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1분기 중 10조에 육박하는 영업이익을 냈다. 2013년 3분기에 이어 사상 두번째로 많다. 사진은 지난 11일(현지시각)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진행된 ‘갤럭시S8’ ‘갤럭시S8+’ 출시 행사에서 고객이 제품을 체험하고 있다. 연합뉴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한국 전자산업의 쌍두마차인 삼성과 엘지가 오랜만에 깜짝실적(어닝 서프라이즈)을 동반 달성했다. 삼성전자의 1분기 영업이익(잠정실적 기준)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10조원에 육박했다. 분기 기준으로는 2013년 3분기에 이어 사상 두번째로 많다. 2분기 전망은 더욱 밝아 13조 정도로 예상된다. 이 추세라면 올해 전체 영업이익이 50조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있다. 엘지전자도 영업이익이 1조에 육박했다. 역시 2009년 2분기 이후 최대다.
경영실적이 좋으면 회사 분위기도 밝은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겉으론 웃으면서도 속으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다. 무슨 속사정이 있을까?
삼성은 두달 전 이재용 부회장에게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자 총수 공백에 따른 경영 타격을 우려했다. “삼성 경영 마비” “삼성 지배구조 개선·인수합병 올스톱”…. 이 부회장이 구속되자 보수언론들은 온갖 자극적인 표현을 총동원했다. 하지만 1분기 깜짝실적은 모두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삼성은 깜짝실적이 이 부회장의 재판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봐 벌써부터 걱정이다. 최근 사회 분위기를 고려할 때 이 부회장이 무죄로 풀려나지 않는 한 실형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그렇다고 삼성이 다시 ‘총수 공백 경영타격론’을 꺼내기도 어렵게 됐다. 오히려 주변에선 “(능력은 없으면서 권한만 행사하는) 총수가 없으니 회사가 더 잘되는 것 아니냐”는 고약한 말까지 흘러나온다. 한 임원은 “1분기 깜짝실적과 이 부회장을 연관짓지 말아달라”며 곤혹스러워했다.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기업이 총수가 잠시 비운다고 해서 당장 위기에 빠질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웬만한 충격은 견디어낼 내부시스템을 갖췄다고 봐야 한다. 삼성으로서는 공연히 무리한 주장을 폈다가 부메랑이 된 꼴이다. 그렇다고 ‘눈치 없이’ 깜짝실적을 거둔 삼성전자를 탓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가 좋은 실적을 거두고도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총수가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는 ‘황제경영’의 구태에서 못 벗어난 재벌의 후진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총수의 장기 공백은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중요한 투자나 사업 재편은 총수가 주도하는 것이 현실이다. 롯데는 지난 3일 창립 50주년을 맞아 숙원사업인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개장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세계적인 관광명소를 만들겠다”며 부지를 확보한 지 30년 만이다. 롯데는 그사이 정부의 비업무용 부동산 규제, 각종 특혜 의혹과 사고 등으로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한 계열사 대표는 “총수의 집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깜작실적을 주도한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사업 초기인 1980년대까지만 해도 매년 1천억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는 애물단지였다. 현재 가치로 치면 1조원이 넘는 엄청난 규모다. 모두 사업을 접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병철 회장은 꿈쩍도 하지 않고 밀어붙였다.
재판을 받는 총수에게 불리할까봐 경영실적을 일부러 나쁘게 만들 수는 없다. 재벌이라고 불법을 눈감아주는 세상은 더이상 기대하기 힘들다. 다수의 국민은 일시적으로 경영에 부담이 되더라도 우리 사회의 법치주의를 바로 세우고 정경유착의 사슬을 끊는 게 장기적으로 기업과 경제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재벌에게는 어떤 선택이 있을까? 우선 준법경영 시스템을 제대로 갖춰 뇌물·횡령 같은 불법행위를 근절해야 한다.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의 지주회사인 이탈리아의 엑소르사가 최근 이재용 부회장을 사외이사에서 교체한 것은 글로벌 기업에서 경영자의 불법행위가 더이상 용납되지 않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둘째는 총수의 공백에도 흔들리지 않는 새로운 지배구조와 경영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재벌이 빨리 변화하지 않으면 미래를 기대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