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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구조조정 충격 대비할 ‘비상계획’과 ‘컨트롤타워’ 만들라”

등록 2016-05-01 21:10수정 2016-05-02 14:28

기업 구조조정을 구조조정 하자
④ 전문가 좌담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에서 구조조정 관련 전문가 좌담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상조 한성대 교수, 주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곽정수 선임기자.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에서 구조조정 관련 전문가 좌담회가 열려 참석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상조 한성대 교수, 주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곽정수 선임기자.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조선·해운 등을 중심으로 부실기업 구조조정이 한국 경제의 현안이 된 가운데 전문가들은 정부가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이 미칠 가능성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제대로 갖고 있지 않고, 구조조정 전반을 주도할 ‘컨트롤타워’가 없는 것을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또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필요한 정부와 채권단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노사의 고통 분담과, 경영 실패 과정에서 전횡을 일삼은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철저한 민형사상 책임 추궁이 이뤄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조선산업의 경우 최대 수만명에 이르는 대규모 실직 사태로 큰 충격이 우려된다며, 정부의 안이한 고용 대책을 질타했다.

<한겨레>는 1일 거시경제·금융 분야의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 노동 분야의 배규식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산업 분야의 주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과 함께 ‘부실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진단과 해법’에 관해 전문가 좌담회(사회 곽정수 선임기자)를 열었다.

곽정수 4월26일 정부가 ‘구조조정 협의체’를 열어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는데, 정작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어떤 피해가 예상되는지 등 세부 내용은 거의 없다. 부실기업 구조조정도 부실하게 진행되는 것 같아 걱정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구조조정 틀 결정할 기구 두고
여·야·정 협의체와 논의해야
경영진 불법·전횡엔 철저 수사를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김상조 구조조정은 취약한 재무구조 개선, 산업 경쟁력 제고, 인원 구조조정을 포괄하는데, 정부가 과연 컨틴전시 플랜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부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비상상황에 대해 충분히 예견하면서 미리 준비 태세를 갖추고, 위기가 현실화되면 정책카드를 꺼낼 준비를 해야 하는데, 책임질 일은 안 하려는 자세만 보인다.

주현 언론에서도 막연하게 위기론을 제기한다. 과거에도 위기론은 끊이지 않았다. 지금 정부나 기업이 위기론을 제기하는 배경에는 다분히 국민을 겁주기 위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

부실기업 상황은 어떻게 진단하나?

기업들의 재무적 상황이나 수익성이 회복할 수 있는 단계는 이미 지난 것 같다. 개별 기업뿐 아니라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그룹들의 상당수가 부실(징후) 상황이다. 주요 기업들이 중국과의 직접적인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가 어렵다. 거시적 환경도 전형적인 L자형 침체 구조다. 일본이 20년간 겪었던 장기침체 틀에 빠져 있다는 느낌이다. 대우조선, 한진해운, 현대상선뿐만 아니라 추가적인 부실기업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은 시간문제다.

우리 경제는 이미 중성장 시대도 지나가버렸다. 앞으로는 정말 호황이 아니라면 4%대 성장은 구조적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다른 선진국 경제도 과거 성장률이 3~4% 이하로 내려오던 시대에는 걱정을 했을 것이지만 망하지는 않았다. 정부도 대우조선을 제외한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은 각자가 알아서 구조조정을 하라는 것 아닌가.

업종별 대표 기업 두세 개 정도는 자기 힘으로 몇 년 버티면서 사업 구조조정을 하면 생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계 서열 10위 밑의 그룹들조차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부가가치와 고용을 만들어내는 중견·중소기업들은 이런 상황에서 5년을 버틸 힘이 있겠는가. 산업 기반이 무너지면서 고용 기반까지 상당한 충격을 받는 상황이 우려스럽다.

조선과 해운만 놓고 보면 어떤가?

해운업은 경쟁력이 꼭 있다고 보기 어렵다. 해운업 경쟁력은 얼마나 싸게 배를 가져 오느냐가 관건인데, 우리가 비싸게 용선을 했다. 쉽게 말해서 경영을 잘못한 것이다. 반면 조선업은 경쟁력이 있다. 초대형 컨테이너나 고품질 분야에서 중국에 비해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배규식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선업 최소 5만명 실직 가능성
‘쌍용차 비극’ 되풀이 안하려면
정부가 추가 실업대책 더 내놔야

배규식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배규식 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배규식 구조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단순히 경기 순환적 요인인 경우에는 설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해양플랜트처럼 시장 자체가 없어지면 설비 감축을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런 판단을 어떻게 하느냐다.

그런 판단이 어렵다면, 결국 누가 어떤 기준으로 정책 결정을 할 것이냐가 중요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서적인 답은 시장에 맡기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에 그런 시장 논리나 메커니즘이 작동하느냐이다. 조선·해운이나 재벌기업의 경우 자본시장만으로는 처리 못 한다. 시중은행들은 이미 다 빠져나갔고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만 물려있다. 문제는 이런 대기업과 그룹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 합리적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주현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부실처리 됐어야 할 기업들을
산업은행이 억지로 떠맡은 셈
이런식의 구조조정 더는 안돼

주현 산업연구원 선임연
주현 산업연구원 선임연
우리 경제 규모로 보면 꽤 큰 기업의 도산도 흡수가 가능하다. 과거에는 대기업이 망하면 국가경제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고 국민들이 걱정했다. 하지만 에스티엑스, 동양 사례처럼 이미 대기업을 그냥 정리한 경험이 여러 차례 있다. 국책은행에 계속 부실을 누적하는 방법은 한계가 있다.

김 교수는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로 여야정 협의체를 제안하는데?

청와대 서별관회의(경제부총리, 청와대 경제수석,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이 정부의 거시금융정책을 결정하는 모임)에 맡기기보다는 구조조정의 전체 틀을 정하는 의사결정기구가 필요하다. 지난주 구조조정 협의체가 열리기 전에 서별관회의가 열려 실제 결정은 다 했다. 그런데 서별관회의가 왜 이런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다. 정부와 채권단이 구조조정 업무를 맡더라도, 그 이전에 여·야·정 협의체와 논의하고, 정책 판단 기준과 근거, 보완 필요성, 재원 마련 방법 등을 미리 거를 필요가 있다.

국민 세금이 들어가기 때문에 누가 어떤 기준으로 판단했는지 투명하게 해야 한다. 구조조정을 하면서 국민들이 볼 수 없는 곳에서 결정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의 당사자인 노·사를 포함해서 사회적 기구를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여·야·정 협의체에 노·사를 포함시키면 논의가 복잡하게 꼬이면서 시간을 끌게 된다. 노조와 지역의 문제는 밖에서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여·야·정 협의체에 전달하면 된다.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 밉다고 무조건 반대하거나 노조 주장을 그대로 대변할 게 아니라 스스로 실현 가능한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협의체를 만들어 투명하게 진행하고 사회적 대화를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협의체에서 급하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자금 지원 여부밖에 없다. 하지만 정부가 살리겠다는 방침을 내놓는 순간 현재 진행 중인 용선료 인하 협상은 실패한다. 정부가 살린다는데 용선료를 깎아줄 이유가 없다. 구조조정이 급박하다고 해서 바쁘게 쫓아가는 식이 되면 잘못된 구조조정 시스템이 그대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여·야·정 협의체에 대우조선 추가 지원이나 산업은행 자본 확충 안건이 올라오면, 지난해 4조2000억원 지원했는데 산은은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냥 돈 주는 것과 책임을 묻는 것은 다르다. 또 구조조정을 위해 재정을 넣거나, 국회 동의 하에 공적자금을 쓰거나, 한은이 발권력을 동원하든 모두 정치적 의사결정이고, 어차피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할 때 국회 특위가 구성되고, 그 밑에 원탁회의가 있었다. 각계 이해관계자 20명이 참석한 국민대타협기구였다. 구조조정 관련해서도 국회에 여야 특위를 만들고, 그 밑에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논의기구를 만들자. 논의기구에서 정부와 채권단을 불러 온갖 질문이 나오지 않겠나. 100% 동의는 안 되겠지만, 그래도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구조조정에는 얼마나 자금이 필요할까?

일부 해운사나 조선사가 도산한다면 10조~20조원은 필요하지 않겠나?

구조조정에 따른 고용 대책이 관건인데, 실업자 규모를 예상할 수 있을까?

9대 조선소 해양플랜트 사업부에서 2014년 3만5576명이 사내하청 근로자다. 조선사업 전체 사내하청은 13만명에 달한다. 해양플랜트 사내하청의 상당수와 나머지 사내하청의 20%가 구조조정된다면 최소 5만명에 이른다. 정규직 중 일부도 구조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해고자가 수천명 수준이었던 쌍용차 사태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됐다. 수만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으면 충격이 어느 정도일끼?

해고 노동자들은 다른 곳으로 옮길 데가 없다.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예전 방식대로 하면 쌍용차 비극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내놓은 고용 대책만으로는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많다. 배 박사는 노동자 개인에게 정리해고의 위험을 전가할 게 아니라 사회가 함께 떠안는 ‘구조조정 위험의 사회화’를 주장하는데?

정부안을 보면 고용보험을 이용한 실업 대책과 특별고용업종 지정 정도다. 추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현대중공업처럼 근로시간을 줄이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노동시간을 25~30시간씩 줄일 수 있다. 유럽은 다 했다. 노사가 공동 노력을 해서 사내하청에게도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 현재의 노사 담합 구조를 보면 사내하청만 희생당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인적 구조조정 대상자를 바로 안 내보내고 기업 안에 별도 ‘트랜스퍼 컴퍼니’를 만들어 고용을 유지한다. 이곳에서 훈련도 시키고 직업상담도 하고, 자기 일을 하게 한다. 비용은 정부와 기업이 분담한다. 또 유럽은 세계화에 따른 고용 불안에 대처하기 위해 ‘글로벌 조정 기금’을 만들어 실직자를 지원한다.

노·사의 고통 분담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은데.

노조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부실기업에서 고용을 계속 유지하는 게 어렵다는 점이다. 임금 삭감과 노동시간 단축이 정부나 채권단 지원의 전제조건이 되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간에도 고통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 대우조선을 제외하면 정규직에 대한 인위적 구조조정은 적을 것으로 생각한다. 제도상으로도 비정규직보다 정규직이 더 혜택을 본다. 특별고용업종으로 지정해서 실업급여 연장과 고용 유지 지원을 할 때 지원 대상을 하도급 업체로 국한하는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쌍용차의 경우도 남은 사람과 떠난 사람 사이에 큰 차이가 났다. 남은 근로자들도 공평하게 고통 분담이 돼야 한다.

경영자의 고통 분담도 빼놓을 수 없다. 또 과거 저축은행 부실 때처럼 경영 실패 과정에서 벌어진 불법행위에 대한 처리도 필요할 텐데?

더 이상 대주주가 사재 출연으로 면죄부를 받아서는 안 된다. 검찰이 경영 과정에서의 불법·위법 사항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은 독단과 전횡을 일삼아 배임 혐의가 짙고, 한진해운 최은영 전 회장도 마찬가지다. 경영진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에 대해 채권단이 손해배상 소송도 내야 한다.

구조조정을 지연시킨 금융감독기관과 채권단에 대한 책임 문제는?

산은이 구조조정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지금 같은 모습으로는 안 된다. 무엇보다 국책은행 최고경영자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구조조정 전문가로 재선임해야 한다.

산은 주도의 구조조정 시스템은 한계에 도달했다. 부실이 심한 한진해운, 대우조선해양, 에스티엑스, 동국제강, 한진중공업, 현대상선 등의 주채권은행이 모두 산은이다. 시중은행에서 시장에 넘겨 그냥 부실 처리가 됐어야 할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이 모두 산은의 자회사가 된 셈이다. 이번에도 그런 식의 구조조정을 다시 하려고 시도할 위험성이 크다. <끝>

곽정수 선임기자, 김성환 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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