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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초라한 ‘롯데 수사 성적표’가 말하는 것

등록 2016-09-30 19:51수정 2016-09-30 20:22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곽정수
경제에디터석 산업팀 선임기자 jskwak@hani.co.kr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끝났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된 뒤 재계를 중심으로 나오는 반응이다. 검찰은 롯데 총수 일가가 일도 하지 않았는데 500억원의 보수를 챙기고 롯데시네마 매점사업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로 770억원의 부당이득을 올렸을 뿐 아니라, 부실 계열사 유상증자에 다른 계열사들을 끌어들여 400억원대 손실을 입히는 데 신 회장이 주된 역할을 했다며 신 회장을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신 회장에게 적용된 1750억원의 횡령·배임혐의는 역대 재벌 수사에서 최대 규모라는 ‘언론플레이’까지 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검찰 주장은 다툼의 소지가 많다”는 의견이 많았고, 결국 법원 판단도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재벌 수사에서 총수의 구속영장이 기각되거나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지면 ‘재벌 봐주기’ 논란이 거셌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9월28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청사로 들어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9월28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청사로 들어오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검찰은 무려 112일 동안 300명이 넘는 사상 최대의 수사 인력을 동원해 재계 5위 롯데의 수십개 계열사를 이 잡듯이 뒤졌다. 롯데 한 직원은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수백명의 임직원을 소환해 책상, 캐비닛, 컴퓨터, 휴대전화까지 샅샅이 살피고, 소액의 지출 내역까지 추궁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결과가 이렇다 보니 되레 검찰의 무능만 드러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검찰이 과연 신 회장을 형사처벌할 수 있겠느냐’를 두고선 지난 6월 수사 초기부터도 회의론이 많았다. 통상의 검찰 수사는 미리 분명한 혐의를 잡고 정밀타격식 압수수색을 통해 증거를 확보하는 방식이다. 2003년 에스케이(SK) 비자금 수사 때 사전제보를 통해 그룹 연수원을 급습해 숨겨진 증거들을 찾아낸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롯데 수사는 ‘털어서 먼지 안 나오는 기업 있느냐’는 이른바 대청소 방식으로 실시됐다. 지난해 여름 롯데의 총수 형제 간 경영권 분쟁 이후 장기간 내사를 통해 많은 자료를 확보했고, 대규모 인력 투입은 속전속결을 위한 것이라는 검찰의 호언이 무색할 지경이다. 검찰이 흘려주는 말만 믿고 수천억 비자금 조성 등 숱한 의혹을 대서특필해온 언론들까지 얼굴을 들기 어렵게 됐다.

검찰은 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 “검찰의 이미지 실추를 부른 홍만표 전 검사장과 진경준 검사장의 법조비리 게이트로부터 국민의 눈을 돌리기 위한 것”이라거나 “집권 후반기 대통령의 레임덕 방지를 위한 군기잡기용 재벌 사정이나, 여당의 총선 패배에 대한 청와대와 친박 책임론에 물타기를 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이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는 것이든, 권력의 충견 노릇을 한 것이든, 만일 사실이라면 옳지 못한 처사이기는 마찬가지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법치주의 구현’이라는 본연의 역할과 배치되게 칼을 휘두른다면 조폭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질문에 “유구무언”이라고 고개를 떨군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는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롯데에 엄청난 피해를 안겼다. 기업상장과 인수합병 등을 통한 지배구조와 사업구조 개편 계획들이 마비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유무형의 사회적 폐해도 크다. 많은 대기업들은 롯데 사례를 ‘권력에 잘못 보이면 언제든 크게 당할 수 있다’는 본보기로 여긴다. 30대 그룹의 한 임원은 “50여개 대기업이 청와대의 말 한마디에 미르와 케이스포츠 재단 설립에 800억원에 가까운 거액을 내놓은 것도 검찰의 이런 ‘칼춤’과 무관치 않다”고 꼬집었다.

앞으로의 상황을 섣불리 예단할 순 없으나, ‘견제받지 않는 권력’ 검찰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도 거세다. 검찰이 확실한 증거도 없이 ‘필요에 따라’ 수사에 나서지 못하도록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효성 없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특별검사제 도입에 그칠 게 아니라 선진국처럼 검찰의 수사권을 나누고 기소독점권을 깨는 실질적인 조처가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기업의 성장을 위해서도,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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