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지난 10일 3연임이 확정된 뒤 기자들 앞에 섰다. 그는 쟁점인 법인세 인상론에 대해 “(법인세를) 낮춰야지 올리면 되겠느냐”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참여연대는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고 맞받아쳤다. “공평과세와 복지국가 건설을 위해 법인세 정상화(이명박 정부 때 내린 법인세의 재인상)가 선결과제다.” 연말정산 파동을 계기로 여당이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 공약을 비판할 때만 해도 앞으로는 제대로 된 증세-복지 논의가 이뤄지겠구나 하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법인세만 놓고 보면 인상론과 반대론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다. 법인세 외에도 소득세·부가세 등 여러 세목이 있기 때문에 증세 논의는 좀더 종합적으로 이뤄질 필요도 있다. 또 복지 수준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그에 필요한 재원 규모의 산출이 우선과제다. 국민들이 현재의 낮은 복지에 만족하지 않으면서, 막상 증세에는 부정적인 모순도 고려해야 한다. 변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개인 고난도 다차방정식이다.
재계는 경제성장이나 기업경쟁력을 위해서 법인세 인상은 안 된다는 주장이다. 10대 그룹의 한 회장은 “법인세를 올려도 세금은 늘지 않는다. 경제를 살려서 세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여기에 회의적이다. 우선 과거와 같은 고성장은 이제 쉽지 않다. 또 설령 성장이 이뤄져도, 그 과실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낙수효과’가 약해졌다. 그러니 성장을 위한 고통 분담에 동의할 유인이 없다.
반대로 국민들은 성장의 과실이 골고루 나눠지기를 원하는데, 재계가 난색이다. 선진국의 경험으로 볼 때 ‘복지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의 폐해가 전혀 기우만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적절한 분배는 오히려 성장을 촉진한다.
과연 해법은 무엇일까? 하나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 양보나 희생이다. 누구나 인정하듯, 그것은 쉽지 않다. 또 다른 선택은 국민의 복지 확대와 재계의 성장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것이다. 이 또한 만만치 않지만, 성공하면 한국은 ‘고성장-고복지 사회’로 도약한다.
독일이 경제위기 속에서도 건실한 경제와 탄탄한 복지를 자랑하는 비결은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이른바 독일모델로 설명된다. 그 요체는 ‘경제 전체의 파이를 최대한 키우되, 이를 공정하게 나눠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국민들은 성장의 파이가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에 성장정책에 찬성한다. 기업들도 성장에 대한 지지를 얻기 위해 분배(복지)에 동참한다. 독일이 21세기 이후 사민당에서 기민당으로의 정권교체 속에서 법인세 인하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기본 바탕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성장의 과실이 공정하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전경련은 법인세 인상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대기업들이 경제 성과를 사내에만 쌓아두는 대신 일자리를 늘리고, 임금을 올리고, 중소 협력업체들한테 공정거래를 통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도록 솔선수범하게끔 유도해야 한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성장정책에 대한 지지를 얻어야 한다. 복지가 나라 형편에 비춰 지나치거나, 복지 모럴해저드가 발생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그러면 복지에 대한 지지가 강화된다.
독일이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사회적 타협과 노사협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것이 부족하다. 한국은 독일처럼 ‘고성장-고복지 사회’로 갈 것인지, ‘저성장-저분배 사회’에 멈출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있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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