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에서 흘려주는 (삼성에 불리한) 내용을 언론이 제대로 확인도 않고 연일 대서특필한다.”
삼성은 그동안 언론이 특검의 얘기만 크게 쓰고, 자신들의 주장은 제대로 부각해주지 않는다고 큰 불만이다. 특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뇌물죄를 적용하려는 것에 맞서 삼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강요에 의한 지원이라며 ‘피해자론’을 편다. 또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중요한 고비였던 2015년 7월 삼성물산-제일모직 간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한 것과, 삼성이 최순실씨 모녀를 지원한 것은 직접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특검이 이런 삼성의 주장을 뒤엎을 증거를 명시적으로 내놓은 것은 아직 아니기 때문에, 이런 삼성이 틀렸다고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하지만 삼성이 그동안 수차례의 거짓말과 말바꾸기로 신뢰를 잃은 데 따른 ‘부메랑’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삼성은 지난해 9월 말 <한겨레>가 처음 최순실씨 국정농단 의혹을 본격 제기한 이후 최소 네 차례 거짓말과 말바꾸기를 반복했다. 처음 삼성전자가 최씨의 딸 정유라씨에게 말을 사줬다는 보도가 나오자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기자들에게 해명했다. 이후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승마협회장)이 2015년 8월 직접 독일에 가서 최씨 소유의 비덱스포츠와 220억원 규모의 컨설팅 계약을 맺고 80억원을 지원한 사실이 드러나자, “승마협회 차원에서 이뤄진 지원”이라고 말을 바꿨다. 하지만 삼성이 최씨 지원을 직접 주도하고, 정작 협회는 이런 사실을 몰랐던 사실이 속속 드러나자, 이제는 “최씨의 측근인 승마협회 박아무개 전무의 협박이 있었고, 협회 내분과 부패 때문에 협회를 통한 정식 지원이 불가능했다”고 재차 말을 바꿨다. 하지만 이 또한 오래가지 못했다. 특검이 이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할 조짐이 분명해지자, 이제는 ”박 대통령이 (7월25일 이 부회장과의 독대에서) 호통을 치는데 어떻게 안 따를 수 있느냐”고 ‘대통령 직접 강요론’으로 재차 말을 바꿨다. 삼성 관계자는 이런 계속된 거짓말과 말바꾸기에 대해 “안에서도 (삼성전자 홍보 쪽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있다”며 뒤늦게 후회하는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기업 현실을 고려하면 이런 문제들에 대한 책임을 홍보부서에만 묻기는 쉽지 않다. 기업홍보 전문가들이 강조하는 위기대응의 1단계는 ‘진실 파악’이다. 사태의 진실을 알아야 올바른 홍보 대책 수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홍보파트가 이런 큰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게 어렵다. 삼성 미래전략실 홍보 관계자도 “우리도 잘 모른다”고 털어놨다. 회사가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 각종 리스크를 사전에 체크하는 것은 경영의 필수다. 하지만 홍보파트를 참여시켜 여론 동향 등 사회적 리스크를 체크하는 일은 매우 드물다. 홍보에 중요한 사실을 미리 알려주면 결국 언론에 흘러나나가니 제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대다수 최고경영진의 인식 수준이다.
또 기업 입장에서 처음부터 대통령의 강요에 못 이겨 최씨를 지원했다고 밝히는 게 쉬운 일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을 이해한다고 해서, 삼성의 거짓말과 말바꾸기를 정당화시켜 줄 수는 없다. 기자의 오보 책임이 ‘사실 확인’이 어렵다는 점 때문에 면책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수년간 대기업들은 앞다퉈 기자 출신을 홍보실 간부로 영입했다. 삼성은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의 홍보 책임을 맡는 고위 임원을 모두 기자 출신으로 임명할 정도로 가장 적극적이었다. 또 그들 중 하나는 평소 ‘기업 위기 상황에서도 거짓말하지 않는 홍보’를 자신의 신념처럼 강조해 왔다.
“사람을 잠시 속일 수 있고, 한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있을지 모르나,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의 이 말은 삼성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반복되는 임기응변식 거짓말과 말바꾸기는 결국 삼성의 신뢰 상실로 이어져 위기를 더욱 키울 수 있다. 삼성이 앞으로 사회적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쇄신을 한다면, 홍보부터 달라져야 한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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