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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엘리엇의 공격이 없었다면

등록 2015-07-10 19:48수정 2015-07-10 22:10

엘리엇의 공격이 없었다면 삼성 주총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지난 6월1일 2015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엘리엇의 공격이 없었다면 삼성 주총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지난 6월1일 2015 호암상 시상식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삼성물산 주주총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모두 주주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막판 경쟁이 치열하다. 3세 승계의 일환으로 합병을 추진한 삼성이나, 합병이 주주들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명분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엘리엇 모두 주총에 목을 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국 경제나 국민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국가경제나 삼성 전체가 결딴나는 일이 아니라면, 주총의 승패 자체보다는 이번 사태의 본질이나 교훈에 더 주목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만약 엘리엇의 공격이 없었다면, 삼성 주총은 아무 문제가 없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세계 의결권 자문시장의 1, 2위 업체인 아이에스에스(ISS)와 글래스루이스는 합병 반대를 권고했다. 합병비율이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나머지 주주의 이익에 배치된다는 이유였다. 이는 자문사들이 판단 기준으로 삼는 주주친화적 경영과 지배구조라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삼성물산의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부분 두 자문사의 권고를 따른 것으로 알려진다.

삼성은 두 자문사에 대해 “신뢰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국내 한 투자사 대표는 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에 한국 재벌이 글로벌 스탠더드를 거부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헤지펀드의 과도한 이익추구 행위가 국제적 논란거리인 것은 맞지만, 엘리엇한테 빌미를 준 것은 합병의 공정성 시비 가능성을 간과한 삼성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엘리엇의 공격이 있기 전부터 이미 합병비율의 불공정성과 합병 시너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그 점에서 엘리엇을 이번 사태의 원흉으로 몰아붙이는 보수언론의 ‘애국심 자극 보도’가 맹위를 떨치는 것은 신중하게 볼 사안이다. 엘리엇을 ‘투기자본’, ‘불법 기업사냥꾼’으로 공격하고, 임진왜란에나 어울릴 것 같은 ‘외침’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국민연금이 삼성 합병에 반대하는 것은 마치 매국노인 것처럼 압박한다. 심지어 엘리엇 이외 다른 외국인 투자자들까지 모두 적대시하는 분위기다.

한국은 수출입 등 대외의존도가 높은 나라다. 한국 대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기 위해 수십년간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자칫 글로벌 스탠더드를 거부하고, 전체 외국인 투자자를 적대시하는 것은 한국 경제와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까지 위협할 수 있다. “한국 증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중시한다. 배당소득증대세제를 만들어, 앞으로 배당성향이 많이 오를 것이다. 투자를 많이 해달라.” 최경환 부총리가 지난해 뉴욕 한국경제설명회 때 외국인에게 강조한 말이다. 이번 사태는 이런 정부의 노력까지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삼성이 주총에서 이겨도, 지는 것과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부친인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지난해 5월 이후 삼성의 변화를 주도했다. 방산 및 석유화학 계열사 매각으로 상징되는 ‘선택과 집중’은 과거 문어발식 사업다각화와 차별화된다. 또 적극적 기업 인수합병 전략은 과거의 폐쇄적 경영방식과 큰 차이가 있다. 이 모든 게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조현아 사태’에서 드러난 불안한 재벌 3세의 모습이 아닐 것이다. 네덜란드연기금의 박유경 이사는 “새로운 경영철학과 비전, 지배구조를 선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한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이 부회장도 “과거처럼 지분에 의존해 경영할 생각은 없다. 실력으로 시장에서 인정받겠다”고 수차례 말했다고 한다. 이참에 제2의 엘리엇이 등장할 빌미를 없애고, 국민과 글로벌사회의 지지를 함께 받을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솔직히 엘리엇이 없었다면, 삼성이 부랴부랴 합병 이후 주주친화 대책을 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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