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경영권 다툼이 진흙탕 싸움으로 격화하고 있는 5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공정거래위원회가 롯데의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광윤사, 엘(L)투자회사 등의 지분구조 파악에 나서면서 그동안 베일에 감춰져 있던 롯데의 정확한 소유구조가 드러날지 주목된다. 공정위는 5일 롯데의 국외 계열사 소유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롯데 쪽에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신봉삼 공정위 기업집단과장은 이날 “지난 7월31일 공문을 보내 신격호 총괄회장이 지배하는 해외 각 계열사의 주주 현황과 출자 현황 등을 8월20일까지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자산 규모 5조원 이상) 지정을 위해 필요한 자료를 기업에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롯데홀딩스 등이 호텔롯데를 비롯해 롯데 계열사의 주요 주주라는 점은 오래전부터 드러난 사실인데도 이제야 자료 요청을 했다는 지적도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롯데케미칼(9.30%)·호텔롯데(19.07%)·부산롯데호텔(46.62%) 등의, 광윤사는 부산롯데호텔(6.83%)·호텔롯데(5.45%) 등의 대주주다. 이에 대해 신 과장은 “이번에 신격호 총괄회장이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들을 해임하려고 하는 등 신 회장이 해외 계열사(일본 롯데홀딩스)를 지배하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롯데가 공정위의 요청을 받아들일지가 관심사다. 롯데가 공정위의 요청을 받아들여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분구조와 국내외 기업들에 투자한 현황을 공개한다면 그동안 베일에 싸인 롯데 지배구조가 드러날 수 있다. 이 경우 그동안 롯데가 2009년 도입된 ‘대기업 집단 현황 공시’ 제도를 위반했는지 점검할 수 있다. 롯데는 일본 롯데홀딩스와 광윤사 등을 신격호 총괄회장과 연관이 있는 ‘특수관계인’이 아니라 ‘동일인(신격호 총괄회장) 측이 아닌 최다주주’인 ‘기타 주주’로 공시해왔다. 신 총괄회장과 무관한 회사라고 밝혀온 것이다.
하지만 신격호 총괄회장은 일본 롯데홀딩스의 이사들을 소집해 손가락으로 해임을 지시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 때문에 일본 롯데홀딩스를 비롯해 광윤사, L투자회사 등이 신 총괄회장의 지배 아래 놓여 있는 것이 확인되면 대기업 집단 현황 공시 제도를 어긴 것이 된다. 아울러 일본 롯데홀딩스 등이 국내 기업에 투자했지만 그 회사가 롯데그룹 계열사로 묶여 있지 않다면 역시 관련 규정 위반이 된다.
공정위는 롯데가 자료 요청을 거절한다면 신격호 총괄회장을 형사처벌할 수도 있다는 입장이다. 신봉삼 과장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거나 허위자료를 제출할 경우 1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동일인(신격호 회장)을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적 근거가 모호한 점이 있어 롯데가 제대로 자료를 내놓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도 나온다. 롯데는 그동안 일본 롯데홀딩스 등이 국외 계열사여서 국내법인 공정거래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며 관련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공정위 출신의 한 교수(법학)는 “롯데그룹의 지분구조를 파악하려면 해외 계열사 지분을 알아야 하는 반면 국내법이 해외에 미치는 것도 한계가 있다”며 “롯데 경영권 분쟁으로 처음으로 불거진 일이라 공정거래법의 적용이 모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롯데는 공식적으로는 “내용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로는 곤혹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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