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15일부터 이틀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리는 ‘제8회 아시아미래포럼’의 주제는 ‘일의 미래: 사회적 합의를 향하여’이다. 기술변화가 일으키는 일의 변화와 ‘좋은 일’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집중 조명한다. 이번 포럼에 참석하는 주요 연사들을 인터뷰해 이들의 논지를 미리 소개한다.
내가 정년이 되기 전에 로봇과 인공지능(AI)이 내 일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아닐까? 내 아이는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세상에서 살게 될까?
노동경제학의 대가인 리처드 프리먼 미국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최근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미래에는 로봇을 소유한 자가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며 “우리는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이 모두를 행복하게 하도록 이를 나누어 소유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프리먼 교수는 올해 아시아미래포럼의 첫 기조연사로 무대에 올라 지능정보기술 발달이 노동과 경제 전반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들려준다.
최근의 기술변화와 관련해 가장 큰 우려는 로봇과 인공지능이 일자리의 절반 이상을 없앨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프리먼 교수는 일자리의 미래에 대해서는 그다지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기술발달의 역사를 살펴보면 새로운 기술이 생산성을 끌어올려 사람들의 소득이 늘고, 이는 소비와 투자, 고용의 증대로 이어졌다고 짚었다. 기술이 없앤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노동의 형태와 노동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는 적지 않게 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인공지능이 결정을 내리는 지적인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일 텐데, 노동자는 갈수록 기계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마치 지피에스(GPS)나 스마트폰 앱이 우리의 길을 안내하듯, 이런 노동에서 ‘상급자’(boss)는 기계가 될 것이며 노동관계는 노동자와 ‘기계 보스’의 관계로 변할 것이다.”
프리먼 교수가 여기서 제기하는 질문은 이런 큰 변화가 오더라도 노동이 여전히 보람되고 일하는 사람이 적당한 소득을 올릴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는 지금처럼 기술발전의 성과가 로봇과 인공지능 같은 고도화된 자본을 소유한 이들에게 집중되는 시스템에서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수십년간 기계가 인간을 대신하는 자동화 속도는 점점 빨라졌는데 이에 따른 생산성 향상의 과실을 자본 소유자가 가져가다 보니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는 장래에는 소득 격차가 한층 심화할 것이라고 프리먼 교수는 진단한다.
“소수의 사람과 공장이 새로운 기술을 통제한다면 우리는 ‘로봇시대 봉건제’(robot-age feudalism)로 돌아갈 위험이 있다. 로봇 소유자는 번창하는 반면 대다수는 힘겹게 살아가야 한다.”
이를 피하려면 기술발달에 따른 과실을 자본과 노동이 나누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노동자에게 기업의 지분과 이익을 나누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소수에서 다수로 자본주의 소유구조를 바꿔서 디지털화의 이익이 로봇 소유자에게 온전히 흘러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이후 노동·사회정책의 미래와 관련해 전문가들이 다양한 방안을 쏟아내고 있는데, 프리먼 교수는 기업 소유권의 광범위한 분산을 변화된 자본주의의 미래상으로 보는 것이다. 반면 아시아미래포럼 첫날 오후에 특별강연을 하는 가이 스탠딩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대표(영국 런던대 교수)는 전 국민에게 일정한 금액을 배분하는 기본소득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프리먼 교수는 노동자가 일하는 과정에서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도 소유 분산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간과 로봇이 함께 일하는 시대에 둘이 조화롭게 협업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을 경우 인간이 로봇을 보조하는 부차적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는데, 노동자가 로봇이나 인공지능 같은 자본의 소유주로서 일하고 적절한 몫을 배분받는다면 그런 부차적인 일들이 못 견딜 만큼 지루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그는 기계가 일을 대신 해줌으로써 생기는 시간을 가사와 육아, 자기계발에 쓰는 등 일과 삶의 균형을 추구할 수 있다고 본다.
프리먼 교수는 자본 소유를 분산하는 방안으로, 미국 기업들이 시행 중인 노사 이익 공유제, 퇴직연금 등을 통한 종업원 주식보유제 등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아직은 이런 소유 및 이익 분산은 불충분한 상태여서 정부, 기업, 노조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그는 지적한다.
“정부는 소유와 이익을 공유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노르웨이와 미국 알래스카주가 했듯이, 공적 자산이나 마찬가지인 현대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납부해 적립기금을 만들고, 이를 시민들이 소유하게 할 수도 있다. 경영자는 기업과 자본주의의 이런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야 하고, 노조는 기업과 정부에 노동자의 소유 확대를 위해 압력을 넣고 시민들이 기업의 기금 사용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프리먼 교수는 하버드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하버드대 법대의 ‘노동과 직장생활 프로그램’의 공동 책임자를 맡고 있다. 중국과 한국 노동시장, 과학자 및 기술자 취업시장, 이민과 무역이 불평등에 미치는 효과 등을 연구해왔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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