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전격 타결된 다음날인 지난 11일 기자는 관세청에 전화를 걸어 수입관세양허(단계적 철폐)안에 따라 수입물품 관세징수액이 어느 정도 영향을 받게 되는지 물었다. 관세청 관계자는 “협정을 맺을 때 관세징수액에 미칠 영향을 놓고 기획재정부가 우리와 따로 사전에 상의하지도 문의하지도 않는다. 우리로선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통상당국의 경제관료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할 때 세수입 같은 국민경제에 끼칠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보다는 소수 거대기업의 시장 기회만 염두에 두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친 말로 해석된다.
1953년에 당시 제너럴모터스(GM) 사장이었던 찰스 윌슨은 “국가에 좋은 것은 지엠에도 좋은 것이고, 지엠에 좋은 것은 국가에도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수 거대기업들의 이익이 경제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그 파급 경로가 경제에 과연 존재하거나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늘 의문이다. 이른바 ‘트리클다운’(적하효과)을 둘러싼 논쟁 지점이다.
경제영역에선 각종 지표·수치의 크기 자체보다는 경제가 지금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 흐름과 추세가 더 중요하다. 그런 흐름을 만들어내는 막대한 권능을 가진 기구가 곧 국가다. 국가는 특정 품목에 관세양허를 내줄 수도 있고, 어떤 품목은 양허 제외 품목으로 정할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각 권역별로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 대학수능시험에서 정부가 수학과목 출제문제 중 한 두개의 난이도를 예년보다 크게 높이거나 낮추면 당장 강남 지역 수학학원가의 연간 매출액이 대폭 증가 혹은 감소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일순간에 전면적으로 사람들의 경제적 삶을 뒤흔들어 바꿀 수 있는 ‘제도’의 놀라운 권력이다.
한국이 이미 맺었거나 협상중인 20여 개의 자유무역협정마다 추진과정 뒤편에 대기업의 요구가 있었음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스티븐 마글린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는 어디선가 “경제정책결정은 정부의 몫이다. 다수의 경제학자도 노동조합 지도자도 인정한다. 그러나 그 실질적인 내용은 거대 기업을 위한 것이고 또 거대기업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한국 통상당국의 잇단 자유무역협정 추구의 배경엔 국가의 경제정책 실패와 대기업 이윤이라는 좀더 복잡한 함수가 내재돼 있다. 그동안 경제정책 실패로 비정규직이 급증하고 국내 가계소득 기반이 갈수록 얇아지자 상품을 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외부 수출지향 경제로 더욱 나아가고, 자연히 거대자본 친화적인 자유무역협정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경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필요하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이 노동자와 중소기업에 부과하는 명백한 위험, 나아가 계층별·업종별로 어떻게 차별적 영향을 미치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 재분배와 평등·정의의 가치에 기반해 이를 검토·조정하는 게 ‘국가의 일’이다. 시장을 더 넓히고 효율성을 높이는 건 국가가 나서지 않아도 ‘이윤 추구’ 자본이 스스로 하게 돼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조계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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