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새벽 내년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두 달 남짓 국회에서 쪽잠을 자던 예산 관료나 국회 심의에 참여한 국회의원 보좌진은 지난 주말 오랜만에 발을 뻗고 잠을 자거나 산에 오르며 지친 심신을 달랬다고 한다.
이런 고생과 별개로 이번 예산 심의도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확정 예산(총지출 기준)은 애초 정부안보다 2천억원이 줄어든 400조5천억원이다. 정부가 정한 예산 사업 중 4조2천억원이 감액되고 다른 사업에서 4조원이 증액됐다. 국회 심의가 정부안의 미세 조정에 그친 셈이다. 거꾸로 뒤집으면 국회는 정부에 100점 만점에 99점을 준 것이다.
1%의 변화를 주었으면서도 국회에서는 공치사가 한창이다. “(여야가) 대승적인 합의 정신을 발휘”(주광덕 새누리당 예산결산위원회 간사), “서민생활 안정 등에 중점을 두고 예산을 조정”(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 “법정기한 내 국민께 긍정적인 소식을 드려 다행”(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 등등.
난제인 누리과정(만 3~5살 무상보육 사업) 갈등을 뚫고 법정 예산 처리 시한을 거의 지킨 대목이나 연 5억원 이상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올려 ‘증세 없는 복지’란 허구에 가까운 정부의 정책 기조를 일부 허물어뜨린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매섭게 몰아치는 경기 한파에 대응하고 저소득층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해 국회가 예산 심의 과정에서 무엇을 했는지엔 의문부호가 찍힌다.
기획재정부가 정리한 예산 증액 현황을 보면, 청년·장애인·저소득층과 관련해 정부안보다 증액된 사업 예산은 모두 3389억원이다. 국회에서 증액을 요구한 총 사업예산(4조원)의 10%에도 못 미친다. 애초 정부안에 담겨 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삭감된 실업급여 확충 예산(4천억원) 규모보다도 적다.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여야가 노력했다는 주장은 허위에 가까운 셈이다.
그 대신 힘깨나 쓴다는 국회의원들은 지역구 보듬기용 예산을 쏠쏠하게 챙겨갔다. 순천대 리모델링 사업(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무선전력 사업연구(최경환 새누리당 의원)·대구남천 정비사업(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광주-목포 호남고속철 건설(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 등에서 관련 예산이 증액됐다. 정부가 낸 보도자료엔 이런 실세 의원 관련 사업 증액에 대해 “지역 경제 활성화 등 경제 활력 회복을 위한 증액”이라고 돼 있다.
하위 20%의 가계소득(2인 이상 가구, 실질소득 기준)은 올 들어 3분기 내리 감소하고 있다. 같은 기간 상위 20% 가구의 소득은 늘고 있다. 경기 부진에 저소득층이 가장 큰 충격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광화문광장을 메우는 주말 촛불 구호에서 “박근혜 즉각 퇴진”에다 “못살겠다 갈아보자”(1956년 정·부통령 선거에서 당시 민주당이 내건 구호)가 추가될 날이 머지않았다.
김경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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