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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찾기 쉽게, 알기 쉽게…누더기 세법 ‘60년만의 대변신’

등록 2017-02-28 15:57수정 2017-02-28 19:23

Weconomy | 정책통 블로그
지난 23일 소득세법과 법인세법 전면 개정안이 입법예고에 들어갔다. 정부 수립 직후인 1949년에 제정된 이후 60년 남짓 동안 ‘전면 개정’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소득세법은 가장 최근 전면 개정했던 시기가 1994년이다. 당시 금융실명제 도입에 따라 세법을 다시 쓸 수밖에 없었다. 법인세법 역시 전면 개정은 지난 1998년을 끝으로 20년 가까이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 이미지를 누르면 확대됩니다.

1년에 서너차례 개정 반복되며 못 알아먹는 괴물된 세법
한 조항이 800자…“법체계 뒤틀리고 표현도 아리송”
회계사·세무사 밥벌이에만 도움…납세자와 멀어져
정부, 소득·법인세법 60년만에 쉽게 고쳐…내년 1월 시행

이번 전면 개정은 내용은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 세제실은 “숙원 사업”이라며 공을 많이 들였다고 한다. 3년간 이 작업에만 예산이 4억원 남짓 들었다. 기재부 스스로 다 하지 못해 삼일회계법인·조세재정연구원·한국세무사회에 소속된 외부 전문가 20여명도 이 작업에 달라붙었다. 국립국어원도 힘을 보탰다. 기재부는 “괴물이 돼 버린 세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갈아엎었다”고 말한다.

읽지도 찾지도 말라는 괴물 세법

소득세법과 법인세법은 세법의 왕이다. 두 세제는 정부 세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다, 국민 삶에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이 세법의 또다른 얼굴은 ‘괴물’이다. 안택순 기재부 조세총괄정책관은 “변호사 등 세법 전문가는 물론이고 세법 개정의 실무를 맡는 세제실 사무관이나 징수 업무를 하는 국세청 직원도 세법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1년에도 서너차례 개정이 이뤄지는 상황이 수십년간 누적되면서 일반인들은 도저히 알아먹을 수 없을 정도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일단 체계가 매우 복잡하다. 소득세법만 보자. 소득세는 개인이 노동이나 사업 등으로 얻은 소득에 일정한 세율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과세한다. 그러나 소득세법에서 이런 흐름을 파악하기란 도통 어렵다. 관련 조항이 뒤죽박죽 섞여 있어서다. 근로소득자는 자신이 근로소득자인지 확인하려면 근로소득의 정의가 담긴 제20조를 봐야 한다. 그다음 회사에서 받은 월급 중 어떤 수당이 비과세 소득인지 알아보려면 법전을 다시 앞으로 넘겨 제12조 3호(비과세소득)를 찾아야 하고, 근로소득공제 등 각종 소득공제는 47조부터 54조까지 살펴야 한다. 소득공제 뒤 산출되는 과표소득에 적용되는 세율은 55조에, 세액공제는 다시 56조부터 61조까지 읽으면서 자신과 해당하는 공제제도를 찾아야 한다. 소득 구성이 비교적 단순한 근로소득자가 이렇다면 사업·근로·배당소득을 함께 얻고 있는 종합소득자는 그야말로 소득세법전을 앞뒤로 수십번 뒤척여야 하며, 결국은 법전은 덮고 법률회사나 세무사에 전화를 넣기에 십상이다.

설령 이런 수고를 들였다 해도 각 조항의 뜻을 파악하기란 어렵다. 비슷한 용어가 조항마다 다르게 표현된 터라 낱말 뜻부터 헷갈린다. 한 예로 법인세법에선 같은 뜻인 직원·종업원·사용인이란 낱말이 조항마다 산발적으로 나와 있다. 낱말마다 다른 의미나 맥락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그 뜻이 다르지 않은 비용·경비·손비란 표현도 어지러이 쓰인다.

한 문장에 주어와 술어가 여러개 등장하면서 뜻 자체가 모호해지는 경우도 수두룩하며, 한 ‘항’이 너무 길어 읽기에도 벅찬 경우도 있다. 법인세법 제63조 1항은 글자수가 무려 798자이다. 납세자가 세금을 미리 낼 수 있도록 허용하는 ‘중간예납’을 다룬 조항인데, 중간예납의 대상 법인과 세액 계산법, 납부 방식 등의 내용을 한 조항에 뭉뚱그려 담았기 때문이다.

괴물이 된 세법

이런 난맥상은 세법 개정은 반복하면서도 체계 정비는 세제 당국이 게을리한 탓이다. 1년에도 서너 차례 세법은 개정되는데, 이 과정에서 세제 당국은 바뀌는 조항에만 신경을 쓴다. 기존 조항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덧붙이는 데 머무르면서 개정이 반복될수록 알아먹기 어려운 세법이 됐다. 1969년 제정된 소득세법은 그 이후 모두 169차례 개정됐다. 이재면 기재부 조세법령개혁팀장은 “세법 개정 때 해당 조항만 보다 보니 세법 전체적으로 체계가 뒤틀릴 뿐만 아니라 표현의 일관성마저 흐트러졌다”고 말했다.

어려운 세법이 이득이 되는 쪽도 있다. 세무사나 회계법인 같은 곳이다. 어려운 법 덕택에 돈을 번다. 세법이 쉽게 쓰여 있다면 납세자가 직접 법전을 들여다보며 자신이 내는 세금에 대해 대강은 파악할 수 있다. 하지만 원천징수가 아닌 소득 신고를 해야 하는 사업자라면, 아무리 사업 규모가 작더라도 세무 업자의 도움을 받아야 마음이 놓인다. 직원 두명을 둔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는 ㅊ아무개씨는 “연 매출이 10억원도 안 되지만 세무사를 쓰는 데 적지 않은 돈이 나간다. 절세 목적보다는 몰라서 소득을 누락해 가산세를 무는 황당한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어려운 세법이 전문가들에게 정상범위를 초과하는 불공정한 이윤인 ‘지대’(Rent)를 누리게 셈이다.

다른 나라 세법은 어떨까. 전문가들은 외려 한국의 세법이 다른 나라보다 덜 복잡하다고 말한다. 유럽이나 미국 등에선 오늘날과 같은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근대적 세금 제도가 도입된 게 19세기 후반이었던 데 반해, 한국은 해방 이후로 비교적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오윤 한양대 교수(법학)는 “대륙법이든 영미법이든 외국의 세법은 연원이 우리보다 오래된 터라 더 많은 세법 개정이 누적되면서 매우 복잡한 모양을 띠고 있다. 비교적 깔끔한 법체계를 갖추고 있는 곳은 (1990년대에)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전환한 동유럽 쪽 국가에 한정된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미국에선 쉬운 세법을 위해 전면 개정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고 있으나 (당국이) 엄두를 못 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쉬운 세법, 무엇이 달라지나

기재부는 새로 쓴 세법 개정안을 포털사이트 등에 ‘조세법령 새롭게 다시 쓰기’로 공개하고 있다. 세법 개정안의 가장 큰 특징은 납세자들이 자신과 관련된 법령을 찾아보기 쉽도록 법체계를 개편한 점이다. 가령 근로소득자는 46조부터 52조까지 순차적으로 읽어보면 세법에서 정하는 근로소득의 범위와 근로소득공제 방식을 쉽게 알 수 있다. 적용 세율부터 세액공제, 결정세액까지 규정은 93조부터 113조까지 순서대로 쓰여 있다.

여러 내용을 뭉뚱그려 길었던 조항은 내용별로 쪼개서 여러 항으로 재구성했고,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은 표현은 하나로 통일했다. 이재면 기재부 팀장은 “세법을 잘 모르는 일반 국민과 전문가의 중간 수준을 겨냥해 개정안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새로 쓴 세법 개정안이 교양서처럼 술술 읽히는 데까지는 못 갔지만 일반인이라도 세법에 대한 약간의 이해가 있으면 필요한 정보를 법전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윤 교수는 “세법이 쉬워지면 세법에 대한 오해로 발생하기도 하는 조세 불복이나 세무 행정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납세자들이 자신이 어떤 이유로 어떤 과정을 거쳐 세금을 낸다는 이해도가 높아지면 조세 정책에 대한 신뢰도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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