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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시민배심원제 효과 이미 검증됐다

등록 2017-06-28 18:35수정 2017-06-28 22:08

뉴스분석 | 시민이 원전 건설여부 결정

공론화위 구성에 비전문가 논란
유럽에선 이미 ‘철지난 논쟁거리’
독일도 합의기구 통해 탈핵 결론
“숙의 민주주의 보편화 계기돼야”
그래픽_김지야
그래픽_김지야
정부가 27일 내놓은 이른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공론화위)를 둘러싼 후폭풍이 거세다. 신고리 핵발전소 5·6호기의 건설 강행을 주장하는 언론과 원자력업계는 2조6천억원의 총손실(매몰비용)을 감내하면서까지 공사 중단을 검토하는 것은 경제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또 공론화위를 통해 선발할 ‘시민배심원’ 대부분이 업계와 동떨어진 비전문가인데 이들에게 정책 결정을 맡기는 것이 무모하다는 지적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비판은 시민배심원 제도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것으로, 이 제도를 시작한 유럽에서는 이미 철 지난 논쟁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공론화위 출범을 계기로 그동안 시험에 그쳐온 ‘숙의 민주주의’ 제도가 보편화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협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고리 5·6호기의 매몰비용 논란은 공사 중단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부터 거듭해 왔다. 한국수력원자력과 일부 지역 주민들은 “이미 투자한 예산을 버리는 게 아깝다”는 논리를 주장해왔다. 이에 지난 19일 울산시의회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 반대결의안’에 반대 의견을 냈던 최유경 울산시의원(더불어민주당)은 “울산대 민교협 교수들이 최근 한수원이 주장하는 신고리 5·6호기 사업종합공정률 28%는 설계·구매까지 포함한 수치일 뿐 시공종합공정률은 9.45%라고 밝힌 바 있다. 이미 주문한 부품도 호환이 가능한 다른 원전으로 돌려 사용할 수 있어 실제 매몰사업비용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하는 등 진실 공방이 뜨겁다. 그러나 신고리 5·6호기의 경우에는 매몰비용을 언급하기 어려운 사례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매몰비용이라는 것을 따지는 경우는 ‘이 사업이 괜찮고 좋은 사업이다’라는 전제가 있을 때 가능하다. 신고리 5·6호기 완공으로 원자로 10기가 밀집하는 위험성에 대한 계산은 따지기 어렵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현재 매몰비용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의 피해가 뒤따른다”고 말했다. 앞서 2003년 벌어진 천성산 터널 공사와 2009년 4대강 사업의 경우도 사회적 논란 속에서 매몰비용이 공사 강행의 주요 논리로 활용된 바 있다. 윤 교수는 “4대강 사업도 매몰비용 논리에 밀려 공사를 해 추산하기 어려운 환경 피해를 겪고 있다”며 “이해당사자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석 달 동안 빠르게 결론을 짓기로 한 정부의 결정은 ‘현실적인 타협’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론화위가 불특정 국민을 대상으로 시민배심원(시민패널)을 뽑아 정책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 ‘비전문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는 “‘숙의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공론화위는 우선 10명의 위원을 선발한 뒤, 이들이 불특정 시민을 대상으로 시민배심원을 선발한다. 시민배심원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 이들은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설명과 토론을 통해 의견을 정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시민배심원제는 2004년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가 처음 국내에서 시도했지만, 2012년 서울시가 ‘2030 서울도시기본계획’을 짤 때도 사용했다. 최근에는 부산·울산시에서도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활용한다. 윤 교수는 “현재 첨단기술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미래창조과학부의 ‘기술영향평가’에도 시민배심원이 참여하는 ‘시민포럼’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비전문가가 문제가 된다면 이러한 기술영향평가도 다시 해야 한다는 논리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운영했던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도 전문가가 모인 분과 이외에도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분과가 존재했다.

결국 이러한 논란은 보편화하지 않은 시민배심원제가 한국 사회에 이식되는 진통의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김환석 국민대 교수(사회학)는 “영국에서는 1990년대 말 광우병 사태를 겪으면서 과학기술정책의 영역에서 ‘합의회의’(시민배심원 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덴마크 등 유럽에서도 2000년대 초부터 핵발전소 문제에 대해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이러한 방식을 받아들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문화교양학)도 “공론화위가 참고 모델로 삼았다는 독일의 ‘핵폐기장 부지선정 시민소통 위원회’도 35년 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논의를 해온 뒤 실패한 독일이 사실상 마지막으로 꺼내든 합의 기구다. 그만큼 검증이 된 방법이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복잡한 사회 문제를 푸는 데 시민배심원 제도가 ‘바로미터’가 될 가능성이 높아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시민배심원이라는 모집단을 어떻게 짜는가보다는 이들에게 공정성을 잃지 않게 정보 제공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종권 탈핵경남시민행동 공동대표는 “오스트리아는 국민투표를 통해 갓 완공된 원전 2기의 폐쇄를 결정하고 대신 재생에너지단지를 조성했으며, 이탈리아 역시 국민투표를 통해 원전을 건설하지 않기로 결정한 바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 가능한 일이고 우리 국민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촛불혁명’을 겪으면서 우리는 보통 사람들의 판단 능력이나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앞으로 시민들이 토론을 통해 결정하는 일이 늘어날 것이고, 그래야만 한다. 그 시작이 신고리 5·6호기에 대한 공론화위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성환 신동명 최상원 김영동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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