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현지시각) 페루 북쪽 도시 탈라라 해변에서 바라본 사비아페루사의 해상 광구 모습. 탈라라/최현준 기자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지난해 11월부터 탐사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는 최현준입니다. 저희 팀은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MB 31조원 자원외교 대해부’ 기획을 보도했습니다. 원없이 기사를 썼습니다. 5일 동안 19개면, 기사 꼭지 수로는 29개였습니다. 4명의 기자가 석달 가까이 취재한 결과물입니다.
오늘은 못다 한 남미 출장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저는 지난 2일부터 12일까지 남미 페루와 볼리비아에 다녀왔습니다. 이상득 전 의원이 자원특사로 각각 4차례, 6차례 방문했고, 한국석유공사와 광물자원공사가 자원개발 사업을 진행한 곳입니다.
출장 전부터 난관이 찾아왔습니다. 페루 현지에서 석유회사를 운영하는 석유공사에 취재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웬걸요. ‘부정적인 보도가 예상돼, 협조하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럴수록 오픈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설득했지만,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애초 건넸던 ‘해상 광구 현장을 보여달라’는 요구를 ‘현지 담당자라도 만나게 해달라’는 수준까지 낮췄지만, 그 역시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석유공사는 코너에 몰린 권투 선수처럼 잔뜩 움츠렸습니다.
결국 ‘맨땅에 헤딩’이 시작됐습니다. 스페인어도 영어도 못하지만, 통역을 맡은 씩씩한 교포 청년 호세를 믿고 페루 북쪽의 시골 마을 탈라라에 갔습니다.
지구 반대편인 만큼 시간과 날씨, 풍경이 모두 반대더군요. 사막과 바다가 공존했고, 목덜미가 아플 정도로 햇살이 따가웠습니다. 석유공사는 콜롬비아 석유공사와 공동으로 2009년 초 이곳의 사비아페루(사비아)라는 석유회사를 인수해 운영해 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먼 데까지 와서, 석유 사업을 하는 석유공사 직원들이 ‘참 대단하다, 고생 많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현지에서 만난 주민과 사비아의 전·현직 직원들은 개방적이고 여유가 넘쳐 보였습니다. 남미 사람 특유의 분위기인 듯싶습니다. 까만 코카콜라가 아닌 노란 잉카콜라를 나눠 마시며 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한국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도 삼성휴대전화와 현대자동차가 많이 눈에 띄었는데, 세계적인 전자회사와 자동차회사를 가진 나라인 만큼 석유회사도 잘 운영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코레아노’(한국인)라고 말하면 엄지를 치켜드는 사람도 종종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탈라라 현지의 석유 생산 현장에는, 고생하고 있어야 할, 현장을 잘 운영하고 있어야 할, 한국인 직원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 회사를 인수하기 위해 7000억원 넘게 투자했고, 해마다 수백, 수천억원의 재투자가 이뤄지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석유공사 쪽은 “주요 작업 시에 현장에 가서 관리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꼭 직원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고, 이렇게 해서 현장 관리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었습니다. 만화 <미생>에 나오는 ‘현장 전도사’ 한석율이 봤다면, 아마도 “이건 아니지 말입니다”라고 했을 것 같습니다.
현지 직원들은 사비아의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직원은 “회사 운영 과정에서 돈이 새고 있다”는 얘기를 들려줬습니다. “사업 진행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데, 한국이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도 했습니다.
지역 주민들도 지역 경제의 버팀목인 석유 회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떤 주민은, 코레아노 기자를 한국석유공사의 관계자인 줄 알고 취업을 부탁해 오기도 했습니다. 주민들 역시 사비아의 침체된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듯했습니다. 한 주민은 “사비아가 (탐사 광구에서) 물만 퍼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사비아의 석유 생산량은 6년째 제자리걸음 중입니다. 석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해상 탐사 광구에서 탐사를 하고 있는데 한 곳도 성공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결국 석유공사는 지난해 사업을 정리하기로 하고 시장에 매물로 내놓은 상황입니다.
페루 현장에서 보니, 석유공사 경영진이 왜 그렇게 언론 취재에 부정적이었는지 이해가 됐습니다. 다른 해외자원개발 사업 현장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만약 이런 식으로 현장이 관리된다면 사업은 성공하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원개발 사업이 로또처럼 성공률이 매우 낮다고 하지만,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확률을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공기업이 관여한 해외자원개발 사업은 총 80건, 투자액은 무려 31조원이 넘습니다.
최현준 탐사기획팀 기자 haojune@hani.co.kr
최현준 탐사기획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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