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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전태일 스러진 그 시대처럼…자본 편에 선 국가폭력 있었다

등록 2014-08-25 20:13수정 2014-08-26 15:54

지난 2010년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경찰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의류노동자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 어린이를 발길로 차고 있다. 다카/AFP 연합뉴스
지난 2010년 방글라데시의 수도 다카에서 경찰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의류노동자들의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한 어린이를 발길로 차고 있다. 다카/AFP 연합뉴스
[심층 리포트]
총, 특권, 거짓말 : 글로벌 패션의 속살
제3세계 국가 의류산업 성장의 배경
의류산업은 그 시작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줄곧 자본과 국가가 합작한 ‘폭력’에 기대어 성장해왔다.

지금과 같은 대량생산 방식의 의류산업을 가능케 한 것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었다. 18세기 발명가들이 잇따라 면직기를 선보이면서 옷의 재료가 되는 면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됐다. 기술혁신으로 생산능력을 키운 영국 자본은 기존에 비해 엄청난 양의 원재료, 즉 면화를 필요로 했다. 당시 대규모로 면화를 생산해낼 수 있는 땅은 신대륙의 미국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땅이 넓다 해도 저절로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미국 남부의 드넓은 목화농장에서 흑인 노예들이 강제노동에 동원됐다.

다음은 여성들의 차례였다.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로 흘러든 여성들이 주로 봉제공장에서 일했다. 여성들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단체행동을 꾀한 여성들의 시도는 경찰 등 국가권력에 번번이 가로막혔다. ‘세계 여성의 날’의 뿌리인 1908년 3월8일 미국 뉴욕 럿거스 광장 시위의 주축이 여성 봉제공이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1만5000여명의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노조 결성의 자유, 참정권 등을 요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11년 3월 뉴욕 맨해튼의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라는 대형 봉제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비상구는 밖에서 잠겨 있었고, 9층 높이까지는 소방차의 물줄기가 닿지 않았다. 모두 146명의 노동자들이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하거나, 창문으로 뛰어내려 숨졌다. 대부분 10대와 20대 여공들이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로 기록된 이 사건은 서구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와 꼭 닮은 화재가 101년 뒤인 2012년 방글라데시 타즈린패션 공장에서 되풀이됐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18세기 산업혁명으로 대량 생산
저임금·장시간 노동잔혹사 시작
저항땐 국가권력이 나서서 제압

60~70년대엔 한국이 의류생산 기지
노동쟁의땐 깡패나 경찰 즉각 투입

자본은 더 싼 임금 찾아 옮겨가고
공권력은 자국 노동자에 총 겨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친 뒤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도래하면서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거리가 훌쩍 멀어졌다. 서구의 소비자들을 위해 전후 일본이, 뒤이어 한국이 글로벌 의류산업의 생산기지를 맡았다.

1960~70년대 우리나라 봉제공들의 열악한 노동 현실은 1970년 11월13일 재단사 전태일이 시위 도중 스스로 몸에 불을 붙여 목숨을 끊으며 고발한 바 있다. 여성 봉제공들에 대한 폭행이나 성추행은 상습적으로 일어났다. 군부독재 정권은 국가 최대 수출산업에서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막았다. 노동쟁의가 일어난 공장에는 공장주가 고용한 깡패 또는 경찰이 즉각 투입됐다. 기업과 노동부, 정보기관이 협력해 노조 설립을 시도한 노동자들의 정보를 모은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의 재취업을 봉쇄했다. 1970년대 인천의 한국수출산업공단 내 일본계 투자기업인 삼원섬유에서 노조를 만들었다가 해고당한 유해우(65)씨는 당시 노동자들의 처지를 “산업노예”라고 표현했다.

지구 반대편으로 멀찍이 밀려난 생산지에서 일어나는 일에 서구 사회는 무심했다. 전태일의 후예 또는 유산이라고 할 수 있는 청계피복노조는 1981년 1월 서울시장으로부터 노조 해산 명령을 받았다. 청계피복노조는 한국의 노동 탄압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 미국을 기반으로 한 노동단체인 ‘아시아 아메리카 자유노동기구’(AAFLI) 한국사무소를 점거했다. 마침 전두환이 레이건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중이었다. 청계피복노조는 방한중인 이 단체 본부장 모리스 파라디노에게 면담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곧이어 경찰이 들이닥쳤다. 이 사건으로 11명이 구속됐고, 노조는 와해됐다.

1980년대 후반 한국에서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르고 민주주의가 진척되자 글로벌 의류산업의 생산기지는 중국으로 옮겨갔다. 중국의 임금이 오르자 베트남,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으로 옮겨갔다. 이들 나라의 임금도 오르자 방글라데시, 인도, 캄보디아, 미얀마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갭(GAP), 에이치앤엠(H&M), 자라(ZARA), 유니클로(UNIQLO) 등의 브랜드로 대변되는 ‘패스트패션’(fast fashion)이 의류산업의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 중견 패션기업 사장은 “속옷부터 다운재킷까지 다 만들어 낮은 가격에 파는 이들 브랜드들은 정말 위협적이다. 수많은 회사들이 경쟁에 밀려 문을 닫고 있다”고 말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유행에 따라 잠깐 입고 버릴 값싼 옷을 생산하는 패스트패션의 시대에 노동자들의 권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철저하게 무시된다. 자본과 결탁한 제3세계 국가의 공권력은 자국의 의류 노동자들을 향해 서슴없이 총을 쏘고 있다. 지난 1월9일 방글라데시 치타공에서 영원무역 노동자 파빈 악터가 경찰이 발포한 총에 맞아 숨졌다. 그보다 1주일 앞선 1월2일 캄보디아에서도 공수부대와 경찰의 발포로 최소 5명의 의류 노동자들이 숨졌다.

민주노총, 시민단체, 공익법무법인 등으로 구성된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는 캄보디아 유혈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보고서에서 “심지어 유엔 대표부 앞에서까지도 무자비하게 구타하는 등 비무장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공격한 점은 캄보디아 정부가 자국민의 인권 수호 책임을 철저하게 방기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정부가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 보호보다 사용자와 의류산업의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유신재 류이근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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