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세종홀에서 열린 `정책공간 국민성장 회원의 날' 행사에서 조윤제 국민성장 소장한테서 1000쪽 분량의 정책제안서를 건네받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법인세율 인상, 이자·배당·주식양도차익에 대한 종합과세, 임대소득 과세, 재산과세·상속과세 강화가 필요함.’
<한겨레>가 입수한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시절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세제개혁 보고서(요약)가 제시한 문재인 정부의 세제개혁 밑그림이다. 보고서는 ‘공정해야 공감한다’는 슬로건을 핵심메시지로 삼았다. 담세능력에 따라 세부담이 경제주체들 사이에 공정하게 나눠지도록 공정과세를 주요한 이념을 삼은 셈이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법인세, 소득세, 재산세, 에너지세제 등 각종 세제 대한 종합적인 개혁안을 제시했다.
공정과세의 이념이 가장 주요하게 반영된 세목은 국민 모두가 납세 의무를 지는 소득세 부문이었다. 보고서는 먼저 최고세율 인상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5억원 초과 과세소득에 대해서만 최고세율이 적용되면서 비과세·저율과세되는 (중간) 소득의 특혜적인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2017 세법개정안에서 현실화된 부자증세가 공정과세의 이념엔 부합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보고서는 대신 비과세·저율과세되는 소득을 줄이는 데 방점을 찍고 있다. 보고서는 “비과세·저율과세 되는 소득을 대폭 축소해 현재의 불충분한 소득세 체계를 완전하게 종합과세해 공정과세를 실현하고 복지재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짚고 있다. 주식양도차익·이자와 배당 등 금융소득, 임대소득을 다른 소득과의 형평을 견줘가며 정비해 종합과세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여기엔 5억 초과 고소득층에 대한 ‘핀셋 증세’보다 너른 세원 관리가 세입확보에도 효율적이라는 인식도 깔려있다. 보고서는 이를 위해 임대소득에 세금을 메길 때 필요경비율 60%와 기본경비 400만원을 공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또 배당·이자 등 금융소득이 2천만원(부부합산 4천만원)까지 분리과세되는 점과, 주식양도 차익과세가 소액주주에게 적용되지 않고 대주주에게도 20% 단일세율로 분리과세되는 것을 개선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보고서는 또 직장인에게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근로소득공제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현행 근로소득공제는 임금 수준에 따라 급여액의 최대 70%를 자동으로 과세표준에서 공제해주는 제도다. 근로활동에 뒤따르는 식비·교통비 등 각종 필요 경비를 공제해준다는 명목이지만, 신용카드 공제 등과 중복 적용인데다 경비로 인정되는 비율도 너무 높다는 것이다. 근로소득공제는 지난해 기준 46.7%에 달하는 면세자 비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손꼽힌다. 보고서는 결과적으로 비과세 감면 정비를 통해 보편 증세의 가능성을 모색한 셈이다.
보고서는 법인세에 대해서도 ‘이명박 정부에서 인하된 세율을 원위치(과세표준 2억원 초과 22%→25%)로 돌리는 정상화가 필요하고, 경제적 효과의 추이를 보면서 중기적으로 2%포인도 추가 인상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2017 세법개정안’은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을 포함하고 있지만, 과세표준 2000억원 초과 ‘초대기업’에 한정하는 등 과세 대상을 대폭 줄였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법인세 인상을 경제민주화 측면에서 보고있다. 최소한의 재벌 기업을 대상으로 하자는 논의 속에 과세대상을 최소화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보고서가 제시한 ‘조세개혁은 정책수단보다 재정적 관점에서 운영돼야 한다’는 철학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보고서는 또 종합부동산세와 재산세를 통합하는 등 부동산 보유세를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하고 있었다. 토지와 건축물을 분리·합산해 과세표준을 설정하되, 구간별로 0.2~2%까지 누진세율을 적용하자는 것이다. 또 자산세의 과세표준을 현실화하기 위해 공정시장가액을 점진적으로 상향조정하는 방안도 검토됐다. 실제 이런 방안은 문 대통령의 공약으로 발표됐지만, 취임 뒤엔 자취를 감춘 상황이다. 특히 문재인 정부는 집값을 현실화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 패키지(8·2 부동산 대책)를 내놓았지만, 여기에도 보유세 관련 논의는 빠져있는 실정이다. 보고서는 이밖에도 에너지 상대가격의 조정, 지방세 강화를 중심으로 한 세입구조 개혁 등 민감한 조세현안에 대한 입장을 망라해서 밝히고 있었다.
보고서는 문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만드는 중요한 축으로 활용됐다. 여권에서부터 불거진 증세론의 시작점이 셈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지난 2월 문재인 대통령 쪽에 전달된 보고서는 당시 더민주 경선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작성하는 데 바탕이 됐다. 여권관계자는 “이후 문대통령이 더민주 후보로 선출된 뒤 국민성장보고서를 토대로 작성된 경선공약과, 지난해 더민주가 제시한 세법개정안을 결합해 문대통령의 대선 공약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중장기 증세 논의에서 길잡이 역할을 할 지침이라는 뜻이다. 문재인 캠프의 경제공약을 조정했던 여권의 관계자는 “보수정부 9년간 소득불평등이 악화됐고 조세정책이 이를 바로잡지 못하는 잘못된 방향으로 작동한 것을 정상화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국민성장 보고서는 조세 정상화 뒤 문재인 정부의 조세정책에 대한 장기적인 플랜으로서 공감대가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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