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년 반 만에 다시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신규 자금 지원에 나서기로 했다. 모든 채권자의 손실분담 합의를 전제로 2조9천억원의 지원 한도를 제시했다. 자율적 채무 재조정이 실패할 경우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의 일종인 사전회생계획제도(P-Plan·피플랜)를 법원에 신청하는 방안도 마련해뒀다.
정부가 청와대 서별관회의에서 4조2천억원 지원을 결정한 뒤 “추가 지원은 없다”고 했으나 말 바꾸기를 한 셈이다. ‘대마불사’에 발목 잡힌 채 구조조정에 혼선을 거듭한 데 대해 책임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의 대우조선 구조조정 추진 방안을 확정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자료를 내어 “채무조정 합의와 자구 노력 추진 등을 전제로 케이디비(KDB)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2조9천억원을 지원해 대우조선의 경영정상화를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또 배 수주에 필요한 선수금환급보증(RG) 신규 수요는 시중은행과 산은·수은·무역보험공사 등이 나누어 부담할 계획이다.
이는 2015년 10월 산은과 수은을 중심으로 대우조선에 4조2천억원 한도 안에서 지원한 이후 불과 1년5개월 만에 내놓는 대규모 추가 지원 결정이다. 정부는 수주 부진 등으로 대우조선이 2분기(4~6월) 중에 자금이 바닥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당장 4월에 갚아야 할 회사채가 4400억원어치에 이른다.
대우조선에 부족한 자금은 2018년까지 최대 5조1천억원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이날 밝힌 추가 지원액 2조9천억원은 채권단의 채무 재조정 성사 등을 가정했을 때 줄어드는 금융비용을 빼고서 대우조선에 필요한 자금이다. 산은과 수은은 기존 대출을 출자로 전환할 뿐 아니라 신규 지원금을 절반씩 분담하기로 했다. 이에 수은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1.1%포인트가량 낮아져, 세금으로 자본확충을 해야 할 판이다.
정부는 이날 대우조선이 부도날 경우 국민 경제에 최대 59조원에 이르는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하며 추가 지원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이런 손실규모에 대해 “위험요인을 최대한 다 노출시키는 가정에서 나온 거다”라고 설명했다. 건조 중 선박에 투입된 원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 실업, 협력업체 매출 타격 등을 최악으로 가정했을 때 수치란 얘기다. 이는 이른바 ‘대마불사’ 논리를 작동시키는 근거가 된 셈이다.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채무 재조정 방안을 보면 국책은행과 시중은행, 사채권자 순으로 손실부담이 크다. 산은과 수은은 무담보채권 1조6천억원을 100% 출자로 전환하게 된다. 시중은행들도 7천억원의 무담보채권을 80%는 출자로 전환하고 나머지는 만기를 연장해줘야 한다. 사채권자들의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은 각각 절반씩 출자로 전환한 뒤 나머지는 만기연장하는 방안이 제시됐다. 채권자들의 출자전환액만 모두 2조9천억원에 이른다.
채권 손실분담 세부 방안이 정해진 만큼 정부는 지난해 6월 마련했던 대우조선의 자구계획 이행도 속도와 강도를 한층 높이기로 했다. 신속한 자산 매각, 총인건비의 25% 추가 삭감, 직영인력 1천명 추가 축소 등 5조3천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빨리 이행하도록 압박하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1조8천억원 규모만 이행된 상태다.
정부가 이번 방안을 내놓고 채무조정 합의가 무산될 경우 법원을 통한 피플랜을 추진하겠다고 한 것은 일종의 ‘배수진’을 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의 법정관리인 피플랜으로 갈 경우 채권자를 대상으로 강제 채무조정이 가능하지만 발주 취소 등 위험이 커지면서 손실 부담이 늘어날 수 있다.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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