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경제에디터석 정책금융팀 기자 ljh9242@hani.co.kr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공정성 논란이 다시 불붙고 있네요. 하나둘 베일을 벗는 사실들을 지켜보면서 지난해 삼성물산 합병 과정을 취재한 저로서는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의 보도를 했다고 반성 중입니다. 이러려고 기자질을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돕니다. 안녕하세요?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을 담당하고 있는 경제부 이정훈입니다. 이 지면 네번째 등판에도 다시 삼성 문제를 들고나왔습니다. 최근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이 청와대와 복지부로부터 압박성 전화를 받았다는 증언을 보도했습니다. 돌이켜보면 합병을 위해 온 우주, 아니 우리 주변의 힘 있는 세력 혹은 ‘권력의 부역자’들이 많이 도왔습니다. 한화투자증권을 뺀 국내 모든 기관투자자들이 합병에 찬성 의견을 표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삼성의 전·현직 임원이 압력 혹은 청탁성 전화를 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또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한국증권금융은 규정을 바꿔 처음으로 담보 주식의 의결권을 행사했습니다. 이런 사정에도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금융위나 금감원은 눈을 감았습니다. 압력이 있었다면 시장이 왜곡되고 투자자들은 손해를 볼 수 있는데도 말이죠. 압권은 단연 국민연금입니다. 옛 삼성물산 대주주(11.21%)인 국민연금은 불공정 논란이 인 1(제일모직) : 0.35(옛 삼성물산) 합병비율에 찬성했습니다. 찬반 표시가 어려우면 국민연금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맡겨온 관행을 깨고 국민연금 투자위원회가 직접 판단했습니다. 의견을 물어본 의결권 자문기구인 아이에스에스(ISS)나 기업지배구조원 등이 반대했는데도 말이죠. 과거 의결권 행사 찬반 여부를 밝히지 않던 관행도 깨고 주총 1주일 전에 찬성 입장을 밝히기까지 했습니다. 여기에다 의결권행사 전문위원에게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장관의 외압이 있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말았습니다. 전화을 건 주인공의 한 명인 문형표 복지부 장관(당시)은 보도가 나간 뒤 ‘술 마시고 운전했지만 음주운전은 안 했다’는 누군가의 변명처럼 ‘전화는 했지만 찬성을 종용하지 않았다’는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전날 취재 과정에서 물어봤을 땐 ‘기억이 없다’고 했는데 금세 기억이 돌아온 모양입니다. 전문위원이 압력을 받은 마당에,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의 통제를 받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더 큰 압력을 받았다고 짐작하는 것은 합리적 의심입니다. 납득하기 힘든 결정 과정도 그 근거입니다. 그 결정으로 삼성물산은 제일모직과 한 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시민단체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는 국민연금 손실액이 서울고등법원 결정대로 하면 700억원,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내부 판단에 따르면 1200억원 정도라고 추정합니다. 대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수 일가는 3700억~7400억원 정도의 이득을 챙겼다고 봅니다. 삼성그룹이 최순실씨에게 ‘뜯겼다’고 주장하는 293억원의 수십배에 달합니다. 경영권 승계까지 고려하면 그 가치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습니다. 삼성물산 합병은 이 부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는 데 아주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옛 에버랜드가 제일모직과 합병으로, 다시 삼성물산과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 등 총수 일가 지분을 높게 유지해야 그 회사(합병 삼성물산)를 통해 다른 삼성그룹 계열사들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물산 합병이 국민연금 등의 도움을 받아 통과됨으로써 2177만명(8월말 기준)이 가입한 국민연금은 많게는 수천억원의 피해를 본 반면, 삼성 총수 일가는 이득을 얻은 셈입니다. 이 때문에 한창 진행 중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사에서 국정농단 외에도 국민연금을 둘러싼 의혹도 분명히 밝혀져야 합니다. 검찰이든 특별검사든 국민 절반이 꼬박꼬박 내 은퇴 뒤 생활비로 쓰여야 할 돈을 정부가 재벌을 위해 구멍을 냈는지 밝혀져야 합니다. 경제개혁연대는 논평을 내어 검찰과 향후 구성될 최순실 특검은 그 대상이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관용을 베풀지 말고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국민연금 역시 떳떳하다면 의혹 해소를 위해 투자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해 의혹 해소에 협조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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