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여당은 노동 대타협과 거꾸로 가고 있다. 8월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4자 대표자 회의 모습.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박근혜 대통령이 1일 국무회의에서 “노동개혁은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국민들의 요구이며 스스로 개혁하지 않으면 모두 자멸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원회 복귀 결정을 했는데, (노사정이) 조금씩 양보해서 나라의 백년대계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노동개혁을 위한 대타협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최근 정부여당과 경영계가 보여주는 모습은 이런 대통령의 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최경환 부총리는 언론사 간부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사정위가 9월10일까지 노동개혁과 관련한 합의를 이뤄달라”고 사실상 시한부 최후통첩을 보냈다. 노동시장의 새 질서를 짜는 중요한 논의를 불과 열흘 안에 끝내라는 억지다. 노동계에서는 벌써 고무도장 역할이나 하라는 얘기냐고 불만이 터져나온다.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도 기자회견을 열어 “(노동계가 반대하는 ‘쉬운 해고’를 위한) ‘일반 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를 지침이 아니라 (아예) 법으로 못박으라”고 요구했다. 당장 이에 대해 노동계에서는 협상 파트너를 생각하지 않는 태도라고 반발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말바꾸기는 듣는 사람들의 귀를 의심케 할 정도다. 김 대표는 보수-진보 합동토론회에서 “노동개혁은 미래세대를 위한 것으로 여-야나 보수-진보가 따로 없다. 그동안 진영논리에 빠져 해결하지 못한 것을 반성한다”고 말해 기대감을 모았다. 하지만 불과 이틀 뒤 국회 대표연설에서는 “노조가 쇠파이프를 안 휘둘렀으면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었을 것… 노조가 우리 사회에 끼친 패악은 엄청나다”며 국민들의 대타협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대다수 노동 전문가들은 “노동개혁은 기득권을 누리는 노사에 양보를 요구해야 하기 때문에 개혁의 목적과 대의명분을 분명히 해서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노사정의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여당과 경영계의 모습만 보면 대타협을 정말로 원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경영계는 기자회견에서 일자리 부족과 비정규직의 원인을 ‘노동 경직성’ 탓으로 돌렸다. 전체 임금 근로자의 절반 수준을 육박하는 840만 비정규직 노동자가 지나친 ‘노동 유연화’ 때문에 극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다. 정부와 경영계의 이런 자세로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노동개혁이 요원하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경영계가 정말 청년 일자리를 늘리고 싶다면, 노동계에 임금피크제 수용만 요구할 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경영계의 고통분담 방안을 내놓는 게 순리 아닐까? 때마침 케이비·신한·하나 등 3대 금융그룹 회장이 3일 급여의 30%를 반납하고 이를 신규채용 재원으로 사용하겠다고 발표해, 경제 5단체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정부와 경영계의 밀어붙이기엔 다른 의도가 있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경제 5단체는 발표문에서 “기득권 노동자들로 인해 … 미취업 청년들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더 나은 일자리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고용축소의 책임을 노동계에 전가하려는 의도가 드러난다. 한 노사문제 전문가는 정부여당의 행보와 관련해 “노동계가 반발해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거나 야당이 법제화에 반대하면, 노동개혁과 청년 일자리 창출 실패 책임을 떠넘기고, 대신 내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일자리 창출 노력당’의 이미지를 내세우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희망은 없다. 정부여당이 선거에서는 이길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은 대통령 말대로 자멸하지 않겠나?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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