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환원과 상생 공약을 쏟아내며 시내면세점 입찰에 참여한 두산의 박용만 회장(왼쪽)과 롯데의 신동빈 회장. 강재훈 선임기자, 국회사진기자단 khan@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올해 특허가 끝나는 시내면세점의 입찰에 참여한 기업들이 연일 총수 사재출연을 포함한 사회환원과 상생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두산은 26일 박용만 회장이 사재 100억원, 그룹이 100억원을 각각 출연해 ‘동대문 미래창조재단’을 출범시켰다. 재단은 앞으로 동대문 상권 활성화와 동대문 지역 균형발전을 추진한다. 두산이 이에 앞서 향후 5년간 면세점 영업이익의 10%(추정금액 500억원)를 사회환원하는 방안도 내놓았다. 신세계 역시 사회공헌 및 상생 면세점으로 설계하고, 관련 비용으로 5년간 총 2700억원을 집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수성에 나선 롯데도 같은 날 신동빈 회장의 사재 100억원, 계열사 출연금 200억원으로 청년창업 활성화 지원을 위한 ‘롯데 액셀러레이터’를 설립하기로 했다. 롯데는 앞서 2020년까지 1500억원을 중소·중견기업과의 상생, 취약계층 자립 지원 등에 사용하는 사회공헌 계획을 발표했다. 수성과 공격을 겸하는 에스케이는 하루 뒤인 27일 면세점 영업이익 10% 사회환원을 포함한 11대 상생 약속을 내놓았다.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상생 공약을 내놓은 이유는 1차적으로는 면세점 특허 심사기준에 사업역량, 입지조건 외에 사회기여도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업계 1위인 롯데가 총수일가 경영권 분쟁과 ‘갑질 논란’을 만회하기 위해 상생 카드를 동원하는 것도 기폭제 노릇을 하고 있다. 롯데는 지난 9월 1차 경영권 분쟁이 끝난 뒤 신 회장의 사재 100억원을 포함해 롯데문화재단을 만들었다.
국민들로서는 이런 복잡한 이유와 상관없이 대기업들의 상생 경쟁 자체가 반갑다. 발표 시기가 겹치고, 내용도 엇비슷하다 보니 모방 논란도 있지만, 큰 관심사는 아니다. 그동안 대기업들은 상생과 동반성장이라는 말 자체를 부담스러워했다. 정부가 중소기업과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추진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선정과 대형유통업체 영업시간 제한 정책도 지금껏 반대해왔다. 그런데 대기업들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사회공헌과 상생 방안을 내놓으니 당황스럽지만 신선한 느낌이 든다.
문제는 진정성과 지속성이다. 재계 안에서조차 일단 사업권을 따고 보자는 취지의 ‘일회성 쇼’ 아니냐는 회의론이 제기된다. 한 기업 총수는 기자에게 “기업들이 1년 뒤 약속을 제대로 이행했는지 꼭 확인해보라”고 당부한다.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은 무엇보다 관련 기업들의 전력 때문이다. 롯데는 오랫동안 중소 납품업체들을 상대로 한 갑질 논란의 주인공이었다. 때마침 공정거래위원회도 대형마트 3사의 납품업체들을 상대로 불공정행위를 적발하고 곧 제재 절차에 들어갈 예정이다. 3개사 중에는 면세점 입찰전에 참여한 롯데와 신세계도 포함돼 있다.
사회적으로 기업들의 상생 공약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한 이유다. 무엇보다 정부가 140조~150조원에 이르는 조달시장에서 환경·인권·노동·사회공헌 등 사회책임 이행 우수기업을 우대하는 법적 근거를 좀더 명확히 하는 일이 시급하다. 또 기업들의 사업보고서에 사회책임 이행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새누리당의 홍일표 의원 등이 관련 내용을 담은 조달법, 국가계약법,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반대에 막혀 1~2년째 국회에서 낮잠 중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의 김영호 이사장은 “유럽연합 등은 사회책임 관련 기업공시 의무화와 정부조달시장 관련 사회책임 점수 반영을 이미 시행중”이라며 “대기업의 일회성 사회공헌은 큰 의미가 없는 만큼 하루속히 기업의 사회책임경영을 유도하고, 이를 잘 이행하는 기업이 우대받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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