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대우 특별포럼에서 인사말을 하던 중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연합뉴스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역사에서 우리가 한 일과 주장을 정당하게 평가받길 기대한다.”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은 지난 26일 대우특별포럼에서 연설을 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이날은 대우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15주년이 되는 날이다. 김 전 회장은 신장섭 싱가포르대학 교수와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책에서 대우가 경제관료들에 의해 계획적으로 해체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즉각 뜨거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김 전 회장은 1967년 자본금 500만원짜리 미니기업에서 시작한 뒤 30년 만에 40개 계열사와 400여개 해외법인을 거느리고, 국내 매출만 60조원을 넘는 재계 2위의 그룹을 만든 ‘대우신화’의 주인공이다. 자신을 역사상 가장 큰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테무친에 비유하며 젊은이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하지만 대우는 경영부실을 견디지 못해 몰락의 비극을 맞았고, 그는 실패한 경영인, 불법을 저지른 경영인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내년이 팔순으로 남은 생이 많지 않은 그로서는 하루속히 명예회복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인간적 측면을 고려하더라도 ‘김우중의 반격’은 많은 사람에게 아쉬움과 우려를 낳았다. 무엇보다 사과와 반성이 빠져 있다. 대우 몰락은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국가경제에는 천문학적인 피해를 남겼다. 대우의 부채 60조원은 금융권 부실로 이어져 국가경제 전체가 휘청거렸고, 30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분식회계 41조원, 불법대출 9조원, 불법 외환거래 200억달러 등의 불법행위도 드러났다. 당연히 국민들은 그가 먼저 진솔한 사과와 반성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미국을 추종한 경제관료들에 맞서다 희생된 ‘민족주의자’로 미화됐다.
외환위기 이후 혹독한 구조조정과 긴축 일변도의 국제통화기금 처방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논란이 있었다. 하지만 정부와 금융기관이 도와주지 않아 대우가 망했다는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국민은 많지 않은 듯하다. 기업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정부가 도와준다면 이 세상에 쓰러질 기업은 단 한 곳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우차가 삼성차를 인수하고, 대우전자를 삼성전자에 넘기는 빅딜이 실패한 것도 오히려 대우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 많다. 삼성의 전직 임원은 “대우전자를 살펴보니 숨겨진 부실이 엄청났다”고 털어놨다.
더 심각한 것은 김 전 회장의 주장이 외환위기라는 뼈아픈 역사로부터 얻은 교훈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으로 비치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대다수 재벌들이 외부 차입금에 의존해 확장 일변도의 경영을 했다. 대우는 그 대표주자였다. 김 회장의 세계경영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화려한 구호의 이면에 치명적 약점이 숨어 있었다. 30대 그룹 중 절반이 문을 닫은 뒤 경영 패러다임은 외형 대신 내실 중심으로 확 바뀌었다. 모두들 강력한 자구노력, 비주력사업 정리, 부채 축소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노력을 폈다. 대우는 대마불사 신화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쌍용차를 인수하고, 고금리 자금을 끌어들여 수출 주도형 경영에 집착했다. 대우가 쓰러지기 1년 전 노무라증권은 ‘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고 경고했다. 전직 대우 임원은 “자동차사업을 꼭 하고 싶으면 다른 것은 포기하라고 직언했지만, 소용없었다”고 회상했다.
대우 해체는 정경유착을 통한 고속성장, 무리한 차입경영, 무분별한 문어발식 확장, 총수 1인의 황제경영 등 재벌체제의 모순이 압축적으로 터진 상징적 사건이다. 역사의 교훈을 잊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다. 개인과 기업도 마찬가지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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