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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20세기 최고 건축공학자 배출한 나라…재하청공장 안전은 최악

등록 2014-08-27 20:21수정 2014-08-28 10:37

법조항 없는 스프링클러 의무화
방글라데시 전체론 수조원 필요
공장주들 “생산비 올라” 반발
“아시아 공장 전체 안전 확보를” 지적
2013년 4월24일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 1129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현장은 이제 완전히 철거됐다. 정부는 붕괴 현장 주변에 담을 둘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매달 24일 붕괴 현장 앞에 모여 보상금 지급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 사고가 발생한 지 16개월이 지났지만 유족들에 대한 보상과 건물주·공장주 등에 대한 처벌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유신재 기자
2013년 4월24일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 1129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현장은 이제 완전히 철거됐다. 정부는 붕괴 현장 주변에 담을 둘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매달 24일 붕괴 현장 앞에 모여 보상금 지급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 사고가 발생한 지 16개월이 지났지만 유족들에 대한 보상과 건물주·공장주 등에 대한 처벌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유신재 기자
108층, 442m 높이의 초고층 건물 윌리스타워(옛 시어스타워)는 미국 시카고의 상징이다. 1973년 준공 이후 25년 동안 세계 최고층 건물이라는 타이틀을 지켰다. 이 건물 로비에는 설계자인 파즐루르 칸의 동상이 있다. 칸이 이 건물에 처음으로 적용한 ‘복합튜브 구조’ 공법은 지금까지도 세계 대부분의 초고층 건물에 적용되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건축공학자로 꼽히는 칸은 다카에서 태어나 방글라데시공과대학(BUET·이하 ‘부엣’)을 졸업했다. 칸을 비롯해 세계 정상급 공학자들을 여럿 배출한 부엣은 이 나라의 자부심이다.

그런 부엣의 교수들이 ‘어코드’(방글라데시 화재 건물 안전 협정·Accord on Fire and Building Safety in Bangladesh)와 ‘얼라이언스’(방글라데시 노동자 안전을 위한 동맹·Alliance for Bangladesh Worker Safety)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다.

지난해 4월 라나플라자 붕괴 사고 이후 ‘살인적 착취’라는 비판에 직면한 에이치앤엠(H&M), 자라(ZARA) 등 유럽 지역 브랜드들과 갭(GAP), 월마트 등 북미 지역 브랜드들은 각각 어코드와 얼라이언스를 구성했다. 브랜드들이 낸 돈으로 어코드와 얼라이언스는 올초부터 바이어들과 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방글라데시 공장에 대한 안전진단을 진행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와 의류업계, 국제노동기구(ILO)도 부엣에 의뢰해 공장 안전진단을 벌이고 있다.

각자 공장 안전진단을 계획한 세 기구는 지난해 11월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공통의 안전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화재 전문가인 부엣 토목공학과 바드루즈아만 교수도 참석했다. 12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도달한 합의점은 “최소한의 건물 개선 작업을 통해 화재시 노동자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비상계단과 방화문, 방화벽, 적절한 창문 설치 등을 담은 가이드라인에 세 기구 대표들이 서명을 했다. 이때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2013년 4월24일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 1129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현장은 이제 완전히 철거됐다. 정부는 붕괴 현장 주변에 담을 둘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매달 24일 붕괴 현장 앞에 모여 보상금 지급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 사고가 발생한 지 16개월이 지났지만 유족들에 대한 보상과 건물주·공장주 등에 대한 처벌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유신재 기자
2013년 4월24일 방글라데시 의류노동자 1129명의 목숨을 앗아간 라나플라자 건물 붕괴 현장은 이제 완전히 철거됐다. 정부는 붕괴 현장 주변에 담을 둘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 사고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은 매달 24일 붕괴 현장 앞에 모여 보상금 지급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다. 사고가 발생한 지 16개월이 지났지만 유족들에 대한 보상과 건물주·공장주 등에 대한 처벌은 별다른 진척이 없다. 유신재 기자
문제는 올초 어코드와 얼라이언스가 공장 안전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됐다. 3자 회의에서 논의되지 않았던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갑자기 포함됐다. 방글라데시건축법에서 스프링클러 설치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법을 초월한 일방적인 밀어붙이기는 부엣 교수들의 자존심을 건드렸을 뿐만 아니라 스프링클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했다. 중간 규모 공장이라면 스프링클러 설치비로 약 4000만타카(약 5억3000만원)가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방글라데시 전체로 보면 수조원대 돈이 들어간다. 방글라데시 건물의 구조와 상하수도, 수질 등 여러 변수가 있는데 아무런 실험도 없이 한꺼번에 밀어붙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프링클러를 유지·관리할 수 있는 회사도 얼마 없는 상황에서 비싼 돈만 들여놓고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목돈이 들어가게 생긴 공장주들은 이런 어코드와 얼라이언스의 태도를 차별로 받아들인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공장주는 “어코드나 얼라이언스가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을 보태주는 것도 아니다. 바이어들이 돈을 빌려줄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바이어에게 대출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 결국 방글라데시 은행에서 10%가 훨씬 넘는 이자를 부담하고 대출을 받아야 한다. 이래서는 다른 나라 공장들과 경쟁이 안 된다”고 말했다.

토목구조 전문가인 부엣의 카비룰 교수는 “방글라데시에도 안전한 공장과 그렇지 않은 공장이 섞여 있다. 마찬가지로 인도나 스리랑카, 캄보디아, 미얀마, 심지어 중국에도 위험한 공장들이 많다. 라나플라자 붕괴 같은 사건이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다. 그런데 방글라데시에서만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결국 방글라데시 의류산업의 비용이 상승하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 아시아 지역 전반의 공장 안전을 확보하는 ‘지역적 이니셔티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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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전문가와 기업인들의 반감은 어코드와 얼라이언스의 활동 자체를 힘들게 하고 있다. 몇몇 공장주들은 어코드로부터 ‘부적합’ 판정을 받자 소송을 냈다. 어코드가 요구하는 안전기준이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공장주는 어코드의 지적을 받자 사업을 접겠다며 공장 문을 닫았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의류노동자 수백명이 어코드 사무실을 찾아가 항의시위를 벌이는 일도 벌어졌다.

또 어코드와 얼라이언스의 중요한 한계는 그들이 이른바 ‘5성 공장’(바이어와 직거래하는)에 대해서만 안전진단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바이어들과 직접적인 거래관계는 없지만 재하청을 통해 실제 제품 생산에서 중요한 몫을 담당하고 있는 미등록 공장들은 위험 요소가 훨씬 많지만 안전진단 대상이 아니다.

더욱 근본적인 한계는 어코드와 얼라이언스의 활동이 화재·건물 안전에만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노조를 만들려다 해고당하는 노동자들이나 시위 중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노동자들은 어코드와 얼라이언스의 관심 밖이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지만 더욱 복잡하고 중요한 문제는 외면한 것이다. 미국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 비즈니스인권센터는 “(어코드와 얼라이언스는) 노동권이나 결사의 자유 같은 좀더 넓은 이슈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8층짜리 건물이 무너져 1100여명이 한꺼번에 숨지는 나라가 ‘초고층 건물의 아버지’를 배출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부엣 졸업생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일류 건축기업에 채용돼 일한다. 방글라데시에는 이런 인재들을 고용할 수 있는 돈이 없다. 카비룰 교수는 “라나플라자 사건의 중요한 원인은 ‘정부 실패’다. 공무원들은 임금이 아주 적지만 부패가 심각하기 때문에 상당한 부자들이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이 공무원 임금을 통제하는데, 정부가 그들에게 휘둘리지 말고 임금을 올려줘야 한다. 그래야 부패가 사라지고 좋은 인재들이 일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다카/유신재 기자 oh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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