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얼마 전 ‘이동통신 낙전 수입’ 논란과 관련해 미래창조과학부 통신정책 담당자와 통화를 하다가 “이통사들이 가입자들한테 다달이 보내주는 요금청구서를 통해 최근 몇달치 월 평균 음성통화·문자메시지·데이터 이용 내역을 알려주면, 이용자들이 자신의 이용 행태에 맞는 요금제에 가입했는지를 판단하는 정보로 활용할 수 있을 텐데”라고 물었다. 그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통사 홍보팀에 확인하니 한결같이 “꽤 오래전부터 요금청구서에 최근 3개월치 이용 내역을 명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가위 명절 전 우편물을 정리하다 에스케이텔레콤(SKT)이 보낸 요금청구서가 보이기에 찬찬히 살펴봤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3개월치 월 평균 이용 내역이 없다. 에스케이텔레콤에 문의했더니 ‘최근 총사용량’이란 난을 보라고 하는데, 칸만 있을 뿐 비어 있다. 작은 글씨로 ‘상세 내역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돼 있기에 뒷면의 상세 내역 난을 봤지만, 요금이 청구된 달 사용치만 있다. 상세 내역이란 것도 가입한 요금제 이름과 이용 내역 및 이달치 요금 청구액 등만 표시돼 있을 뿐 해당 요금제 가입자에게 기본 제공되는 음성통화·문자메시지·데이터량 등은 명시돼 있지 않다. 이것만으로는 기본 제공량을 소진했는지 여부를 알 수 없고, 덩달아 현재 가입된 요금제가 적당한 것인지를 판단하기도 어렵다.
에스케이텔레콤은 이에 대해 “해당 부서가 만들어 배포한 ‘샘플’에는 최근 3개월치 이용 내역이 상세하게 명시돼 있다. ‘다회선 청구서’라서 그런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회선 청구서란 2명 이상 것을 한장으로 통합한 것을 말한다. 에스케이텔레콤 주장대로라면, 정부 보고용과 보도자료용으로 쓰는 ‘샘플’과 고객한테 실제로 보내는 요금청구서 내용이 다른 셈이다. 또한 이통사들은 요금청구서 제작 및 우편 발송 비용을 줄이기 위해 가입자들에게 다회선 청구서 신청을 권하고 있는데, 이렇게 하면 역차별을 받는 셈이 된다.
이통사들은 월 요금, 월 평균 음성통화·문자메시지·데이터 이용량, 계절·요일·시간대별 이용량 추이, 부가서비스 이용 내역 같은 정보를 가입자별로 축적해 새 요금제를 설계하거나 부가서비스 마케팅 등에 활용하고 있다. 이통사들은 ‘빅데이터’란 이름으로 가입자별 이용 내역 정보 사업화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필요로 하는 기업 등에 팔아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이용 내역 정보는 가입자한테도 유용하다. 요즘은 대다수 가입자들이 월 정액요금제에 가입하고 있는데, 이용 내역 정보로 현재 쓰고 있는 정액요금제가 자신에게 맞는 것인지를 판단해볼 수 있다. 국내 이동통신 가입자 가운데 상당수는 이통사들의 매출 극대화 전략에 넘어가 필요 이상으로 비싼 정액요금제에 가입해 이동통신 낙전 수입 논란까지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요금청구서에 최근 3~6개월치 월 평균 이용 내역을 명시해주면, 가입자 스스로 이동통신 낙전 수입 피해를 당하고 있지 않은지를 알 수 있다.
이통사들은 다달이 수천만장의 요금청구서를 보내는데, 이를 위해 무수히 많은 나무들이 희생되고, 청구서 제작과 배달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키고 있다. 환경 파괴까지 감수하며 어차피 보내야 하는 거라면, 이통사가 갖고 있으면서 가입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전달하는 창구로 활용하면 어떨까. 여백이 많아 정보를 담을 자리는 충분하다. 이통사들이 가장 큰 고민거리로 꼽고 있는, 이통사들에게 대한 사회적 불신 해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