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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세금폭탄’ 때문에 ‘왕따’ 된 이야기 해드릴게요

등록 2015-04-10 20:43수정 2015-04-10 22:29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정부가 근로소득자 1619만명의 세금을 전수 조사한 결과, 올해 초 연말정산 파동이 서민에 대한 ‘세금폭탄’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부가 근로소득자 1619만명의 세금을 전수 조사한 결과, 올해 초 연말정산 파동이 서민에 대한 ‘세금폭탄’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처음 인사드립니다. 경제부에서 기획재정부를 담당하는 김소연입니다. 기획재정부는 거시경제, 예산, 세금, 국제금융, 공공기관 관리 등 정부 정책 거의 모든 것에 관여하는 ‘오지랖 넓은 부처’로 생각하면 됩니다. 제가 사는 곳은 정부청사가 모인 세종시입니다. 서울을 떠나 새도시로 옮겨오면서 조금은 다른 삶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저녁까지 기자실에 틀어박혀 각종 자료와 브리핑에 파묻히고, 아름다운 풍경 대신 빽빽하게 둘러싼 아파트를 보고 있자니, 서글픈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최근 몇 달 동안 ‘연말정산 파동’까지 겹치면서 시름이 더욱 커졌습니다. 본의 아니게 ‘왕따’가 된데다, 정부와 ‘같은 편’으로 오해를 받았습니다. 복잡한 세금 얘기를 시작하려니 마음이 착잡하네요. 연말정산 파동은 2013년 소득세법 개정에서 시작됐습니다. 그해 정부는 의료비, 교육비, 기부금 등 ‘소득공제’ 항목을 대거 ‘세액공제’로 바꿨습니다.

먼저 공제에 대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네요. 소득공제는 소득에서 해당 공제액만큼 빼주는 것으로, 예를 들어 연봉 1000만원인 사람에게 100만원의 소득공제 혜택을 주면 900만원에 대해서만 소득세를 매긴다는 뜻입니다. 소득공제는 같은 100만원이라도 최저세율(6%)을 적용받는 사람은 세금이 6만원 줄지만, 최고세율(38%)에 해당하는 고액연봉자들은 38만원이 줄기 때문에 고소득자에게 유리합니다. 세액공제는 세금이 결정된 뒤 공제해주는 제도로, 세액공제 10만원의 경우 소득이 1000만원이든 1억원이든 세금 절감액은 10만원으로 같습니다.

우리나라 소득공제 규모는 어마어마합니다. 2013년 직장인들 급여가 495조원인데, 이 중 300조원(60.6%)이 각종 소득공제로 과세 대상에서 빠집니다. 문제는 깎인 300조원이 고소득 직장인에게 유리한 방식이라는 거죠. 이런 이유로 진보, 보수를 떠나 세법 학자라면 누구나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부가 모처럼 옳은 일 한 겁니다. 그런데 왜 난리가 났던 것일까요?

2013년 바뀐 세법이 지난해 근로소득부터 적용됐고, 1600만 직장인들이 세금의 실체를 가장 적나라하게 느끼는 연말정산과 맞물리면서 ‘세금폭탄’ 논란에 불이 붙은 것입니다. 여기서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연말정산에서 토해낸 돈이 많다고 꼭 세금이 늘어난 것은 아닙니다. 국세청이 원천징수 과정에서 적게 떼어 가면 나중에 결정되는 세금이 더 많아 추가 납부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세금이 늘었다기보다 원천징수 방식의 문제죠.

이번 연말정산 파동에서는 두 가지가 뒤섞이면서 ‘1년 전보다 많이 토해냈다’가 ‘세금이 늘었다’로 둔갑했고, 대다수 언론은 극단적인 사례를 들며 ‘13월의 세금폭탄’이라고 보도했습니다. <한겨레>는 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은 놔둔 채 담뱃세에 이어 근로소득세가 늘면서 ‘증세는 없다’던 정부가 국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세법 개정이 소득불평등 개선 차원에서 방향이 옳고 ‘세금폭탄’이라기보다 고소득층 증세에 가깝다며 다른 목소리를 냈습니다. 후폭풍은 컸습니다. “한겨레 맛이 갔다” “정부만 대변한다” “월급쟁이만 봉이냐”는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연말정산 혼란이 가라앉지 않자, 정부가 근로소득자 1619만명의 세금을 일일이 계산하는 초유의 일이 벌어집니다. 드디어 지난 7일 결과가 나왔고, ‘세금폭탄’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세법 개정으로 근로소득자 중 75%는 세금이 줄거나 그대로였습니다. 세금이 늘어난 사람 중 절반은 연평균 1만~10만원 등 소액 증가했을 뿐입니다. 전체 평균으로 보면, 상위 9%인 연소득 7000만원 이상은 세금이 많이 늘고, 84%를 차지하는 5500만원 이하는 줄었습니다. 전수조사 결과가 나오자 상당수 언론들은 ‘13월의 세금폭탄’은 ‘괴담’이었다며 태도를 싹 바꿨습니다.

김소연 경제부 정책금융팀 기자
김소연 경제부 정책금융팀 기자
결론적으로 <한겨레> 보도는 큰 틀에서 맞았지만, 기분이 썩 좋지 않았습니다. 세금에 대한 불신이 한층 깊어진 탓입니다. 세금은 ‘다른 세상을 꿈꾸게 하는 도구’입니다. 아픈데 돈이 없어 자식에게 부담 주기 싫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씨 할아버지, 온몸에 파스를 붙인 채 폐지를 줍고 있는 박씨 할머니 같은 우리의 이웃을 위해 세금이 필요합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조세의 원칙이 힘을 받기 위해서라도 나부터 세금을 더 낼 수 있다는 마음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요?

김소연 경제부 정책금융팀 기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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