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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서별관회의, 세금 퍼주고 책임 안지는 관치경제 폐단 결정판

등록 2016-07-04 17:25수정 2016-07-04 23:18

대우조선 수주 10배 부풀린 자료로
정상 시나리오 채택 4조2천억원 지원
누가 주도했고 무슨 말 오갔는지
회의기록 안남겨 결정과정 ‘캄캄’

지난해 10월22일 열린 청와대 서별관회의(비공개 거시경제협의회)에 제출된 문건이 4일 공개되면서 이 회의체의 운영 방식에 대한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서별관회의에서 사실상 정책 결정이 내려지는데도 그 과정이 베일 속에 감춰져 의혹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정책 실패 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데다, 집권세력의 정치 논리가 개입될 여지도 커져 제대로 된 구조조정안이 마련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해 서별관회의에서는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방안의 하나로 4조2천억원 지원을 사실상 결정했지만 8개월 만인 지난달 8일 대우조선이 추가 자구안을 마련하는 등 당시 방안이 실패로 판명나고 있어, 이 회의가 밀실에서 이뤄진 실패한 관치경제의 전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불투명성 <한겨레>가 확보한 서별관회의 문건을 보면, 표지에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관계 기관이 적혀 있다. 몇몇 기관의 임명직 공무원이 참여해 4조원이 넘는 금액의 집행을 결정한 것이다. 이날 회의에는 당시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과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임종룡 금융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그러나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은 탓에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이뤄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최경환 장관이 정상화 방안을 확정하기에 앞서 대우조선 노조의 동의서가 선결 조건이라며 애초 일정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위는 4일 내놓은 해명자료에서 “대우조선 정상화 방안은 방안 수립 당시 회사 현황과 부실 요인을 반영한 전문 회계법인의 철저한 실사 결과를 바탕으로 마련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건을 보면 금융위는 삼정회계법인이 제시한 ‘최선·정상·최악 시나리오’ 가운데 2016년 최대 부족자금이 4조1636억원으로 예상한 ‘정상’ 케이스를 택했다. 이 시나리오는 부실에 빠진 대우조선이 2016년 110억~120억달러 수주할 것이라고 제시한 자료를 근거로 한다. 하지만 올 상반기 실제 수주는 7억달러에 그쳐, 금융위가 참고한 ‘회계법인의 철저한 실사 결과’가 현실과는 큰 괴리가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서별관회의가 ‘정상’ 시나리오를 택한 이유는 파악하기 어렵다.

■ 무책임성 정책 결정의 불투명성은 정책 집행에 따른 책임과 맞닿아 있다. 밀실에서 논의되는 서별관회의에서 누가 어떤 의견을 제시했는지 알 수 없어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책임 소재를 따지기 어렵다. 금융위 관계자는 “현재 (공식) 구조조정 컨트롤타워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 사실상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 구조조정이 그 대표 사례가 될 수 있다. 서별관회의가 대우조선 정상화 지원 방안을 사실상 결정했다. 문건을 보면, 4조2천억원 지원은 물론 자본금 확충을 위해 산은이 지원하고, 50억달러 규모의 신규 선수금환급보증(RG)은 산은·수은과 무역보험공사가 각 3분의 1씩 분담하고 나머지는 시중은행이 부담하는 등의 내용이 결정됐다. 이같은 내용은 일주일 뒤인 10월29일 산업은행이 발표한 ‘산은, 대우조선해양 경영정상화 방안 수립’에서 공식화됐다. 결정은 서별관회의에서 이뤄졌지만, 발표는 산업은행이 해 ‘권한과 책임의 괴리’가 발생한 것이다. 이 때문에 막대한 자금 지원에도 대우조선이 올해 들어 더욱 어려워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책임을 떠안을 정부 책임자는 없는 셈이다.

■ 권력 입김 구조조정은 노동자를 줄이는 방안을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내놓은 자구안에도 약 3천명의 인력 감축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는 대우조선의 자구안에는 많은 숫자의 인력 감축은 포함되지 않았다. 문건에는 2019년까지 1693명을 줄이기로 했고 그 절반 이상은 외주업체 직원(1090명)이었다. 4월 총선이 지난 뒤인 지난달 추가로 제시한 자구안에는 직영 인력을 20% 이상 감축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총선을 앞두고 ‘정무적 판단’이 개입됐다는 의혹도 나온다. 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대우조선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은 많았다. 하지만 인력 감축안이 지난 6월에야 본격화된 것은 선거를 앞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이 개입되면서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쳐 오히려 부실을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별관회의가 정책을 결정하면서도 그 과정이 불투명해 ‘양지’로 끄집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은 거시건전성 감독기구를 만들었다. 우리도 기획재정부와 금융위, 금감원 등이 참여한 공식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그 절차와 집행 과정을 법으로 정해 책임과 권한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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