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간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사진은 9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물산 사옥. 연합뉴스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의 공정성 여부를 둘러싸고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사이의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삼성물산 지분 7%를 취득한 엘리엇은 주총에서 합병을 결의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소송과 케이씨씨에 자사주(5.7%)를 팔지 못하게 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잇달아 냈다. 삼성은 이에 맞서 케이씨씨를 ‘백기사’로 확보하는 등 주총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총력전을 펴고 있다.
공방을 지켜보는 이들도 두 진영으로 나뉘었다. 삼성과 보수언론은 엘리엇을 주가 차익을 노린 ‘먹튀 세력’이라고 공격한다. 반면 엘리엇과 일부 소액주주들은 삼성물산의 기업가치를 무시한 불공정한 합병비율과, 삼성물산의 주가가 낮은 때를 택한 부당한 합병 시점을 근본 원인으로 지적한다.
삼성과 엘리엇은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온갖 논리를 동원한다. 하지만 둘 다 근본 목적은 이익추구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3세 승계체제 구축을 위해 합병 비율과 시점을 유리하게 선택했다. 엘리엇은 펀드의 수익 극대화를 위해 삼성을 공격했다. 그렇다면 특정 개인이나 펀드의 이익이 아닌 국가경제 전체 차원에서 바람직한 해법은 무엇일까?
코리아디스카운트는 한국 기업의 주가가 비슷한 선진국 기업에 비해 저평가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코리아디스카운트의 주된 요인은 후진적인 기업지배구조가 꼽힌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삼성의 대응은 코리아디스카운트의 근거를 확실히 제시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기업이 평균 5% 남짓의 지분을 갖고 있는 재벌 총수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는 한국 지배구조의 실상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연기금의 박유경 이사는 “경영권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승계를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불공정한 합병비율을 바로잡으라는 것인데, 왜 이렇게 푸는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국 재벌은 2세에서 3세로 넘어가는 과도기다. 한국 경제에서 재벌이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하면, 3세 승계의 연착륙은 국가경제의 큰 관심사다. 삼성물산 사건은 3세 승계의 취약점인 ‘편법적 상속과 지배권 강화’의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재용 체제의 완성을 위해서는 앞으로도 삼성전자는 물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사의 분할과 통합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시장은 예상한다. 관건은 그 과정이 법과 규범에 맞고, 시장의 지지를 받는지 여부다. 한 예로 삼성전자와 에스디에스(SDS)를 합치면서,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하기 위해 삼성전자에 불리한 합병비율을 적용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삼성의 지분은 다 합쳐도 17.6%다. 그나마 삼성생명 등 금융사가 보유한 9%는 법상 의결권 행사가 제한된다. 반면 외국인 지분은 50%를 넘는다. 그들 상당수는 국제금융자본의 큰손이다. 엘리엇이라는 한 헤지펀드와의 싸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고 또다시 ‘먹튀 논리’를 동원할 것인가? 이 부회장은 글로벌 사회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한 것이 큰 자산으로 꼽히지만, 자칫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다. 이미 편법 상속 논란으로 15년을 시달린 이 부회장에게 최고경영자로서 새출발을 앞둔 시점에 또다시 편법 지배권 구축이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씌워지는 것은 불행이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 등 세계적 언론들이 모두 삼성에 우호적이지 않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최선은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와 3세 승계의 연착륙이다. 그 핵심은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성 확보와 지배구조 개선이다. 그러지 않으면 삼성이 엘리엇은 이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제든 외국 대형 펀드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합병을 위한 임시주총까지는 한달 이상 남아 있다. 시장과 투자자의 신뢰를 회복할 시간은 충분하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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