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부 장관이 26일(현지시각) 백악관에서 연방 법인세율을 현행 3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의 세제개혁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밝힌 과감한 감세정책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앞두고 서둘러 발표한 조세개혁안을 두고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정책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재정 부담이 커 지속가능성이 낮아보인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26일(현지시각) 발표한 세제 개편안은 한장짜리에 불과했지만,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부 장관은 △연방 법인세 최고세율 35%→15%로 인하 △개인소득세 최고세율 39.6%→35%로 인하 △소득세 누진구간 7단계→3단계로 간소화 △상속세 폐지 등의 감세 방안을 밝혔다.
이는 감세가 세수를 늘리고 성장률도 끌어올릴 것이라는 이른바 ‘래퍼 곡선’에 기반한 ‘레이거노믹스’ 이후 최대 감세정책이라 할 만하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1980년대 법인세 최고세율(48%→36%)과 소득세 최고세율(70%→28%) 크게 낮추는 감세 정책을 펼친 바 있다. 므누신 장관은 “1986년 이후 가장 큰 세제개혁”이라고 자평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국들이 경기진작을 위해 감세 정책을 펴오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대규모 감세안을 낸 경우는 없다. 상식을 뛰어넘는 감세 정책에 여론의 반응은 냉담해 보인다. 우선 단기적인 세수 급감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는 관측이 많다. <뉴욕타임스>는 이 감세안이 실행될 경우 앞으로 10년간 최대 7조달러(약 8000조원)의 재정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분석했다. 다수의 재정학자들은 감세가 투자·노동 등 경제의 공급 측면을 자극해 오히려 세수를 늘릴 것이라는 ‘래퍼 곡선’은 이론적, 실증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평가한다.
우석진 명지대 교수(경제학)는 “레이건 행정부 때 이미 감세정책의 후과로 쌍둥이 적자(재정+무역적자)가 쌓이면서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트럼프 행정부가 정책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의회의 승인을 얻어야 하는 만큼, 감세의 범위와 폭을 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감세가 경제성장률을 제고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미국 브루킹스 연구소의 윌리엄 게일 선임연구원은 지난해 11월 펴낸 ‘포용적 성장이라는 의제’ 보고서에서 “1980년대(레이건 정부)와 2000년대 초반(부시 정부)의 감세 정책은 경제성장에 기여하지 못했다”며 “당시 미약하게 나타난 경기 회복은 중앙은행의 확장적 통화정책에 의존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고서는 미국 감세정책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고 평가했다. 황성현 인천대 교수도 “세율은 기업이 투자를 결정하는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자본의 이동성은 노동시장의 효율성과 임금 수준, 시장 상황 등에 보다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자본의 이동이 수월한 현대 자본 시장에선 공격적인 법인세 인하가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내수 시장이 크고, 국제 정치의 중심에 있는 미국이 법인세를 인하한다면 다국적 기업이 미국으로 돌아가는 효과가 충분히 나타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정책은 한국 경제에도 위험요인이 될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백웅기 상명대 교수(경제학)는 “미국 정부는 단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세수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주변국에 부담을 안기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며 “법인세율 인상 논의를 떠나 이런 국제정치적 리스크가 한국 경제에 어떻게 작용할지를 민감하게 관측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현웅 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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