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양국 재논의 결렬 10일 만에 공세
WP “이르면 이번주 폐기여부 결정”
유리한 고지 선점 ‘엄포용’에 무게
실제로 폐기할 가능성 배제 못해
양국 재논의 결렬 10일 만에 공세
WP “이르면 이번주 폐기여부 결정”
유리한 고지 선점 ‘엄포용’에 무게
실제로 폐기할 가능성 배제 못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 여부를 논의하고 있으며, 이르면 이번주에 이를 결정할 수 있음을 내비쳤다. 트럼프의 ‘폐기’ 발언은 지난달 22일 협정 개정협상 결렬 이후 우리 정부를 겨냥한 고도의 협상용이면서 동시에 미국 내 개정 반대 목소리를 제압하기 위한 ‘양면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폐기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텍사스주 휴스턴 방문 중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참모들과 논의하고 있느냐. 다음주에 어떤 조처를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그렇다. 그것은 내가 대단히 신경 쓰고 있는 문제”라고 대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그가 참모들에게 ‘한-미 자유무역협정 폐기 준비를 지시했다’는 <워싱턴 포스트>(WP) 보도 직후 나왔다. 앞서 이 신문은 한-미 자유무역협정 논의 과정을 잘 아는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자유무역협정 조건을 재협상하기 위해 협정에 남는 결정을 할 수 있지만, 협정 폐기를 위한 내부 준비는 많이 진척돼 있다”고 전했다. 신문은 “공식적인 폐기 절차가 이르면 다음주 시작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협정 폐기 준비 지시 및 폐기 여부 논의 방침은 그 진의가 ‘폐기’에 있다기보다는 협정 개정협상에서 우리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협상용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번 폐기 언급은 한·미 양국 대표단이 22일 서울에서 만났으나 협상이 결렬된 지 10일 만에 나온 것이다. 당시 “개정협상 이전에 양국이 공동으로 협정 효과 분석부터 해보자”는 우리 쪽 제안에 대해 미국 쪽은 답변 기한이나 다음 회기 날짜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돌아섰다. 미국의 개정 요구에 우리 쪽이 ‘효과 분석 선행’으로 맞대응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외곽지원에 나선 형국이다.
미국 내에서도 이번 폐기 언급은 ‘엄포’로 기선을 제압하는 트럼프 특유의 협상 전략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협정 개정을 둘러싼 논의 과정을 잘 아는 미 행정부 바깥의 한 관계자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폐기 발언이) 얼마나 진지한지 실제로 의문”이라고 밝혔다. 지난 7월12일 협정 개정 요구 서한이나 지난달 22일 특별회기에서 ‘폐기’는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우리 정부도 협정이 종료되면 양국 교역이 위축되면서 미국이 더 불리해지기 때문에 폐기까지 갈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협정이 종료되면 양국 무역은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본 양허수입관세율을 적용받게 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세계무역기구의 수입관세율(무역액 가중평균)은 한국이 5.6%로 미국(1.6%)보다 훨씬 높다. 최근 산업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발효 이후 수입관세 감축으로 미국 수출업자는 20억7천만달러, 한국 수출업자는 그 절반가량인 11억8천만달러의 관세 인하 수혜를 입었다고 밝혔다.
이번 ‘폐기 검토’ 지시는 최근 협정 개정을 둘러싸고 미국 산업계·정치권 내부에서 분출 중인 ‘개정 반대’ 목소리를 누그러뜨리려는 내부 단속 목적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달 29일 방한한 에드 로이스 미국 하원 외교위원장 등 연방하원의원 5명은 협정 개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고, 한국 투자기업이 많은 미국의 일부 주정부와 미국 쇠고기·양돈협회도 협정 개정·폐기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산업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정무와 행정이 분리돼 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발언의 의도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협상용으로만 보는 건 섣부른 판단이며, ‘폐기’ 국면으로 상황이 돌변할 가능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는 진단도 나온다. 지난 6월 말 미 무역대표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따른 무역적자 보고서를 백악관에 제출했다. 백악관은 아직까지 이 보고서를 공식 발표하지 않은 채 계속 수정 작업을 거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조만간 이 보고서에 ‘협정 폐기’ 문구를 넣어 전격 발표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부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철저하게 준비하겠다. 미국과 열린 자세로 협의해가겠다”고 밝혔다. 조계완 기자,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kyewan@hani.co.kr
마이클 비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보가 지난달 22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를 마친 뒤 건물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22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에 참석 한 뒤 국회 전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차에 오르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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