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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방글라데시 노동권 유린 뒤에는 ‘무노조’ 요구 외국투자자

등록 2014-08-26 19:41수정 2014-08-27 09:00

헌법에 노조설립 보장하고도
각종 행정규제 등으로 제약
의류공장 등 모인 수출가공공단
노조 결성은 물론 파업 용납 안해
손바닥 안에 숨길 수 있을 만큼 작은 쪽지에는 ‘까즈 번더 꺼러(작업을 거부하자)’라고 써 있었다. 회사가 1년에 한번씩 주던 보너스를 주지 않자 불만이 높아진 노동자들이 몰래 파업을 준비한 것이다. 쪽지는 품질검사 파트에서 일하는 리샤파(21·가명)한테까지는 전달되지 못했다. 라인 슈퍼바이저로 불리는 회사 쪽 중간관리자한테 그만 쪽지 돌리기가 들키고 말았다.

회사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리샤파는 “하루는 4명, 또 하루는 5명을 자르는 식으로 여러 날에 걸쳐 우리 층에서만 100명 넘게 해고됐다. 이들의 잘못은 쪽지를 돌린 것 외엔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 외곽에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의류공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기계를 조작하는 ‘오퍼레이터’ 바불도 이때 결근을 이유로 잘렸다. 그는 “이곳엔 노조가 없다”고 말했다. 이 회사에서 수년째 일해온 만하르는 “과거에 노조를 만들려는 시도가 한두번 있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말했다. 회사는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노조 설립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방글라데시 헌법은 노조 설립을 보장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노조를 설립하려면 사업장 전체 노동자의 30% 이상이 가입해야 한다. 단체협상권이나 파업할 권리 자체도 오랫동안 정부의 행정 규제와 법원의 판례 등으로 제약돼왔다.

방글라데시 제2 도시인 치타공 도심에서 빠져나와 시 경계선인 카르나풀리강에 다다르면 왼편에 메트로어패럴이란 오래된 옷공장이 보인다. 이 공장의 옛 이름은 유니티가먼트스웨터였다. 이곳에서 1999년 여성 노동자들은 임금인상과 성과 보너스 지급을 요구하면서 파업을 벌였다. 18명의 노동자가 구속됐다. 이들은 이례적으로 신속 재판에 회부돼 사법처리됐다. 치타공 지역에서 단일 의류공장 사상 첫 파업이었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의 역사는 1980년 이전부터 시작됐지만, 단일 사업장의 파업은 그때까지 20여년이나 통제돼왔던 것이다.

정치파업이라 할 수 있는 ‘하르탈’을 제외하면, 방글라데시에서 제대로 된 파업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정치권과 연계된 ‘무늬만 노조’ 이외에 제대로 된 노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저수준의 낮은 임금과 억압적 노동조건이 좀체 개선되지 않는 바탕에도 이런 게 깔려 있다. 특히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조성한 수출가공공단(EPZ)에서 노조 설립은 오랫동안 불법이었다. 이는 한국 기업 등 해외 투자자들이 투자를 할 때 내건 조건이기도 했다.

1986년 치타공수출가공공단(CEPZ)에서 대대적인 파업이 있었다. 당시 임금인상과 함께 수출가공공단 내 노조 설립이 노동자들의 핵심 요구사항이었다. 시위를 주도했던 시디굴 이슬람은 “이후 파업과 시위가 계속 있었지만, 노조 설립 요구는 아직까지 수용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수출가공공단에서는 2008년까지 파업 자체가 금지됐다.

최근엔 수출가공공단 내 노동자복지위원회(WWA)를 설립할 수 있게 됐고, 이 조직이 사실상 노조라는 게 방글라데시 정부의 입장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방글라데시투자청 고위 관계자도 “치타공수출가공공단 안에 있는 상당수 사업체에 노조라 할 수 있는 노동자복지위원회가 있다”고 말했다. 사용자가 이 노동자복지위원회와 정례적으로 노사협의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한겨레>가 치타공수출가공공단에 있는 다양한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수십명을 만나 물어봤으나, 이들 가운데 공장에 노조가 있다고 답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노조 설립을 시도하거나 파업을 조직하는 노동운동가들이 끔찍한 테러와 보복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년 전 숨진 전 방글라데시노동자연대센터 대표 아미눌 이슬람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아미눌은 다카 인근 아슐리아의 한 의류공장 노동자들이 직장폐쇄에 맞서 투쟁하는 것을 돕던 차였다. 2012년 4월4일 저녁 사무실로 찾아온 한 노동자와 함께 길을 나선 아미눌은 밤늦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그는 사무실로부터 약 100㎞ 떨어진 지역의 학교 앞 거리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곧바로 아미눌의 주검을 부검하고 하루 만에 무연고자로 처리해 매장했다. 아미눌의 가족과 동료들은 수소문 끝에 실종 닷새 만에 그의 주검을 수습할 수 있었다. 그의 다리와 발에는 심한 고문 또는 폭행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주검 발견 당시 검안을 한 의사는 사망 원인이 과다출혈이라고 판단했다.

경찰 조사 결과 실종 당일 아미눌을 찾아온 노동자가 국가정보국의 정보원이 유력하다는 정황이 나타났다. 아미눌은 2010년에도 국가정보국에 끌려가 조사를 받으며 심한 고문을 당한 바 있다. 하지만 마지막날 아미눌을 찾아온 노동자의 행방은 지금까지도 묘연한 상황이고, 경찰 수사는 한발짝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아미눌의 죽음 이후 방글라데시의 노동운동가와 인권활동가들은 언제든지 납치돼 살해당할 수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노조가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의 집단적 요구가 분출될 때 커다란 희생이 뒤따르기 십상이다. 지난 1월 최저임금 시위 도중 숨진 파빈 악터가 일했던 한국수출가공공단(KEPZ) 안 영원무역 계열 신발공장에도 노조가 없었다. 당시 경찰한테 폭행을 당해 시위의 도화선이 된 모하메드 하룬은 “노조가 없다면 이런 불행한 일이 얼마든지 다시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 적용 등 노사간 이해가 첨예하게 충돌할 때, 노조가 없다면 노동자들이 회사 쪽과 협상할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다카 외곽 가지푸르에서 편직공장을 운영하는 윤희 사장은 “우리도 노조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까닭은 노조가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흥분해 자칫 회사에 큰 피해를 줄까봐서다.

다카 치타공/류이근 유신재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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