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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10조 추경’은 기재부 내 ‘힘겨루기’ 결과예요

등록 2016-07-01 20:32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경제 사령탑’ 기획재정부에 출입하는 기자들한테는 ‘이맘땐 맘대로 쉬지 못한다’ 하는 시즌이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해마다 7월말쯤 세법개정안이 발표됩니다. 9월초엔 예산안이 나옵니다. 12월말에는 새해 경제정책방향이, 6월말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이 나옵니다. 하나같이 큰 기삿거리들입니다. 신문 지면을 적어도 2개 면 이상 펼쳐야 하고, 방대한 내용을 숙지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립니다.

며칠 전 6월28일에도 큰일을 치렀습니다. 정부는 경제관계장관회의를 개최하고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확정 발표했습니다. 보도 내용을 보셨겠지만, ‘노후 디젤차량 교체시 최대 300만원 지원’, ‘에너지소비효율 1등급 전자제품 구매시 보조금 지급’, ‘아파트 집단대출 제한’ 등 각종 정책이 망라됐습니다. 하나같이 중요하고 실생활에도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입니다. 그런데 이번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이 발표되기를 기다리면서, 기자들 관심은 사실 한곳에 집중됐습니다. 바로 ‘추가경정예산’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들어 경기침체가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으로 영남권을 중심으로 실업률이 급등했습니다. 또 정부는 경기대응을 위해 올해 예산을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풀었습니다. 자연히 하반기엔 ‘재정절벽’이 나타날 것이란 우려가 많았습니다. 정부 하는 일에 반대하게 마련인 야당이 먼저 구조조정 대응을 위한 추경을 편성하라고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온 우주의 기운이 추경 편성에 쏠리는 모양새였습니다.

그런데 웬걸 기재부에선 추경 편성 관련 질문을 할 때마다 “아직 추경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조심스런 답만 돌아왔습니다. 구체적인 정책에 대해 ‘엠바고’를 약속하고, 사전에 기자단에 내용을 설명하는 ‘사전 브리핑’에서도, 기재부는 “추경 여부는 미정”이라고만 밝혔습니다. 이례적인 일이죠. 막판까지 부처 안팎에서 팽팽한 ‘힘겨루기’가 진행됐다는 뜻입니다. 예산과 세금은 매우 민감한 정치의 영역인 만큼 논쟁의 층위는 다양했겠습니다만, 그 논쟁을 하나의 전선으로 압축하자면 추경 편성을 요구하는 기재부 경제정책 라인과 이를 방어하는 예산실의 논리 대결로 귀결됩니다.

기재부는 크게 4개 조직으로 나뉩니다. 경제·산업 발전 전략을 짜는 경제정책 라인, 나라 살림을 총괄하는 예산실, 세금 제도를 만들고 운용하는 세제실, 국제 기구와 외환 시장 등을 담당하는 국제금융 라인 등입니다. 그중에서도 경제정책 라인과 예산실의 존재감이 남다른 편입니다. 두 조직의 성향은 많이 다릅니다. 아무래도 경제정책 라인이 공격적인 정책 수단을 고민하는 경향이 있다면, 나라 곳간을 지키는 예산실은 꼼꼼하고 안정적인 예산운용을 선호합니다. ‘확장적 재정운용’과 ‘재정건전성’이라는 키워드로 수렴될 수 있겠습니다.

팽팽했던 힘겨루기는 어정쩡한 절충안으로 봉합된 듯합니다. 10조원 안팎이라는 추경 규모가 그 방증입니다. 올해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히고 있는데, 딱 그만치를 추경으로 돌렸습니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 직전 ‘브렉시트’라는 덜컥수 탓에 추경 편성은 기정사실화되었지만, 최소한 나랏빚은 늘리지 않은 셈이죠. ‘추경은 하되 국가채무는 늘리지 않는다’, 다시 봐도 절묘한 조합입니다. 물론 추가 세수는 국채를 갚는 데 쓰고, 내년도 예산안에 잉여금으로 넘겨야 한다는 국가재정법의 원칙은 훼손됐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공은 다시 예산실로 넘어갔습니다. 기재부 예산실은 얼마 전 ‘추경 편성 출정식’을 열고 추경안 편성 작업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10조원이나 되는 예산을 헬리콥터에서 뿌릴 순 없는 노릇, 나랏돈엔 일일이 꼬리표가 붙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업에 어떻게 예산을 투입해야 효율적일지 고민하는 것은 또다시 예산실의 몫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2017년도 본예산 편성이 진행되는 ‘예산 시즌’입니다. 예산을 확보해야 하는 각 부처와 지자체 공무원 등이 문턱이 닳도록 찾아드는 바쁜 시즌이죠. 출정식 분위기가 썩 좋지는 않았다던데,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합니다.

노현웅 경제에디터석 정책금융팀 기자
노현웅 경제에디터석 정책금융팀 기자
경제기획원 예산국장 출신인 강경식 전 부총리는 <한국의 재정 60년>이라는 책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경제기획원 예산국에서 일하면 나랏돈으로 인심 쓸 수 있다고 생각들 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다. 그래서 ‘예산맨은 노맨’이 된다. 당신 돈도 아닌데 왜 그렇게 심하게 나오느냐’는 항의를 받곤 했다. ‘내 돈이 아니라 나랏돈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고 되받곤 했다”. 이런 꼬장꼬장함 어떤가요? 추경안 편성 탓에 퇴근시간이 더 늦어질 ‘노맨’들, 청사 복도에서 마주치면 시원한 냉커피라도 한잔 대접할까 합니다. 나랏돈은 결국 국민들 세금이니까요. 지금까지 세종시에서 노현웅이었습니다.

노현웅 경제에디터석 정책금융팀 기자 @hani.co.kr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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