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신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9일 열린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미국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요구에 “국익 극대화와 이익균형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떤 국익’이고 또 ‘누구의 이익’이어야 할까?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2일 한국에 보낸 개정요구서에서 “한국에 대한 미국 무역수지 불균형 개선이 최우선 목적”이라고 명확히 천명했다. 지난 5년간 협정 이행의 ‘결과’인 무역수지 숫자를 교정하겠다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은 무역자유화와 시장개방이 본래 목적이다. 처음 협상 때는 상호호혜와 이익균형을 공통 목표로 제시하지만, 현실화한 무역수지 규모 그 자체를 변경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협상은 유례가 없다. ‘자유무역’이 아닌 ‘관리무역’으로 되돌아가는 꼴이다.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어리둥절해 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미국의 대한국 무역수지 적자 확대는 한-미 에프티에이 탓이 아니다”는 것이 우리 정부 논리다. “적자는 양국의 거시경제 상황과 미시적 산업구조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며, 또 한국의 대미 투자가 증가하면서 한국산 부품·원자재의 미국 수입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트럼프 미 대통령에 맞설 카드로 가다듬는 중이다. 협정문 개정은 한사코 피하면서 동시에 ‘국익과 이익균형’을 추구한다는 것을 최선의 전략으로 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무작정 개정을 회피하는 방어적 전략만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하기 어렵다. 그의 목적은 오직 협정발효 이후 5년간 ‘두배’로 늘어난 상품수지 적자 규모를 ‘대폭’ 줄이는 데 있다. 협정문 개정을 통해서든 다른 방식이든 양국간 무역수지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만족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즉, 개정을 막으면 해결되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게다가 그는 미국이 흑자를 보는 서비스수지는 배제한 채 ‘상품수지 277억달러’만 들이댄다. 우리가 법률·지적재산권 등 서비스시장 개방폭을 확대해줘도 성에 차지 않아 집권 5년 내내 “끔찍한 재앙”이라고 설파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문에 대미 흑자 축소와 같은 ‘트럼프 달래기’ 방식은 사태를 더 꼬이게 할 수도 있다. 미국에 새 가전공장을 짓는 투자를 늘려줄 경우, 우리 정부의 논리대라면 미국 시장에 한국산 부품 수출이 늘어 오히려 적자가 더 커질 수도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역수지 흑자 방어에 한사코 집착하는 전략은 최선이 아니다. 문제는 ‘어떤 이익을 지킬 것이냐’다. 무릇 모든 무역협상에서 ‘승자’만 존재할 수 없다. 한-미 양국 간 승자와 패자가 아니라, 우리 안의 강자와 약자 문제다.
자동차·철강 등 대기업 거대자본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농산물 등 기존 약자들은 ‘더 많은 양보’를 강요받았다. 이번 재협상에서도 더 많은 약자들이 양보를 강요받을 수 있고, 이는 갈등과 반발을 불러올 것이 분명하다. 공익적 정책수립을 가로막아온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비롯해 건강권·환경권 등 한-미 에프티에이가 위협·제약해온 한국의 ‘주권 회복’을 당면 협상목표로 내세우는 것이 ‘비즈니스 협상가’ 트럼프에 대처하는 전략일 수 있다. 당장 광우병이 드러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어떻게 할 것인지가 그 시작일 수 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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