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제재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법원이 한진 쪽 손을 들어줘, 문재인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 정책에 비상이 걸렸다. 2014년 경제민주화 정책의 일환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된 이후, 관련 제재에 불복해 재벌그룹이 소송을 제기한 사건에 대한 첫 판결이다.
애초 이번 소송의 쟁점은 공정위 제재의 근거인 공정거래법 제23조 2(총수 일가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 금지)의 해석을 둘러싼 견해 차이였다. 법은 자산 5조원 이상 재벌 대기업에 속한 계열사가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비상장 20%)인 다른 계열사를 상대로 ‘부당한 이익’을 귀속시키는 행위를 금한다. 이를 두고 한진은 “공정위가 법문에 적힌 총수 일가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의 요건을 제대로 판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공정위는 “일반 부당지원행위 규제(법 23조1항7호)와 달리 총수 일가 부당이익 제공 금지 규제는 입법 취지상 부당성(공정거래 저해성)의 입증이 필요없고, 한진 사건은 규제 대상 행위 유형인 ‘정상거래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에 해당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맞서왔다.
하지만 서울고법 행정2부(재판장 김용석 부장판사)는 1일 부당성 입장과 관련해 ‘공정거래 저해성’은 문제삼지 않았지만, 대신 ‘경제력 집중’ 여부를 강조해 공정위의 허를 찔렀다. 재판부는 “거래 동기·방식·규모와 이익의 규모, 거래의 경제적 효과 등을 고려해 경제력 집중이 발생할 우려가 있는지를 기초로 부당성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증명 책임은 공정위에 있다”고 판결했다. 이어 “공정위 주장처럼 법 23조 2의 제1항 1호의 ‘정상적인 거래 조건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에 해당하더라도 거래나 이익 규모 등에 비춰 경제력 집중의 효과가 발생할 여지가 적거나 극히 미미한 경우, 또는 이를 규제하는 것이 사적자치의 본질을 해치는 경우라면 부당한 이익이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싸이버스카이가 일감 몰아주기로 대한항공으로부터 얻은 면세품 인터넷 광고수익과 통신판매 수수료 면제 규모가 매출액과 순이익에 비해 적다는 점을 들어, 경제력 집중 효과가 미흡하다고 판결했다.
공정위는 법원 판결에 따른다면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사실상 무력화될 수 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당장 9월로 예상되는 일감 몰아주기 조사부터 차질이 우려된다.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 7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45개 재벌의 내부거래를 분석한 결과 총수 일가 일감 몰아주기 혐의가 꽤 많이 드러났다”며 “가을 이전에 직권조사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정위 간부는 “재벌이 총수 일가에 부당이익을 제공하더라도 그 규모가 경제력 집중을 우려할 정도로 크다는 점을 입증하지 못하면 제재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황 고려대 교수(법학)도 “공정위의 입증 능력에 한계가 있고, 대기업의 부당지원이 갈수록 교묘해지는 상황에서, 법원이 공정위에 지나치게 엄격한 입증 책임을 요구하면 사실상 일감 몰아주기에 면죄부를 주게 된다”고 지적했다. 공정위가 설령 경제력 집중이 우려되는 부당이익 규모에 대한 판단 기준을 마련하더라도, 결국 재벌이 그 적정성을 놓고 시비를 걸 가능성도 높다.
이날 한진그룹은 “이번 판결로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를 했다는 오해가 해소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도 공정거래법을 준수하며 준법경영에 매진할 계획이다”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곽정수 선임기자, 최하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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