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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작업 5분 만에 공장 건물이 와르르…동생이 안 보였다

등록 2014-08-26 19:44수정 2014-08-27 15:35

2013년 4월24일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 1129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현장은 이제 완전히 철거됐다. 정부는 붕괴 현장 주변에 담을 둘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매달 24일 붕괴 현장 앞에 모여 보상금 지급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 사고가 발생한 지 16개월이 지났지만 유족들에 대한 보상과 건물주·공장주 등에 대한 처벌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유신재 기자
2013년 4월24일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 1129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현장은 이제 완전히 철거됐다. 정부는 붕괴 현장 주변에 담을 둘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매달 24일 붕괴 현장 앞에 모여 보상금 지급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 사고가 발생한 지 16개월이 지났지만 유족들에 대한 보상과 건물주·공장주 등에 대한 처벌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유신재 기자
[심층 리포트]
총, 특권, 거짓말 : 글로벌 패션의 속살
제3세계 국가 의류산업 성장의 배경
➌ 안전한 비즈니스

1990년 이후 방글라데시의 의류공장에서 일어난 대형 화재·건물붕괴 사고만 23건에 이른다. 이 사고들로 1750여명의 의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다. 쉽게 불이 붙는 원단이 가득한 공장에 소방설비는 갖춰지지 않았고, 대피로는 잠겨 있었다. 부실하게 지은 건물에 무거운 발전기와 기계들을 밀어넣었다. 비슷한 원인,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는 인명사고는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라고 보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하지만 안전조처를 하지 않아 수십~수백명의 노동자를 숨지게 한 방글라데시의 공장주들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 비극이 반복되는 핵심 원인이다.

2013년 4월24일, 공장 앞은 어수선했다. 전날 휴가중인 달리아에게 조장 슈문이 전화를 걸어와 건물 벽에 금이 많이 가 수리하느라 공장이 하루 문을 닫았다고 전했다. 이날은 공장 문을 열지 어쩔지 몰랐지만, 노동자들은 무단결근으로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일단 8시까지 출근을 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건물 안으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웅성거리는 노동자들에게 팬텀어패럴 생산책임자 이무란이 소리를 쳤다.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출근 보너스’를 못 받는다.” 방글라데시 의류공장들은 노동자들의 지각과 결근을 막기 위해 ‘출근 보너스’를 준다. 보통 월 200타카(약 2600원)인 출근 보너스를 받으려 달리아와 동생 폴리는 매일 아침 30분씩 부지런히 걸었고, 늦잠이라도 잔 날이면 아깝지만 15타카를 내고 릭샤를 탔다. “월급에서 지각 벌금으로 1000타카(약 1만3000원)를 깔 수 있다. 월급을 못 받을 수도 있다.” 이무란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건물주 소헬 라나까지 나타났다. “건물은 안전하다. 작은 금이 있었고, 어제 기술자들이 와서 고쳤다. 문제없으니까 들어가라.” 공장장들과 마스탄(폭력배)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왔다. 팬텀어패럴 공장장 자말이 “대량선적물량 마감이 닥쳤다. 빨리 일해야 된다”고 소리쳤다.

나흘 전 토요일 잔업까지 마친 자매는 3일짜리 휴가를 받았다. 폴리의 맞선을 위해 아버지와 두 자매는 네프로코나의 고향 마을로 향했다. 달리아 가족이 고향을 떠나 다카 교외 사바르로 이사한 것은 2008년이었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작은 가구점이 망했고 15만타카(약 200만원)나 되는 큰 빚을 얻었다.

이사온 다음날부터 달리아는 이모의 손을 잡고 의류공장에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눈치가 빠르고 손이 야무진 달리아는 일을 빨리 배웠다. 한달 반 만에 보조를 그만두고 재봉틀을 잡았다. 2000타카(약 2만6000원)로 시작한 월급은 공장을 옮길 때마다 올라 팬텀어패럴에서는 9000타카를 받았다. 2010년 폴리도 언니를 따라 팬텀어패럴에 합류했다. 폴리도 일을 시작한 지 한달 만에 재봉틀을 잡았다.

야채 노점상을 하던 아버지도 “알라의 도움으로” 곧 집 근처 시장에 야채가게를 냈다. 가족은 4년을 부지런히 일해 빚을 모두 갚았다. 이제 각각 스물셋, 스물둘이 된 딸들의 결혼을 생각할 만큼 여유가 생겼다. 폴리의 신랑감은 같은 고향 출신의 군인이었다. 유엔 작전에 자원해 큰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많은 군인은 방글라데시에서 선망의 대상이다. 그제껏 사진 속 폴리만 본 군인은 다행히 신붓감을 마음에 들어했다.

휴가를 마치고 출근한 달리아와 폴리는 팬텀어패럴, 뉴웨이브, 에더텍스 등 3개 공장 노동자 3000여명과 함께 상점과 은행 등이 모두 대피한 건물 안으로 떠밀리듯 들어갔다. 건물 4층, 약 130명이 일렬로 앉아 일하는 C라인에서 자매는 약 25미터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재봉틀 앞에 앉았다. 영국의 패스트패션 브랜드 ‘프라이마크’ 티셔츠를 만들기 위해 재봉틀을 돌렸다. 재봉틀은 곧 멈췄다. 정전이었다. 전력 사정이 안 좋은 방글라데시에서는 매일 서너번씩 전기가 나간다. 이윽고 건물 층마다 설치된 발전기가 커다란 소음과 진동을 일으키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작업이 재개되고 채 5분도 지나지 않았을 무렵, 굉음과 함께 뿌연 먼지가 달리아의 시야를 가렸다.

잠시 정신을 잃었다 깨어보니 바깥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회색 먼지를 뒤집어쓴 몸 곳곳이 욱신거렸다. 팔과 무릎에서 피가 났다. 눈을 들어보니 공장이 있던 8층 높이 라나플라자 건물이 주저앉아 있었다. 아수라장 속에서 달리아를 발견한 낯선 사람들이 달려와 병원으로 옮기려 했다. 달리아는 그들의 손을 뿌리쳤다. 아직 먼지가 가라앉지 않은 잔해 주위를 기어다니며 외쳤다. “폴리, 폴리.”

2013년 4월24일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 1129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현장은 이제 완전히 철거됐다. 정부는 붕괴 현장 주변에 담을 둘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매달 24일 붕괴 현장 앞에 모여 보상금 지급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 사고가 발생한 지 16개월이 지났지만 유족들에 대한 보상과 건물주·공장주 등에 대한 처벌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유신재 기자
2013년 4월24일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 1129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현장은 이제 완전히 철거됐다. 정부는 붕괴 현장 주변에 담을 둘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매달 24일 붕괴 현장 앞에 모여 보상금 지급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 사고가 발생한 지 16개월이 지났지만 유족들에 대한 보상과 건물주·공장주 등에 대한 처벌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유신재 기자

2013. 4. 24 라나플라자 붕괴

8일만에 폴리는 주검으로 발견
주검 못찾은 실종자 많아
아직도 전체 사망자 수 불분명
공장주는 풀려나고
건물주 보석 신청도 수용돼

코린트식 기둥 위에 돔형 지붕을 얹은 현관, 긴 회랑으로 둘러싸인 정원, 흰 대리석 바닥이 특징인 다카 고등법원은 유럽 르네상스 건축 양식을 충실히 따른 건축물이다.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05년 동벵골(지금의 방글라데시)과 아삼(지금의 인도 북동부 지역)을 통치하는 총독의 관저로 지어졌다. 1858년부터 1947년까지 이 나라에서 홍차와 황마 등을 헐값에 가져간 서구는 이제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노동력으로 생산된 옷을 헐값에 가져간다.

라나플라자 붕괴 나흘 뒤인 지난해 4월28일 사이디야 굴룩을 비롯한 세 명의 여성 활동가들이 고등법원을 찾았다. 타즈린패션 화재사건 피해자들을 돕던 이들은 라나플라자 붕괴를 목격하면서 사고 책임자를 강력히 처벌하는 것만이 반복되는 사고를 막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라나플라자 붕괴로부터 꼭 5개월 전인 2012년 11월24일 다카 외곽 아슐리아 지역에 자리한 타즈린패션 공장에서 불이 났다. 3층까지만 짓도록 허가를 받은 건물은 9층까지 지어졌다. 1층에는 쉽게 불이 붙는 원단이 가득 쌓여 있었다. 비상탈출 계단은 없었다. 각 층 입구마다 설치된 철문은 밖에서 잠겨 있었다. 1층에서 시작된 불은 순식간에 5층까지 집어삼켰다. 쇠창살이나 대형 환풍기를 간신히 뜯어내고 뛰어내린 노동자들은 부상을 입었다. 그러지 못한 최소 112명의 노동자들은 목숨을 잃었다.

여성 활동가들은 이날 고등법원에 타즈린패션 화재 책임자들을 신속히 재판해 달라는 청원서를 냈다. 이들의 청원에 따라 고등법원이 심리를 연 5월30일, 화재 발생 반년여 만에 타즈린패션의 모기업인 투바그룹의 소유주 델와르 호세인이 처음으로 법정에 섰다. 법무장관 출신 변호사 피다 모하마드 카말이 변호를 맡았다.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법정에 나온 델와르 호세인은 의기양양했다. 그는 사이디야와 친구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들이 나를 감옥에 보내겠다고? 너희는 나한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델와르 호세인의 태도는 허풍이 아니었다. 그는 의류기업인들의 이익단체인 방글라데시의류제조수출협회(BGMEA) 회원이었다. 현지 최대 규모 의류기업 중 하나인 모함마디 그룹의 루바나 헉 사장은 “델와르는 협회 고위층과 매우 가깝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다. 타즈린 화재 직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으냐”고 말했다. 타즈린패션 화재 하루 뒤 아슐리아 경찰서는 ‘신원미상’의 가해자들을 입건했다. 셰이크 하시나 총리까지 나서서 신속한 수사를 장담했지만, 이후 5개월이 넘도록 수사는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방글라데시 전체 수출의 80%를 의류산업이 차지하는 상황에서 이 협회와 기업인들의 힘은 막강하다. 다카 시내 하티르질 호숫가에 서 있는 협회 본부 건물은 의류업계의 힘을 상징한다. 2008년 완공된 15층 높이의 유리 건물은 불법적으로 취득한 국유지 위에 지어졌고, 건축과 환경과 관련된 여러 법률을 위반했다. 2011년 고등법원은 이 건물을 철거하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아직까지 굳건히 버티고 있다. 지난해 기준 공식적으로 방글라데시 국회의원 300명 가운데 29명이 의류기업 소유주다. 친인척이나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사업을 하는 이들까지 합하면 국회의원의 절반 이상이 의류산업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현지 노동단체들은 보고 있다. 1980년대부터 의류공장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조사해온 현지 여성단체 우비니그의 파리다 악터 사무처장은 “정치인과 고위 공무원 대부분 의류산업에 이해관계가 있다. 대다수 언론사도 의류산업과 관련돼 있다”고 말했다.

여성 활동가들의 청원에 따라 고등법원이 경찰을 압박했지만 델와르 호세인에 대한 수사는 더디기만 했다. 경찰은 화재 발생 13개월 만인 2013년 12월22일에야 델와르 호세인을 비롯한 13명을 살인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델와르 호세인은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라나플라자 건물의 의류공장에서 일하던 달리아(오른쪽 둘째)와 그의 가족들. 달리아는 붕괴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함께 일하던 동생 폴리는 목숨을 잃었다. 유신재 기자
라나플라자 건물의 의류공장에서 일하던 달리아(오른쪽 둘째)와 그의 가족들. 달리아는 붕괴 사고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지만 함께 일하던 동생 폴리는 목숨을 잃었다. 유신재 기자

2012. 11. 24 타즈린패션 공장 화재

3층 건축허가 받고 9층까지 지어
각층 철문 잠기고 비상계단 없어
최소 112명 노동자 참변당해
기업주 “구속되면 수출 타격”
수감 6개월 만에 풀려나

지난 2월9일 아침, 여성 활동가 사이디야는 타즈린패션 생존자 수마야와 함께 병원에서 의료진 면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마야는 화재 당시 2층에서 뛰어내리는 과정에서 얼굴을 다쳤다. 그 직후 코에서 발생한 근섬유종양이 눈과 뇌까지 퍼졌고, 병원에서 방사선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오전 9시30분께 사이디야는 법원에 출입하는 기자 친구로부터 델와르 호세인이 법원에 나타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도주한 뒤 발부된 구속영장에 대해 보석을 신청하러 온 것 같다는 게 기자의 설명이었다. 사이디야는 다른 활동가들에게 재빨리 소식을 알리고 릭샤에 올라탔다.

법정 안에는 거의 10명에 달하는 변호사들이 델와르 호세인을 변호하러 나왔다. 변호사 가운데 한명이 갑자기 외국 축구 대표팀 유니폼을 치켜들었다. 노란색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 하늘색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 파란색 이탈리아 대표팀 유니폼이었다. 변호사는 “투바그룹이 피파(FIFA·국제축구연맹)로부터 브라질 월드컵대회 계약을 따냈다. 회장이 구속되면 계약대로 납품할 수 없을 것이다. 방글라데시가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제껏 비슷한 사건에서 다른 공장주들이 구속된 적이 없는데 왜 호세인만 구속되어야 하느냐’, ‘호세인이 아니라 공장 관리자들의 책임이 크다’는 주장도 잇따랐다.

그사이 언론사들은 인터넷으로 델와르 호세인의 보석신청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법정 안에 50여명의 기자가 모여들었다. 법정 밖에서 “사주를 처벌하라”고 외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한참 동안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판사가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보석을 기각한다.” 델와르 호세인은 법정구속됐다. 화재 발생 후 약 15개월 만이었다. 법정 안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법정 밖으로 나온 사이디야의 눈에 수백명의 시민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사주 처벌”을 끝없이 외쳤다.

사이디야는 “경찰과 지방법원은 워낙 부패가 심하다. 그래서 고등법원에 청원한 것이다. 그래도 솔직히 델와르 호세인이 보석으로 풀려날 거라고 생각했다. 1990년 사라카가먼츠 화재 이후 계속된 사고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지만 공장주가 처벌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라나플라자 사건을 계기로 공장주들이 쉽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관행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섣부른 것이었다. 라나플라자 건물주 소헬 라나는 사건 나흘 만에 이웃나라 인도로 탈출을 시도하다 국경 지역에서 체포됐다. 집권 여당인 아와미연맹의 지구당 간부인 그는 건축기준을 무시한 건물을 지어올렸다. 지난 3월24일 법원은 소헬 라나의 건축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보석을 받아들였다. 나머지 혐의에 대한 보석신청도 받아들여지면 소헬 라나는 형이 확정될 때까지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 등을 떠밀다시피 노동자들을 위험한 건물로 밀어넣은 라나플라자 입주 공장 소유주 2명은 진작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지난 5일에는 타즈린패션 소유주 델와르 호세인이 수감 6개월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방글라데시의류제조수출협회는 사건 직후부터 델와르 호세인과 소헬 라나 등의 보석을 청원해왔다.

라나플라자 건물 잔해 속에서 달리아의 동생 폴리의 주검이 발견된 것은 사고 8일 뒤였다. 그사이 달리아의 가족은 폴리를 찾기 위해 신랑감에게 보여주려고 찍은 사진을 수천장 인쇄했다. 고향 마을에서 올라온 친척과 친구들까지 라나플라자 붕괴 현장과 병원, 수많은 주검이 안치된 학교 운동장을 뒤지고 다녔다.

희생된 의류노동자들에 대한 보상은 더디기만 하다. 지금까지 달리아의 가족은 지방정부로부터 장례비 2만타카(약 26만원), 총리실로부터 긴급지원금 10만타카, 바이어인 프라이마크로부터 4만5000타카 등 모두 16만5000타카(약 216만원)를 받았다. 폴리의 죽음에 대한 보상금은 언제 얼마를 받게 될지 모른다. 사건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전체 사망자가 몇 명인지 불분명하다. 현지 노동단체인 의류노동자연대 활동가 타슬리마 악터는 “주검이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가 많다. 노동부, 군, 경찰이 저마다 다른 숫자를 내놓고 있다. 신원확인을 못하고 매장한 주검도 291구나 된다. 사망보상금 규모를 정하기 위한 위원회가 꾸려졌지만 좀처럼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고 전했다.

21개월 전 일어난 타즈린패션 화재 사망자들의 보상금도 아직 다 지급되지 않았다. 최소 112명의 사망자 가운데 주검이 확인된 99명의 유족들은 70만타카(약 910만원)씩 받았다. 진화에 17시간이 걸린 불길 속에서 많은 노동자들의 주검은 재로 변했다. 유전자 감식으로 13명의 신원이 확인됐지만 이들에 대한 보상금은 아직 지급되지 않았다. 노동자 가족들을 상대로 2년 가까이 조사를 벌여온 사이디야 굴룩은 최소 12명에서 최대 23명의 사망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족들을 대리하는 변호사 아사두자만은 이 화재가 단순한 산업재해가 아니라 고용주의 잘못으로 일어난 게 명백한 만큼 70만타카보다 훨씬 많은 보상금이 지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타즈린패션 공장의 불길 속에서 가까스로 살아나왔지만 암을 얻은 수마야는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지난 3월21일 숨졌다. 라나플라자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달리아는 지난해 9월부터 또다른 의류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 인상된 최저임금 덕분에 팬텀어패럴에서보다 약 1000타카 많은 1만타카(약 13만원)를 월급으로 받는다. 하루아침에 1129명의 사망자와 2500여명의 부상자가 나온 마을에서 아버지의 야채가게는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

다카/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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