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여파에도 영국과 유로존·미국에 이어 일본도 통화정책에서 ‘관망 카드’를 빼들었다. 브렉시트 직후 주요국들은 통화완화 공조 태세를 취했으나, 자국에 유리한 환율 여건을 유지하려는 통화전쟁의 전운도 함께 피어올랐다. 그러나 브렉시트의 단기적 충격이 빠르게 진정되자, 주요국들은 통화정책의 여력을 아끼는 쪽으로 돌아섰다. 하반기에 브렉시트 협상·미국 대선 등 금융시장을 출렁이게 할 정치 이벤트들이 남은 까닭이다. 우리도 시장에선 추가 금리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통화당국이 좀더 신중해질 가능성이 커졌다.
29일 일본은행(BOJ)은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기준금리를 현행 마이너스(-) 0.1% 그대로 동결한다고 밝혔다. 2014년 10월에 ‘2차 양적완화’ 정책으로 결정된 연간 80조엔(약 870조원)의 자산 매입 프로그램도 규모를 현행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다만 국채·상장지수펀드(ETF) 등으로 구성된 자산 매입 포트폴리오에서 위험자산인 이티에프에 대한 연간 매입 규모를 3조3천억엔(약 36조원)에서 6조엔(약 65조원)으로 늘려서 통화완화 효과를 간접적으로 높이기로 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은 총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마이너스 금리가 실물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는 시장의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것이다. 앞서 브렉시트의 진앙지인 영국의 잉글랜드은행(BOE)뿐 아니라 유럽중앙은행(ECB),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모두 통화정책에서 관망세를 취하긴 했다. 하지만 일본은 아베노믹스의 기반을 흔드는 엔화 초강세로 브렉시트 피해를 가장 크게 입은 처지였다. 이에 아베 총리가 오는 2일에 28조엔(약 33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겠다고까지 했지만, 일본은행은 보조를 맞추는 시늉에 그친 셈이다.
결국 엔화 강세의 흐름을 전면적으로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브렉시트 직후의 극단적 안전자산 쏠림 현상은 완화됐기에 달러당 100엔선이 무너지는 급변동은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이런 행보는 브렉시트의 단기 충격이 빠르게 진정된데다 지금껏 시행한 대규모 통화완화가 실물경기 개선에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많아지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일구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정부가 직접 공공사업 등을 벌여 사람들 호주머니에 돈을 넣어주는 재정정책이 통화정책보다 효과적이라는 국제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됐다”고 말했다.
주요국 중앙은행이 통화완화 여부를 두고 당분간 관망할 뜻을 내보이면서 한국은행이 하반기에 추가 금리인하를 할 것이란 기대에도 다소 변화가 예상된다. 현재 채권시장에선 금리인하 기대가 미리 반영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현행 기준금리(1.25%)를 밑돌고 있다. 김 센터장은 “경쟁적 통화완화 정책이 환율전쟁의 움직임으로 읽힐 가능성이 있어 각국 중앙은행이 이에 유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도 글로벌 환경의 변화에 따라 통화정책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효진 기자, 도쿄/길윤형 기자
ju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