계는 기업 부담 가중을 이유로 반대만 한다.
독일은 위기 속에서도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경제의 안정과 효율을 동시에 달성했다. 대통령은 경제의 파이를 키우는 것과, 그 파이를 공평하게 나누는 분배가 결코 대립적이거나 선후의 문제가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이 이를 믿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제정책과 대통령의 경제인식도 이 원칙에 부합하는지 재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타협과 협력이 가능하다. 문제는 경제팀이 아니라 대통령이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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